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인터넷을 검색하다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장자(莊子)의 허주(虛舟)가 기억나 다시 찾아보았다.
강에서 배를 타고 노닐 때, 누군가 타고 있는 배가 와서 부딪치면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불 같이 화를 내겠지만,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빈 배(虛舟)가 와서 부딪치면 화를 받아줄 대상이 없으므로 화를 내지 않는다는 우화다. 장자는 이 우화를 통해 <빈 배처럼 자기를 비우고 담담히 세상을 그저 노니는 멋으로 산다면 그 누가 나를 해치려하겠는가?> 하고 무위(無爲)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누군가로부터 린치나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스트레스를 없애고자 술을 취하도록 마시거나 아무도 없는 바닷가나 깊은 산속을 찾아가 큰소리로 울분을 토해내기도 할 것이다. 또는 각종 명상으로 정신을 단련하고 수양을 해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정을 차분히 진정시켜보려고 노력도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약에 나오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산상의 수훈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 왕의 잠언도 수시로 가슴에 새겨보았으리라. 하지만 쉽사리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 고통은 시간이 흘러도 좀체 사라지지 않았고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가 되어 심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인터넷에서 <허주>를 다시 찾은 순간, 번쩍! 한줄기 섬광이 비치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랍게도 마치 2300 년 전 장자가 비로소 직접 나를 찾아와준 것만 같았다. 반갑고 고맙게.
또한 동시에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랬으면 머리털이 덜 빠졌을 것이고 흰머리도 훨씬 덜 났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그 우화를 읽고 나자 그 언젠가 직원P와 심하게 말다툼했던 기억이 간헐천의 수증기처럼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그래 P는 허주였어- 머리가 텅 비고 가슴도 텅 빈, 빈 배야!> 하고 연상했다. 그러자 일순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랄까, 트라우마가 깨끗이 지워지고 원수가 원수가 아니게 된 것이었다.
아,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한 해법이 있다니!
그러나 세상엔 콩쥐가 있으면 팥쥐가 있고,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는 법. 오래지 않아 절대로 <빈 배>해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족과의 관계 그것이었다. 상대가 아내나 아이들 혹은 형제일 경우에는 빈배의 논리가 왠지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와 한 몸인 동시에 공동 운명체인 까닭에, 아니 나와 함께 <한 배>를 타고 있기에 그런 것 같다. 일생동안 아니 영원히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야하는 존재들이기에 말이다.
가령 어느 날, 우리 집 아이가 이웃집 아이에게 얻어터지고 집으로 들어왔다고 하자. 아이의 코에서 코피가 흐르고 입술과 눈이 찢어져 얼굴이 엉망이다. 부아가 치민다. 하여 야구방망이를 뽑아들고 그 이웃집으로 달려간다. 아내도 주먹을 부르쥐고 맨발로 뒤따라 나온다. 한 배를 타고 있기에...
부부는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미명으로 맺어져 ‘가족’을 만들고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하지만 다시 보면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마치 ‘전생의 빚쟁이와 철천지원수가 만나는 것’이라는 속담이 그럴듯하다. 하여 서로 일생을 뒷바라지해야 하고 온갖 투정도 스스럼없이 다 받아주어야 한다.
형법(제328조)에도 「친족상도례」라 하여 가족 간에는 특수사정을 고려해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그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 배를 탄 사이이기에, 가족은 서로를 책임지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의무와 권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 그런지 요즘 사사건건 아내의 잔소리가 자심하다. 사람이 들어올 때는 나와서 얼굴보고 인사해라, 거실청소는 구석까지 해라, 산책할 때는 똑바로 걸어라, 쓰레기 분리수거는 틈틈이 해라, 외출에서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손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어라... 아들 딸 역시 불만이 많고 요구사항도 많다. 게다가 툭하면 빈손을 불쑥 내민다... 한 배를 타고 있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럽기에…
십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날인가, 누나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모터보트를 타러 청평 호수에 몰려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날 마침 회사의 급한 업무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치 왕따를 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 기분은 그날 이후에도 여름만 되면 은근히 가슴 밑에서 앙금처럼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하여 나는 기어코 지난해 여름, 한강 서울조종면허시험장에 가서 모터보트 운전면허증을 따고야 말았다.
면허증을 손에 쥐는 순간, 가슴이 콩콩 뛰었다. 그야말로 이제 비로소 삶의 숙제를 풀어낸 것만 같았다. 마치 가족들을 모두 다 태울 수 있는 빈 배를 한 척 마련한 것 같았고 장자처럼 스스로 빈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해 연말이었다.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했다던가. 마침 호반의 도시 춘천을 꾸준히 지키고 사는 J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에 무슨 좋은 계획 없냐?”
“있지. 여름휴가를 춘천에서 보낼까 하고 모터보트 면허를 땄지.”
“그래. 잘 됐다. 와라. 나도 작년여름에 제트스키* 타는 재미로 살았다.”
아직 춘분, 청명도 지나지 않았지만 여름이 벌써 기다려진다. 춘천의 푸른 호수에서 J형과 함께 신바람 나게 제트스키를 타며 보낼 여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