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학원엘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하여 우리 가족은 이제 모두 ‘사’자 가족이 되었다.
딸은 00사, 아들은 00기사, 아내는 요양보호사. 나는 운전기사…
그렇지만 <사>라고 다 같은 사가 아니다. 사(師, 事, 士)자가 들어가는 신분의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경우가 많다. 사 가운데도 사(師)가 들어가는 신분의 사람은 대개 스승의 위치거나 전문적인 기예를 닦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사(事)는 일을 의미하지만 벼슬을 의미하기도 하고, 선비를 뜻하는 사(士)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재능이 있거나 출사(出仕)를 하여 관직을 맡는 사람을 의미한다.
가끔 소설가와 시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 누구는 ‘가(家)’를 붙여주고 누구는 ‘인(人)’이라 하는가? 하고.
나도 궁금하여 챗 GPT에게 물었더니 가(家)는 미술가나 건축가, 작가, 음악가 등 특정분야에서 전문적인 활동을 하거나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고 인(人)은 주로 시인이나 산악인처럼 취미나 동호인 같은 어떤 분야에서 즐겁게 활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우리말 표현방식이라 한다.
그렇듯 우리말 표현방식은 다양하고 다분히 계급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를 호칭할 때는 상대의 신분에 따라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의식적으로 존칭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의식이나 부담감 없이 부르는 호칭이 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운명적으로 주어져 부르는 가족이나 친척들에 대한 호칭이 그것이다.
지난 설에는 매년 그랬듯이 처가에 가서 여러 처가 쪽 가족들과 합동으로 장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조카아이들에게는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고 인근 음식점에 몰려가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형님, 동생, 형부 처제… 그렇게 서로를 부르며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하루를 흥겹게 보냈다. 하지만 이번 모임에서는 큰처남에 대한 호칭을 부르지 못했다.
지난해 가을에 운명을 달리하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남댁이란 호칭도 말하지 못했다. 연락을 하였으나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참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즐거운 날에 우울한 내용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날엔 아내와 함께 전철을 타고 소사에 있는 사찰 석왕사 납골당에 모신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이었다. 그 언젠가 하얗게 눈이 쌓인 시골길을 걸어 어머니와 손잡고 친척집에 세배 가던 시절이 생각났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처럼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시외의 눈 쌓인 길을 걷다보니 그 시절의 친척들 얼굴도 그려졌다. 아련하다.
출가한 누님들도 생각났다. 작년추석에는 누님들과 어울려 어머니를 찾아뵈었는데 올 설에는 모두 연로하신 터라 눈길에 낙상이라도 당할까 염려되어 동행을 할 수 없었다. 아쉬웠다. 하여 가족 단톡방에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올렸다. 셋째누님이 간단히 댓글을 올려주셨다.
“어머니 안녕하신지? 마음이 저려온다. 새해 복 많이 받기 바란다.”
곧바로 답신을 올렸다.
“네- 오늘도 웃으며 맞아주시네요. 누나들도 건강하게 잘들 지내냐고 물으시기에 그렇습니다, 하고 알려드렸습니다. 복되고 건강하고 편안한 설날 되세요.”
넷째누님도 댓글을 달았다.
“추운날씨에 애썼네. 어머니를 추억하며 설 명절 잘 보내고 건강에 주의하기를…”
일찍 작고한 큰누님 대신 조카 S가 댓글을 달았다.
“외삼촌 이모님들 모두 잘 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둘째 누님은 전화를 걸어왔다.
“수고 많았다. 어머니가 85세 때부터 치매가 좀 있으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나이가 돼보니 실감이 나는구나. 그리고 90이 넘어서는 80대 때와 달리 정신이 없다고 하시던 생각도 나는구나…”
그리고 누님은 올케인 아내와 한참 새해 덕담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엔 결혼한 딸아이가 아들에게 전화하여 시내에서 만나자 했다한다. 누나로서 동생에게 옷 한 벌 설빔으로 사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옛말에 ‘딸은 살림밑천’이라더니,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실감이 났다.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란 문구가 한때 기업광고로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가족처럼’ 참으로 살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인 가족은 대체로 혼인에 의한 혈연으로 맺어져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엔 혈연이라도 일상생활을 함께 공유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보니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안부전화나 문자조차 나누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 싶다!
하여 가끔 <이 시대의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회의와 함께 가족 속에 속해있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입춘(立春)과 대보름을 지나 우수(雨水)란다.
아내는 요양보호사가 됐으니 친정어머니인 장모님이 편찮으시면 잘 모실 것이다. 나는 아빠와 남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가족의 운전기사 노릇은 안전하게 잘하려는지… 각오를 새롭게 다져보는 맹춘(孟春)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