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목사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고향 선배인 K목사님은 늘 귀감이 되는 명언이나 미담을 보내주거나 계절 마다 멋진 풍경사진을 보내주곤 했는데 이번엔 앵무새에 대한 잠언을 보내주셨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 한다 하더라도 자기 소리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K목사님도 다른 사람의 글을 여과 없이 세칭 ‘퍼 나르기’를 한 것이니 앵무새인 셈이 아닐까싶어 한 마디 답신을 보냈다.
“앵무새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앵무새의 생존법이 아닐까요? 그것은 앵무새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TV에서 앵무새가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보았는데 고양이가 동족으로 착각할 정도였던 기억이 나서였다.
사실 나는 누가 ‘퍼나르기’ 하는 것에 대해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K목사님에 대해서만큼은 이해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K목사님은 암으로 오랜 세월 고생하셔서 피곤한 일이나 과도한 행동을 자제하고 피하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전화도 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다만 적적하면 스트레스가 적은 퍼나르기나 간단한 문자로 무전 교신하듯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따라서 나도 목사님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전화 대신 사진이나 문자로 답신을 보내곤 한다.
K목사님은 암 걸리기 전엔 말씀이 청산유수(靑山流水)였다. 그리고 목사가 되기 전 젊은 시절엔 한때 간호사인 우리 누님과 모병원에서 함께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말솜씨가 좋았는지 9살이나 연하인 글레머스타일의 간호사와 연애결혼을 한 것에 대해 우리 누님은 가끔 ‘일평생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사건’이라고 혀를 내두르시곤 하신다.
그렇다고 목사님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거나 한 기억은 없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며 먹고 사는 부류가 있다면 모창가수나 코미디언(개그맨)들이다. 그들은 인기연예인이나 유명정치가의 음성이나 특징을 기발하게 모사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직업인이다.
그런데 그들이 흉내 내는 대상인 인기연예인이나 유명정치가는 원래 자기만의 독특한 말이나 행동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도 알고 보면 누군가로부터 심히 영향을 받았거나 유전적으로 닮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욕(비난)을 하면서 닮는다.’는 속담처럼 어떤 친구는 아버지를 ‘꼰대’라느니 ‘고집불통’이라느니 심지어 ‘악마’나 술고래’라고 부르곤 했는데 성장하면서 자기아버지와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언젠가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인 줄 알고 농담을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응대하는 어투가 이상해서 알고 보니 친구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성격이 유전되기도 하겠으나 한집에서 오래 함께 먹고 자고 싸우다 보면 서로 닮는 게 아닐까싶다. 하지만 모든 언어와 행동이 똑같지는 않았다. 그들 가족만의 개성적이면서 상투적인 언어와 음색 몇 가지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앵무새 역시 사람의 말 가운데 아주 특징적인 소리나 말을 짧게 흉내 낼 뿐이란 느낌이다.
언젠가 여름에 올림픽공원에 산보를 나갔을 때였다. 몽촌토성 잔디언덕 어디에선가 낯선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생소한 소리라 아내와 나는 소리가 나는 쪽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깃털이 화려하고 우아한 새 두 마리가 허공을 나르며 마치 오페라 가수처럼 청아하게 우짖고는 올림픽공원을 한 바퀴 휘돌아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양금택목(良禽擇木)이라 했던가. 역시 ‘큰 새는 큰 나무에 앉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처음엔 그 새가 어느 동물원에서 탈출한 공작새가 아닌가, 추측을 했었는데 잠시 후, 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 그 새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자 그 새들은 다시 나무를 떠나 높이 허공을 날아오르더니 곧바로 하강하여 그의 두 팔에 척 내려앉는 것이었다. 마치 잘 훈련된 독수리처럼.
때마침 우리와 함께 구경하던 누군가 그 새는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는 ‘큰 앵무새’라고 알려주었다. 하여 나는 그 큰 앵무새가 열대우림에서 함께 서식하던 어느 맹금류의 소리를 흉내 내거나 저택에서 함께 살았을 어느 성악가의 노래 소리를 흉내 낸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았다.
새소리 흉내 내기라면 친구 S네 형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S네 형은 C시에서 A시로 이사 가기 전에 새를 몇 마리 키웠었다. 그 새들은 그 형이 직접 산에서 잡아온 것들이라 했다.
어느 해 여름인가, 하루는 친구S가 형이 또 새를 잡으러 뒷산에 갔는데 같이 가보자고 하여 우리는 형이 있는 뒷산으로 뛰어올라갔다. 예상대로 형은 뒷산골짜기에서 새장에다 콩새 암컷을 넣어놓고 한 쪽에는 새 그물을 쳐놓고 바위 아래 숨어 수컷 새가 날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기다려도 수컷이 나타나지 않자 형은 암컷 콩새처럼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정말 콩새 수컷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새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리다가 암컷이 새장 안에 갇혀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후루룩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날 콩새를 잡지는 못했지만 무시로 그날의 영상이 또렷이 생각난다. 왜일까? 아쉬움인가, 안도감 인가?
며칠 전, 그날의 친구 S에게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와 함께 그 친구는 “야, 요즘 사라진 줄 알았는데 동면 골짜기에 갔더니 때까치가 날고 있더라.”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순간 그 여름날 S와 때까치 둥지를 찾아다녔던 생각이 났다. 참나무가지를 타고기어 올라가 둥지 안에 있는 새 새끼들을 바라보며 어미 때까치처럼 입술을 오무려 쭈쭈 하고 소리를 내면 때까치 새끼들이 일제히 노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악을 쓰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