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인 듯 A급인 듯 감각적인 연출력과 의상, 그리고 바이크의 강렬한 조화

김은솜 기자 입력 2020.03.27 14:41 조회수 8,298 0 프린트

 [기사 생성일 2019.  10. 16.]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등으로 유명한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명작 중 하나인 <킬 빌>은 감각적인 연출, 스펙터클한 액션신과 전설적인 OST 선곡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왜인지 B급 영화의 향기가 물씬 나면서도 진지하고 과감한 연출로 호평을 받은 작품인 <킬 빌>은 유쾌한 복수극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킬 빌>에서는 고전 B급 영화 특유의 유치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감독이 어린 시절 감명 깊게 본 동서양의 다양한 B급 영화를 오마주했기 때문이다.

<킬 빌>은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내포하는 “복수는 식혀서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라는 옛 클린건 속담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비밀 암살 조직단의 일원이었던 블랙맘바(우마 서먼 분)가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던 조직원들에 대한 복수를 펼치는 내용이다. 첫 장면은 텍사스의 조촐한 결혼식장에서 피로 얼룩진 블랙맘바가 신랑 및 하객들과 함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5년이 흐른 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의식을 회복하자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조직원들에게 대갚음하기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에 있는 이가 바로 ‘빌’이다. 주인공이 ‘빌’을 죽이기 위한 복수를 실행한다는 내용을 <Kill Bill>이라는 제목으로 치환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매우 직관적 제목 설정으로 관객들은 간단명료하게 영화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킬 빌>의 명장면 중 하나는 우마 서먼이 <사망유희>의 이소룡을 연상시키는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깔 맞춘 듯한 바이크를 타고 경쾌한 OST와 함께 도로 위를 내달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우마 서먼이 타고 있던 바이크는 노란색 가와사키 ZZR 250이다. <킬 빌>이 바이크 액션신이 아닌 단지 라이딩 장면만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바이크로 유명한 영화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는 바이크와 의상 디자인의 유사성에 있을 것이다. 마치 세트 상품과도 같은 유사하고 과감한 디자인의 바이크와 의상 간의 연계성과 더불어 화려한 연출이 만들어낸 장면 조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킬 빌>에는 또 다른 바이크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오렌 이시(루시 리우 분)가 탄 차를 바이크로 호위하는 조직원들이 사무라이 칼을 차고 도로를 달리는 장면이다. 이 바이크는 야마하 FZS 600으로 시크하면서도 멋들어지는 올 블랙의 매력이 돋보인다. 검은 양복, 검은 사무라이 칼과 올 블랙 바이크의 조합은 조직의 무게감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두 장면 모두 극 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감독이 가진 독보적인 연출력과 의상 및 OST 선정이 돋보였던 <킬 빌>은 마치 장면에 흡수된 듯한 바이크 라이딩 장면을 빼놓고 말한다면 매우 섭섭할 것이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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