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내일의 풍속] 대만 여행기 - 1 - 대만의 첫 인상

M스토리 입력 2024.04.16 13:06 조회수 1,706 0 프린트
 

여행하는 법은 다양하다. 좋아하는 영화에 나온 장소를 찾아다니는 ‘성지순례’나 ‘맛집 투어’처럼 테마를 정하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하는 거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자들은 ‘꼭 가봐야 하는 명소 TOP 5’를 모두 섭렵하는 것을 여행의 목표로 삼기도 한다. 휴양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멋진 리조트에서 머물며 여행 기간 내내 그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모든 걸 해결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와 혼자 여행할 때의 지향점이 각각 다르다. 함께 여행할 경우에는 동행의 체력과 취향 등을 고려해서 그 사람에게 맞추어 일정을 계획하고, 내 의견이 강하게 들어가는 때는 식당이나 찻집 선정 정도이다. 혼자 여행할 때의 나는 로컬처럼 여행한다. 주민들을 관찰하고,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다. 여행자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입하고, 먹고, 마시고, 타는지 살펴보고 그대로 경험해 보았을 때가 가장 즐겁다.

한국에는 폭설이 내린 2월 말, 나는 대만의 가오슝에 갔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는데, 애초에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았다. 가오슝은 대만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가 있고, 수도인 타이베이에 비해 온화한 날씨를 가졌다. 이리 생각해 보면 부산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에서 대만은가깝지만, 해외여행이란 게  늘 그렇듯 이동이 일이다. 내가 사는 순천에서 김해공항까지 2시간이 걸렸고, 공항에서 3시간을 대기하고, 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다. 가오슝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아 지하철인 MRT를 타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9시간의 시간을 들여서야 드디어 가오슝의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선명한 햇빛과 후덥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가오슝의 2월 말 날씨는 마치 한국의 초여름 같아서 한국에서 입고한 긴바지와 긴팔 아래로 땀이 송송 맺혔다.

도시의 첫인상은 횡단보도였다. 인도를 따라 직진할 뿐인데도 횡단보도가 계속 나왔다. 한국이었다면 신호등이 없었을 짧은 횡단보도마저도 신호등이 있었다. 그런데 횡단보호가 크게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면 대만의 횡단보도 신호등은 녹색불로 점등되기까지의 대기 시간이 짧은 데다가 녹색불이 켜져 있는 시간도 길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의 점등 시간에 예민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 덕분이다. 바이크를 타다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재활하는 1년여 동안은 걷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그때 가장 곤란했던 것은 횡단보도였다. 횡단보도의 정지선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녹색불이 점등되면 건널 생각은 접어두어야 했다. 신호가 아직 녹색불이더라도 나는 신호등 앞에서 대기했다가 녹색등이 점멸하고 다시 점등되면 그때 횡단보도를 건넜다. 왜냐면 신호등 점등 시간이 너무짧아서 점등되자마자  출발해야 겨우 빨간불로 바뀌기 직전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찾아봤다. 한국에서는 횡단보도 보행자 점등 시간을 보행자 진입 시간 (7초)+ 1m당 1초로 계산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10m짜리 횡단보도의 경우에는 17초 동안 녹색불이 점등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만의 횡단보도 신호등 점등 시간은 길게는 50초에서, 10m도 되지 않는 짧은 횡단보도도 30초 정도로 넉넉했다. 교통체계가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짜인다면 모두에게 좋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고, 언제든지 다칠 수 있고, 언젠가는 늙으니까. 
대만의 보행자 신호등. 보행자 신호등이 켜질 때는 이륜차 픽토그램도 함께 켜져서 움직인다.

두 번째 인상은 바이크였다. 도로에는 사륜차보다 더 많은 수의 바이크가 있었다. 갓길이나 건물 앞에 있는 이륜차 전용 주차 공간에도 주차된 차들이 가득했고, 넓은 이륜차 전용 주차장도 자주 보였다.
2박 3일 동안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이었다. 가오슝에서는 시내를 가로지르는 트램을 타고, 호텔의 수영장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은 인근 휴양지인 컨딩을 방문했다. 가오슝에서 남쪽으로 100km 정도 왔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컨딩은 최남단에 위치한 바닷가마을로, 거의 사계절 내내 열대 기후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도 이국적인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륜차들이 사륜차보다 앞에 있는 정지선에 멈춰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컨딩에서는 겨울에도 스노클링이 가능하다.

컨딩은 사륜차를 이용하면 작지만 걷기에는 큰 지역이다. 대중교통과 택시가 적어서 제주도의 시골과 비슷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외국인도 현지인 관광객들도 모두 사륜차나 이륜차를 이용한다. 나도 스쿠터를 타고 컨딩의 해안 도로를 달리고 싶었지만, 우리는 가오슝에서 렌터카를 빌려왔다. 하지만 컨딩은 스쿠터로도 충분히 하루 동안 둘러볼 수 있으니, 스쿠터가 익숙하다면 렌털을 추천한다. 다만 여행자의 미숙한 조작으로 스쿠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듯하니 운행에주의를 요한다. 낮에 물놀이로 기운을 빼고 나니 슬슬 출출해졌다. 저녁은 컨딩 야시장에서 사 온 현지 음식과 각종 열대과일 등으로 작은 파티를 벌였다. 어린이를 동반한 2박 3일 가족여행은 이로써 마무리가 되었다.    
by. 박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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