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 잘 쓰면서도 아리송한 ‘어쭈구리’란 말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상대방을 비하할 때 쓰는 말로 <어주구리(魚走九里)>가 그 어원이라 한다.
한나라 때 어느 연못에 잉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메기가 갑자기 나타나 잡아먹으려하자 냅다 도망간다는 게 그만 뭍으로 기어올라 지느러미로 정신없이 달리더라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나가던 농부가 보고 뒤따라가 보니, 잉어가 십리가 채 못 되는 구리쯤에 가서 힘이 빠져 멈췄다는 일화가 흥미롭다.
그런가하면 아는 듯 이해가 부족한 말도 있다.
어느 날인가, 마침 아들이 거실에 나와 앉아있어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할까하다 문뜩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생각나 아들에게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바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내 무지함을 보충해주었다.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공자님의 가르침이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들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게 어떤 것인가?
잠시 생각을 꼬누어보았더니 창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감감히 그려졌다. 한 해 동안 건강관리를 하느라 저녁이면 헬스장에 열심히 다녔던 때였다.
헬스장에 갈 적마다 그곳에서 등에 용(龍) 문신을 한 조폭 출신 남자 두 사람을 만나곤 했는데 한 사람은 호남형의 스킨스쿠버였고 또 한 사람은 미남형의 제빵사였다. 운동을 마치는 시간이 서로 엇비슷해서 함께 샤워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라 했다. 놀기를 좋아하여 반에서 1,2 등을 뒤에서 다투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스킨스쿠버와 제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격증을 따느라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자격증을 따고 가게를 내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검은 손도 깨끗이 씻게 되었다 했다.
“학교 때 그렇게 열공 했더라면 S대도 갔을 겁니다.”
스쿠버 남자가 샤워를 마치고 음료수를 마시며 너스레를 떨던 모습이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어느 날인가, 내가 스쿠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자 스쿠버 남자가 반색을 하며 다음날 스쿠버 전문잡지를 한 권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취미로 하기엔 장비구입이나 소요비용 문제 등이 만만치 않아 망설이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들처럼 열정적인 때가 언제 있었던가?
물론 한때의 치기랄까, 친구들과 새벽 같이 일어나 낚시를 다니던 학창시절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지인들과 밤새 고스톱을 치던 때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여기저기 열심히 싸돌아다녔던 때도 기억이 났다.
누구나 여행은 다들 좋아하겠지만 나 역시 언제나 준비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고 다니다보면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는 여행이 좋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좀 색다른 곳을 찾아가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동물의 왕국 아마존의 밀림을 탐험해보고 싶고, 남극에 가서 펭귄을 만나보고 싶고, 알프스에도 가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였던 언덕을 넘어보고 싶다.
또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의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케냐의 초원을 글라이더로 날아보고 싶기도 하고, 앤디 윌리엄스가 부른 <문리버>를 들으며 뉴욕의 아침거리를 뉴요커처럼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배를 타고 먼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무인도에도 가보고 싶고 유럽의 공원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낯선 누군가와 정담을 나누고 싶고, 뜨거운 열사(熱砂)의 사막을 하염없이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우연히 유튜브를 보았는데 미국 동부에 사는 파란 눈의 스님이 서부 사막에서 도보여행을 하는 프로를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부쩍 더 난다. 열사의 사막을 횡단하는 험난한 고행이랄까, 스님을 따르는 지인들도 여럿 동행을 하였는데 PD가 “왜 하필 더운 여름날 여행을 하느냐?”고 한 참가자에게 질문을 하자 “우물 속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아리송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마치 스님의 대답을 그가 대신 해준 것 같았다.
하지만 좋아하기도 어렵지만 즐기기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시간적 여유나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무엇을 아무리 좋아한들 타고난 의지와 체력, 경제적 능력이 일천하면 고작 구리 정도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계상황이랄까! 그래도 여행만큼은 좋아할 만큼은 좋아해보고 싶다.
그 마음을 졸시로 그려본다.
<섬>
새가 좋아 새가 된다
돌이 좋아 돌이 된다
나무가 좋아 나무가 된다
꽃이 좋아 꽃이 된다
올 여름에는 미국 서부지역을 횡단한 스님과 지인들처럼 우물 속 같은 답답한 도심을 탈출하여 사하라 사막이나 한려수도(閑麗水道) 아니면 태평양의 푸른 섬을 찾아가 보고 싶다.
어쭈구리, 나 역시 잉어처럼 십 리도 못가서 멈출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