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의 시간, 이탈리아 ‘질레라(Gilera)’

입력 2020.03.30 11:28 조회수 5,510 0 프린트

 

모터사이클 브랜드 스토리
-질레라 편-

‘Gilera(질레라)’, 하면 가장 먼저 삼륜의 덩치 큰 스쿠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세 바퀴 달린 ‘푸오코(Fuoco)’, 스쿠터의 최대 배기량과 출력을 자랑하는 ‘GP800’, 날렵하게 질주하는 저배기량 스쿠터 ‘러너(Runner)’시리즈 등 언뜻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이어보면 스쿠터 브랜드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탄생한 이 브랜드는 오랜 세월을 버티고 견디어 살아남았다. 그 시간의 궤적을 살펴보면 지금의 생활형 스쿠터의 모습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1950년대에는 지금의 MotoGP의 전신인 WGP(월드그랑프리)를 석권한 왕좌의 타이틀을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10년의 역사 속으로

질레라(Gilera) 모터사이클의 역사는 1909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작은 가게에서 쥐세페 질레라(Giuseppe Gilera)가 설계한 최초의 모터사이클인 ‘VT317’의 출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의 초기 모터사이클 브랜드의 시작점이 대부분 그러하듯 질레라 역시 자전거에 엔진을 장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질레라 ‘VT317’은 벨트 구동 장치가 있는 317cc 오버 헤드 밸브 엔진이다. 다른 브랜드의 초기 모터사이클과는 다르게 프레임의 두께를 보다 두껍게 하고, 당시 모터사이클 중 가장 큰 사이즈의 타이어를 장착하여 큰 차이를 두었다. 이후 후속 엔진은 1926년까지 사이드 밸브를 적용하다가 그 이후에는 다시 오버 헤드 밸브 엔진으로 돌아갔다.

1935년 질레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인 ‘론디네(Rondine)’ 4스트로크 엔진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데, 이는 거의 40년 동안 질레라 레이싱 머신의 기초를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론디네는 수많은 세계 기록을 세웠는데 1937년 시속 274.181Km를 달성하여(거의 20년 동안 깨지지 않는 기록) Dorino Serafini를 1939년 유럽 챔피언쉽 타이틀에 올리면서 질레라의 명성을 드높였다. 

1930년대 중반부터 질레라는 다양한 4 스트로크 엔진을 개발했는데, 100~500cc로 다양화했고, 그중 가장 유명한 모델이 바로 ‘1939Saturno’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모터사이클 산업도 이전보다 크게 발전하면서 레이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보다 빠르고 강력한 모터사이클에 대한 열망으로 타이틀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붐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질레라는 새로운 ‘Saturno500’과 다양한 중소형 엔진으로 돌아왔고, 레이스 트랙에서 새로운 4 기통 500cc 모델은 Noton, Moto Guzzi, MV Agusta와 함께 MotoGP World Championship을 지배하면서 1950년부터 1957년 사이 6명의 라이더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질레라는 1949년 WGP(월드그랑프리)의 출범과 함께 레이스에 뛰어들어 이듬해인 1950년 움베르토 마세티(Umberto Masetti)가 탄 ‘500 4-실린더(500 4-Cylinder)’로 시즌 챔피언을 차지하게 된다. 움베르토 마세티는 1950년과 1952년에 MotoGP월드 챔피언이었으며, 지오프 듀크(Geoff Duke)와 리베로 리베라티(Libero Liberati)가 합류하면서 6개의 컨스트럭터 세계 타이틀과, 3개의 투러리스트 타이틀(TT) 그리고 7개의 이탈리안 타이틀 및 놀라운 기록적인 승리를 거머쥐면서 영광의 시대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왕좌의 자리는 영원할 수 없는 법. 1957년 리베로 리베라티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질레라는 ‘MV아구스타’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WGP를 떠났다. WGP에 참가했던 8년 동안 질레라는 40번 우승을 차지했었다.

피아지오 그룹에 합병되다

1969년에 질레라는 피아지오 그룹에 합병되면서 중소형 모터사이클과 오프로드 생산에 중점을 두어 일반 시판용 모터사이클 제작에 전념하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350cc와 500cc의 새로운 4스트로크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DOHC)를 적용한 단일 실린더 엔진을 생산하였고, 이후 600cc 급에서는 ‘RC 엔듀로 시리즈’(600cc와 750cc)로 1990년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2번의 승리를 거두며 최고점에 도달했다. 또한 이집트 파라오 랠리에서 질레라는 강력한 SPO2와 미래형 ‘CX125’ 모델로 125 클래스 분야를 선도했다. 

질레라는 1992년과 1993년에 다시 250cc MotoGP 월드챔피언쉽으로 돌아와서 혁신적인 로드 스쿠터인 ‘러너(Runner)’와 같은 스포츠 스쿠터 개발에 중점을 두어 개발하게 된다. 2000년에는 스쿠터와 자전거의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린 혁신적인 ‘DNA 50’으로 범위를 확장하였고, 2003년 말에는 맥시 스쿠터인 ‘넥서스(Nexus)’를 데뷔시키면서 500cc 클래스로 도약하게 된다. ‘Nexus’는 40마력 이상으로 정교한 디자인 솔루션 및 손쉬운 주행이 가능하게 한 가장 스포티한 스쿠터로 만들어졌다. 

2007년에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839cc의 스쿠터인 ‘GP800’을 선보이면서, 스쿠터에 이중 실린더 엔진, 8 밸브, 전자 인젝션, 액체 냉각 및 75마력의 파워를 장착하여 주행 성능뿐 아니라 적재 능력, 공기 역학적 보호 및 주행의 편의성까지 갖춘 스쿠터계의 세단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현존하는 최대 배기량과 최고 시속을 자랑하는 스쿠터로도 유명하다.

2007년 또 하나의 획기적인 모델은 바로 3륜의 질레라 ‘푸오코(Gilera Fuoco)’다. 푸오코는 새로운 디자인과 이중 점화 전자식 인젝션 방식의 500cc 엔진을 갖추고, 피아지오의 ‘MP3’ 시리즈와는 닮은 듯 다른 느낌으로 ‘푸오코’는 피아지오 그룹의 독점적인 3륜 바이크 기술의 스탠다드가 되었다.  

2000년대 다시 부활한 MotoGP 타이틀

피아지오 그룹 산하에서 질레라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은 그 꺼지지 않는 열망은 결국 2001년 125cc 클래스에서 젊은 레이서 Manuel Poggiali(마누엘 포지알리)에 의해 재현됐다. 이는 다시금 질레라를 포디움 위에 올려놓은 그시절 질레라의 꿈틀거리던 열정과 자존심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2008년 질레라의 첫 250 클래스 우승은 마르코 시몬셀리(Marco Simoncelli)가 이탈리아 GP에서 승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1957년 리베로 리베라티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 이후 51년만의 쾌거였으며, 질레라 100주년을 기념하는 아주 특별한 위업이기도 했다. 

110년을 이어온 질레라의 유구한 시간 속 히스토리에 또 어떠한 궤적을 남기며 명맥을 유지하게 될지, 질레라의 행보에 라이더들은 또 어떤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까.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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