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석 “바이크 타면서 실종될 뻔했던 남성호르몬을 되찾았어요” 

백현주 교수/방송인 입력 2020.10.17 19:02 조회수 5,273 0 프린트

 
 
 

한 우물을 파서 인생의 승부를 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의 마음을 얻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이 어려운 걸 지금까지 줄곧 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방송인 남희석이다.

개그맨으로 데뷔해서 ‘빠라바라바라밤’ ‘오빠 달려’ 같은 유행어를 만들며 유행어 트렌드를 이끌어가던 그는 가장 핫한 시기에 진행자로 또다시 대중들의 신뢰를 얻었고 지금까지 공신력 있는 MC로서 활약 중이다.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으로 한 우물을 판 방송인 남희석. 그의 뚝심 인기와 활동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의 취미생활에서 비결을 찾아봤다.

2010년 초부터 바이크에 심취했던 남희석은 벌써 10년 가까이 바이크 마니아로서 전국을 종횡무진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바이크를 탄 경험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의 바이커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 남희석의 인기 비결 그리고 에너지 재충전의 비결을 듣기 위해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로 향했다. M스토리의 취재진을 위해 직접 음료수를 사가지고 온 남희석씨에게 오랜만에 아날로그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더 많은 궁금증이 발동했다.

 

오래 전 이미 바이크와 관련된 유행어를 만든 장본인이었음에도 그때 당시에는 정작 바이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점도 인터뷰의 시작부터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빠라바라바라밤’하고 ‘오빠 달려’를 만들었어도 (바이크와) 전혀 멀리 있었어요. 전혀 관심도 없었고, 그리고 굳이 그걸 왜 타지랑 위험하지 않나 그건 최민수 형같은 사람만 타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렇다면 남희석씨가 바이크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남성호르몬 분비가 안 되고 여성적으로 변하고 있었어요. 고등학생 골든벨을 보면서 고2가 43번 문제에 혼자 남았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나는거에요. 김연아가 금메달 따면 난리 나고 새로운 시도를 못하는 거죠. 마흔 넘어 마흔 한두 살 때 새로운 시도하려면 걱정이 앞서고 굳이 이걸 왜 하지라던가. 천천히 안정되게 조용히 살지 라던가 그러면서 어느 날 남성호르몬이 고갈됨을 느껴서 뭔가 바꿀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하다 (바이크)면허를 따자라는 생각으로 자동차 학원을 무조건 가서 접수하고 면허를 따게 된거죠.”

그의 생각처럼 바이크 면허를 따고 나서 너무나 편하게 곧바로 바이크를 사서 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의 마음을 얻는 일이었다. 동의를 구하고자 처음엔 헬멧을 사서 TV볼 때도 쓰고 시청했고 이후 점퍼 장갑 등등 집에서 있는 시간에는 바이크 복장과 안전장치를 하고 있기를 10개월 남짓.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아내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한다.

전치 6개월이면 바로 이혼이라는 아내의 엄포를 마음에 새기고 곧바로 바이크 라이딩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할리데이비슨 브레이크아웃으로 처음 라이딩을 시작한 남희석씨는 3년 정도 꾸준히 동호회 활동도 해가면서 할리를 탔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혼다의 아프리카 트윈이라는 걸 타고 막상 오프를 가지 않으면서도 SUV타고 도심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약간 속도감이나 제어하는 맛을 느끼고 싶어서 탔죠. 그런데 저는 흔히 뿅카라고 하는 그쪽은 안 탔어요. 운동신경이 옛날보다 좋지 않을 것 같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쪽은 안갔죠”

안전을 제일 우선으로 하며 타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 남희석씨는 바이크 면허체계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면허 취득을 위한 연습이나 시험 등이 실제 도로에서 자동차들과 섞여서 주행할 때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는 남희석은 그 문제점의 원인 파악과 해결방법을 찾아보고자 직접 도로교통안전공단을 찾아가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나눴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경찰은 공단에 넘겼고, 공단은 모든 변화에 대한 거는 경찰에서 하는 거지 우리가 집행해서 하는 게 아니다 이러더라고요. 우리나라 바이크 면허는 이렇게 면허시험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가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동네에서 배달하는 친구한테 배워서 면허 따러 가는 형태처럼 인식이 되어있어요. 시스템화가 안 되어 있어요. 합격률도 너무 낮은 게 어떤 때는 열 명이 시험 보면 두 명만 합격되거든요. 문제는 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거 같아요,”

남희석씨는 불법개조나 소음 규제 등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제 인식에 동의한다면서 이륜차의 고속도로 진입 허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도로 지형의 특성 등 모든 걸 감안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보탰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가장 인상적인 라이딩 장소가 어디였는지 인생 명소를 물어봤는데, 뼛속부터 바이커인 남희석에게 잊지 못할 라이딩 명 장소는 바로 고비사막이었다고 답했다.

“제 인생 최고의 멋진 샷은 몽골에서 탔던 거에요.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브레이크가 없는 바이크였는데 몽골 목동이 말 타고 양들을 몰다가 멀리 이동할 때는 혼다 바이크를 타요. 그런데 브레이크가 없더라고요. 그걸 고비사막에서 타거든요. 그걸 개그맨 박수홍이 찍어줬어요. 김수용이랑 박수홍은 못 타니까 나를 찍어주기만 하고 낙타 키우고 있는 그 사막을 달리는데 딱 그거였어요. 내가 가는 길이 길이라는 카피도 있잖아요.” 이미 바이크 인생샷을 경험했다는 남희석. 그는 또다시 인생샷을 경신하기 위해 어디로 향하고 싶을까? “통일되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가장 멋진 오프 로드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유럽 사람들이 북한 쪽에서 판문점까지 왔다가 통과를 했는지 그랬던 외국 사람들이 있데요. 전체적인 통일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바이크 길이라던지 부분적으로 열어준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필자 또한 남북 오프 로드가 열리는 그날이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남희석씨와의 바이크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백현주 교수/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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