노노는 2019년도 10월에 불법 좌회전을 하는 버스에 치여 6개월간 입원했다. 그 사고 이후로 걷는다는 행위가 이전만큼 일상적이거나 편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크 때문에 다쳤지만 다친 이후로 더 바이크에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진 생활밀착형 라이더이다. 라이프 스타일은 편안함과 쾌적함을 지향하지만 그럼에도 바이크 기종의 선택만은 예외로 아름다움을 고수하여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한다. 자주 하는 말은 “시동 안 걸리면 어떡하지?” 바이크가 주는 공기처럼 은은한 즐거움과 그 안에서 마주하는 괴롭고 힘든 난관에 대해서 글로 남겨보려 한다.
유서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렸을 적 우연히 티비에서 보았던 임사 체험이다. 요즘에는 웬만하면 죽었다고 해서 관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시험삼아 화장해볼수도 없으니, 좁은 관 속에 들어가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체험이었던것 같다. 물론 유서도 쓰는데,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유서를 쓰며 과거와 현재에 대한 후회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던 기억도 난다. 어디서 어떻게 임사 체험을 신청해서 가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딸기 따기 같은 아기자기하고 향기로운 체험을 뒤로하고 죽음을 체험하러 가는 마음은 어디서 올까? 사람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빈도나 계기는 다를 것이다.
내가 유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때는 2019년 5월이었다. 여름휴가로 친구들과 함께 인도에서 바이크를 렌트해서 히말라야에 있는 고산마을 레에 가는 계획을 세웠다. 한창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갑자기 “여행 가기 전에 유서 쓰고 가야죠.”라는 말을 꺼냈다. 바이크를 타기 때문에 유언장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첫 순간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주 위험한 여행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바이크를 타는 것보다는 위험도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 표까지 구입했지만 일행들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행은 무산되었고 동시에 유서 작성 계획도 잊혔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지 않은 10월 중순의 어느 날, 나는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던 중 버스에 치여 크게 다쳤다.
서울에서 바이크를 타는 것은 의외로 위험하다. 사실 그곳이 합천이어도 부산이어도 치앙마이여도 그렇다. 바이크를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주위에서 꼭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바이크를 타다 죽은 이야기 혹은 뉴스에서 본 사고에 대해 언급한다. 참으로 폭력적인 일이다. 그들의 디테일한 경고가 없어도 우리는 바이크가 위험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히말라야에 간다는 계획을 세울 때나 유서에 대해 생각했다. 바이크를 타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던져대는 폭력적인 겁주기에 맞서려고 괜찮다는 방패막이를 세우다 보니 어느 순간 위험성에 대한 인지가 약해진 걸까? 이것조차 과한 자기 검열일까? 바이크를 타다 보면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말 사이에서 이리저리 밀쳐지는 경험이 자주 찾아온다.
나는 바이크 사고를 겪은 후, 죽음보다는 유서 없이 죽게 된 이후를 상상하며 무서워했다. 재산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내가 없는 것이 덜 괴로울 유형의 물질을 남겨준다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서를 쓴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감사와 요약과도 같다. 생각보다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을 수도 있다. 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할 때마다 죽었을 수도 있었을 그 순간이 세트처럼 생각났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피하는 편을 택하려고 한다. 뿌듯한 선택이 조금씩 쌓이면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은 다음 주에 실릴 <함께 유서 쓰기>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다. 2020년도 봄, 치맛바람 라이더스에서는 유서 작성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해 6월 <무사히 바이크 타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이름 아래 유서를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의 걱정과 고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함께 유서 쓰기>는 지난 워크숍 내용을 정리한, 자필증서 유언장을 쓰는 법에 대한 글이다. 물론 내가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거나, 법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찾기 쉬운 생활법령 정보]사이트를 참고했을 뿐이다. 어려운 단어의 뜻을 알아보고, 판결을 조금 들여다보았을 뿐. 이 글을 읽는 당신보다 자필 증서 유언장에 대해 더 잘 알 거라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임사 체험을 하듯이, 해본 적 없어 무섭고 두려운 일은 함께 하는것이 덜 무섭지 않을까? <함께 유서 쓰기>는 ‘유서 쓰기’보다도 ‘함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는 복잡한 내용이 있다거나, 내가 쓴 유서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면, 공증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공증받는 방법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신뢰하고, 그곳에 적힌 유서 쓰기 방법을 신뢰하고, 무엇보다도 그 이상을 하기에는 조금 귀찮다면. 깨끗한 종이 한장과 잘 나오는 볼펜 한 자루를 꺼내 들고 함께 유서를 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