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복날의 단상

M스토리 입력 2024.08.19 14:23 조회수 1,371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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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키지 않으면 등과 목에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힌다. 장마에다 폭염이다. 산과 들이 짙푸르고 아름다우나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복날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했던가! 뜨거움을 뜨거움으로 견뎌낸 조상들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하지만 평소에 유약하고 나태한 나로선 여름휴가조차 떠날 자신이 없다. 가족들과 함께 말복까지 어떻게 지내야할지 난감할 뿐이다.

그나마 아들이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이 있어 다소 견딜만하다. 더위가 슬쩍 비껴가는 기분이다.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더니, 아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하여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들에게 엄지척을 보내주었다. 아내에게도 그동안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수고 많았다고 한마디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게 아니었다.

“얼마나 더 다닐지 두고 봐야 해요.” 한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들이 수시로 직장을 옮겨 다닌 것이 그 이유이겠으나 그래도 듣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다. <부부 하모니>에 대한 노하우랄까. 전 같았으면 <말이 씨가 된다, 왜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느냐, 아들 앞날에 초 칠 일 있냐!> 하고 아내에게 일장 연설을 했을 터였다. 그럼 언성이 높아졌을 것이고 감정이 격해져 마음이 극도로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내의 말에 적극 동조한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우선 시보를 잘 마쳐야겠지.” 라고 한마디 덧붙이며.

부부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긍정적 상호작용을 부정적 상호작용보다 5배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이해하고 좋은 점을 살펴 더 많이 칭찬하라는 의미리라.

칭찬엔 고래도 춤을 춘다지 않는가.

하지만 칭찬을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대개 남녀가 처음 만나 연애를 할 때는 사랑하는 감정으로 아낌없이 칭찬을 한다. 또 상대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능동적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그런 환희는 결혼하고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점차 감소하게 마련이다. 권태기랄까, 사람의 감성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살다보면 빚보증 같은 금융문제나 불미스러운 스캔들 같은 함정에 빠져 불화를 겪기도 한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갈수록 부정적인 말, 칭찬보다는 험악한 말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갱년기>야말로 남녀 공통의 막장 함정이 아닐까싶다.

남자는 여성 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 성정이 부드러워지고 매사에 쉽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한다.

여자는 반대로 남성 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 목소리가 커지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변해 상대를 압도하려한다. 따라서 자칫 사소한 일에도 의견 충돌을 일으키며 갈등이 빚어진다. 하지만 갈등은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벌어지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의 변곡점(變曲點)이랄까, 갈등의 수위만큼 더 사랑스럽고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한때 그랬던 것 같다. 아내가 넉넉지 못한 월급으로 어렵게 가정살림을 꾸려가는 데 대해 “고생이 많소!” 하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은 고사하고 사사건건 비판을 하거나 하찮은 상식으로 일장 설교를 일삼곤 했던 것이다.

하여 그런 어느 날인가 아내는 귀를 막고 입을 봉해버렸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한동안 그런 아내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지냈다. 아내의 눈에서 숯불 같은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그러던 어느 날인가, 아내의 눈에서 고드름 같은 차가운 빔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황급히 아내에게 다가가 엎드려 삼배(三拜)를 했다. 아내가 이번엔 돌아앉아 외면을 했다. 나를 쳐다봐야할 시선이 산 너머 어딘가에 가있는 것 같았다. 하여 나는 아내에게 다시 삼배를 했다. 그러자 비로소 아내가 돌아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고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나에 대한 온갖 감정을 밤새 쏟아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독선적인 말, 교묘한 말, 상스러운 말, 비겁한 행동 등 그동안 내가 행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말과 행위에 대해서 낱낱이 들려주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나는 그날 아내에게 모든 것을 사죄하고 용서받고 새롭게 살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했던가.

그날 이후 하루는 TV를 보다가 무심코 “저 XX 웃기네.”라고 했더니 아내가 그만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리셨네요?”하고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

이따금 나는 나에게 묻는다. <아내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가?>

그러면 나는 또 다른 내면의 나에게<그렇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래놓고는 다시 의심을 한다. <진정 그런가?>

사랑의 효용이 다한 것일까? 어쨌든 휴일이면 내가 업무상 거주하는 지방의 아파트 인근 텃밭에서 거둔 상추며 아욱, 열무 같은 푸성귀를 한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달려간다. 가서 <이게 내 마음이요>하고 아내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아내는 일거리를 몰고 왔다고 주방에서 이마를 찡그리고 한마디 한다.

“다섯 번도 더 물에 씻어야 겨우 흙이 씻기네요.”

그런 아내에게

“그래? 그럼 다음번엔 깨끗이 씻어서 가져올 게. 당신 힘들지 않게.”하고 재빨리 변명한다. 그러면 아내는

“아니에요. 미리 씻어놓으면 물커질 수 있으니까, 그냥 가져오는 게 좋아요. 수고하셨어요.” 한다.

아, 복더위가 멀리 물러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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