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내일의 풍속] 여름 생존기

M스토리 입력 2024.08.19 14:10 조회수 2,390 0 프린트
 

‘올해는 특히 덥고 비도 많이 오지 않아?’ 매해 여름마다 하는 불평이다.

봄부터, 올 여름엔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올 거라는 기상청의 전망이 뉴스에 실렸다. 매년 똑같은 얘기가 되풀이되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틀리기 바랐던 전망은 불행하게도 정확해 보인다.

비가 많이 오는것도 문제지만 최악인 점은 비가 오는 패턴이다. 동남아에서 한달 살기를 할때 겪었던 스콜이 생각난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때만 해도 쨍쨍하더니 밥을 먹는 동안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계산할 때쯤 비가 뚝 그치는 식이다.

며칠 전 일을 떠올려보자.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날씨 앱을 연다. 비 예보가 있으면 지금 날씨가 어떻든 장화를 신고, 우비를 챙겨서 나가야 하니까. 그날 아침에는 비 예보가 없기에 아끼는 새 운동화를 신고 바이크를 타고 체육관에 갔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깨끗하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다. 바이크를 주차해 둔 곳으로 갔는데, 바이크가 약간 젖어있었다. 저 멀리 먹구름이 좀 보였지만 주변 하늘은 파랗고 햇빛도 쨍쨍하기에 비가 지나갔겠거니 하고 바이크를 타고 출근했다. 분명히 출발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출발한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의 속도가 느렸지만 굵기가 두꺼워서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노출된 피부에 닿으니 따가울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빗방울의 크기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앞만 보며 달렸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다. 2분쯤 지났을까?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옷이며 신발, 양말까지 삽시간에 젖어갔다. 출근 시간은 바이크로 10분인데, 그 사이에 온몸이 쫄딱 젖을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우측 골목에서 급하게 들어오는 바이크를 늦게 보고 브레이크를 세게 잡았다. 뒷바퀴가 흘렀지만, 순간적으로 되찾은 평정심으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도로에 비가 충분히 흡수되었을 때보다 막 비가 내렸을 때의 도로가 더 미끄럽다. 마음이 급할수록, 비가 내릴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날씨라는 이름의, 이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바이크를 탈 수밖에 없는 나는 7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안장 위에 올랐다. 그리고 8월, 장마가 지나갔다 하여 환호성을 질렀는데 폭염이 찾아왔다. 머리가 띵할 정도의 폭염이다. 오 분만 바이크를 타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선크림이 섞인 땀이 온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 이러면 선크림을 바르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헬멧 쉴드를 열고 달려도 헬멧 속에 맺힌 땀은 마를 줄을 모르고 또르르 흘러내리기에 바빴다. 폭염과 장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답은 ‘그런 건 없다.' 장마도 폭염도 라이더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큰 장애물이다.

폭염 중에 라이더로 살아남기에 대한 조언 첫 번째. 우선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 땀을 어마어마하게 흘리면서 건강하게 살아있으려면 그만큼의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그냥 물보다는 전해질이 들어있는 이온음료가 낫다. 당때문에 이온음료가 꺼려지는 사람들을 위해 요즘에는 저당, 혹은 무가당 이온 음료가 나온다. 두 번째 조언은 전업 배달 노동자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해가 쨍쨍한 한낮의 라이딩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장거리를 간다면 해가 진 이후나 해뜨기 전이 좋다.

여름의 라이더는 매일매일 고행을 한다. 하지만 여름의 라이딩이 괴로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가 지면서 지열이 잦아들고 사방이 노을로 깔리는 아름다운 시간은 여름일 때 빛을 발한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마치고 머리끝이 살짝 젖어있는 상태로 맞는 후덥지근한 바람은 여름의 냄새가 난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지나 나무와 풀로 가득한 시골 도로를 지날 때 느껴지는 시원함과 청량함에는 미소가 절로 나온다.

라이더는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쉽게 알아챈다. 요 며칠 사이에 아침과 저녁의 공기가 약간 시원해졌다. 이제 광복절만 지나면 한풀 꺾이고, 9월 1일부터는 가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 가을로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면 이 열기도 조금은 견딜만하지 않은가?     
by.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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