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사색(史索) 중] 장희빈

M스토리 입력 2025.01.16 14:54 조회수 988 0 프린트
서 숙종(전광열 분)과 장희빈(김혜수 분)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김만기의 딸인 인경왕후는 숙종 6년에 세상을 떴다. 이어 숙종 7년에 새로 후비를 들이니 노론 핵심 인사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이다. 그런데 인경왕후가 죽고 인현황후가 들어오기까지의 6개월 사이에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 있었으니 뒤에 장희빈으로 불리게 될 여인 장씨다. 그러자 왕대비인 명성왕후가 그녀를 궐 밖으로 내쫓았다. 명성왕후는 당파적 색채가 강하여 장씨를 쫓아낸 것도 장씨의 성품 탓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변에 대한 경계가 작용한 탓이다. 그런데 명성왕후가 숙종 9년에 눈을 감고 만다. 명문가에서 잘 배운 여인답게 인현왕후가 어느 날 청했다. 장희빈을 궁으로 불러들이자고, 왕실의 어른인 자의대비도 권했다. 그렇게 장씨는 궁으로 들어왔다.

그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장씨에 대한 왕의 사랑은 깊고도 깊었다. 장씨를 불러들인 인현왕후는 언제까지 현숙(賢淑)할 수만은 없었다. 은근히 장씨를 경계하는 말도 했고, 총애를 믿고 방자하게 구는 그녀를 불러다 야단도 쳤다. 장씨는 명목상 왕실의 큰 어른이지만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여인 자의대비의 마음을 얻었다. 바깥에 있을 때 그녀를 돌봐준 승선군과 그의 아들 동평군 이항도 그녀의 측근으로 오라비인 장희재와 그의 첩 숙정은 남인 잔여 세력과 연대를 구축했다. 집권당인 서인은 긴장했고, 부교리 이징명이 상소를 올려 장씨를 경계했다. 이징명에 이어 문장가 김만중이 재차 상소를 올렸지만 역효과만 났다. 김만중은 유배형에 처해졌고, 박세채는 이항에 대한 특별대우를 거둘 굿을 청했다가 심한 질책을 받았으며 영의정 남구만은 유배되었다. 장씨가 왕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장씨에게 빠진 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중전은 직접 후궁 간택을 청하여 김수항 집안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였지만, 왕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KBS사극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은 김혜수와 인현왕후 역을 맡은 박선영.

숙종 14년 10월, 장씨가 왕자를 생산했다. 나이 스물여덟에 처음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뒤를 이을 왕자가 없어서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지라 기쁨이 컸을 텐데 총애하는 장씨가 낳아서 더욱더 기뻐했다. 그런데 왕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장씨의 모친이 낮은 계급인데 옥교(임금이 타는 가마)를 타고 왔다고 사헌부 지평 이익수가 상소를 했다. 분개한 왕은 사헌부 법리들을 잡아 다스리게 했고, 내수사에서 얼마나 세게 다스렸는지 둘 모두 죽고 말았다. 신하들은 항변했다. 평소대로 한다면 왕은 더욱 분개했을 터인데 선선히 신하들의 뜻을 수용하고 물러섰다. 다른 구상이 있었던 것이다. 한발 물러서는 대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고 아들을 원자로 명호를 정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숙종은 중전 교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중전이 꿈에서 선왕과 선후를 뵈었는데, 숙원은 아들도 없고 복도 없어 오래 궁안에 두게 되면 경신년에 실각한 사람들과 결합해 나라에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하들은 중전을 내치려는 왕의 뜻에 동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왕은 귀인 김씨가 김수향과 결탁해 임금의 동정을 알렸다고 폐서인하여 내쫓고는 거듭 중전 폐출의 뜻을 강력하게 밝혔다. 이때 오두인, 박태보 등 86명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는데, 이 상소를 가지고 국청을 열어 난리를 피운 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마침내 인현왕후는 폐비되어 친정으로 쫓겨났고, 희빈 장씨가 새로운 중궁전의 주인이 되었다. 일개 궁인의 신분에서 빼어난 미모와 처신으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고 국모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경신환국의 억울함도 풀어주고 송시열, 김수항, 김익훈 등을 죽여 원한도 갚아주었다. 신하들의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인의 상징 인물인 허적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왕은 이제 그 자신이 남인인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도 집권 남인은 불안했다. 사실 이때의 남인은 집권 세력다운 면모가 부족했다. 윤휴 같은 명망 있는 이론가도 허적처럼 중량감 있는 대신도 더는 없다.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른 중전의 오라비 장희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왕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다였다. 또 다른 환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도 하지 않았고 앞선 집권 때처럼 청남, 탁남으로 나뉘어 다투지도 않았다. 그런데 숙종 19년, 남인을 긴장시키는 일이 있었다. 폐비에게 의리를 다하는 무수리 최씨가 우연히 왕의 눈에 띄어 사랑을 얻게 되어 총애를 얻자, 중전 장씨는 경계했고 남인들은 긴장했다. 기사환국의 본질은 남인으로서의 권력 교체보다 희빈으로의 중전 교체였듯이 갑술환국의 본질은 희빈의 강등과 폐비의 복위에 있었다. 처음에는 이와 무관한 듯 세자를 흔들거나 폐비를 신구하는 자는 역률로 노할 것이라는 노선이었지만, 불과 며칠 뒤 입장을 바꾸기 시작하고 폐비와 편지를 몇 통 주고 받더니 왕과 비는 회한의 상봉을 한다. 그리고 이날로 마음을 바꿔 중전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켜 별당으로 옮기게 하고 인현왕후를 다시 중궁전의 주인으로 삼았다. 인현왕후를 복귀시킨 장본인에는 장희빈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무수리 최씨가 있었던 것이다. 중전 자리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던 그녀는 왕에게 인형왕후의 덕과 풍모를 추켜세우며 왕의 그리움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로써 복위한 인현왕후는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환국이 있던 가을 최씨는 뒷날 영조가 되는 왕자까지 생산한다.
 
KBS 사극 '장희빈'에서 장희빈의 입을 억지로 벌려 사약을 먹이는 장면.

밀려난 희빈은 울분의 나날을 보낸다. 왕과 왕비에게도 문안을 가지 않았다. 세자가 문안을 오면 눈물을 쏟았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그녀는 아니었다. 오라비인 장희재는 비록 제주에 유배된 상태였지만, 그의 첩 숙정은 달랐다. 그녀는 마치 옛날의 정난정처럼 일가와 남인 잔당들을 모아 대책을 논의하곤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이홍발은 종들을 시켜 희빈의 아비 비석을 훼손하고 저주의 뜻으로 나무 인형, 나무 칼 등을 무덤에 묻어놓게 하였다. 그런 다음 장희재 집안의 종으로 하여 이를 고발토록 했다. 국문이 열려 전모가 드러났으나 장희재 집안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몰래 신당을 설치해 연일 저주굿을 벌였고 저주를 비는 물건을 땅에 묻었다. 중전은 병이 계속되자 희빈을 의심했다. 중전의 병이 깊어가자 궁녀들도 머지않아 희빈이 복귀할 것으로 보고 중궁전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인현왕후가 죽자 최씨는 희빈에 대한 그간의 일을 왕에게 고해바친다. 안그래도 죽은 왕비에게 부채 의식이 있던 왕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국청을 통해 희빈의 휘하 상궁과 나인들, 무녀들, 장희재의 종들이 실토하면서 왕의 말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렇게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다. 조용히 때를 기다렸으면 세자의 모후였기에 원하는 바를 얻었겠지만, 조급함과 울분이 화를 부른 격이다.

숙종의 사랑과 배신으로 일관된 정치, 장희빈은 정말 악녀였을까 의심이 된다.

최후의 승자는 영조를 낳은 무수리 최씨였던가. 정체된 시간은 얼마나 지속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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