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호는 처음으로 바이크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필자가 실제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각색한 기사다. 이번 기사에 나온 친구의 이름은 가명이다.
융구에게. 융구야 네가 이번에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바이크 여행을 떠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신났어. 내 여행이 아닌데도 그렇게 신나다니 좀 웃기지? 바이크를 사고 얼마 안 되어서 입사하는 바람에 자주 타지는 못했지만, 스트레스받을 때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라이딩을 가던 너잖아. 2017년도부터 사고 한 번 안 낸 너니 안전운전 하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을게. 그렇지만 국도에서는 아무리 최고속을 쥐어짜도 다른 차들이 너를 마구 추월하고, 그렇다고 하위차선에서 달리면 결국엔 덜덜거리는 커다란 화물차 뒤에 붙어 가게 될 텐데, 화물차에서 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 거야. 국도에서는 평정심과 눈치가 중요해. 긴급 상황이 아니면 속도를 높일 때도 늦출 때도 서서히 해야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면 일단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눈치를 보는 거야. 후방, 전방, 교차로일 경우에는 양옆까지. 그러곤 너의 판단을 믿으면 돼. 도로 상황을 고려해서 2차선과 3차선을 잘 이용하면 괜찮을 거야. 출발할 때나 차선을 변경할 때 최대한 양보하고,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해. 특히 휴게소나 주유소에서 나올 때 대형차를 먼저 보냈으면 좋겠어.
이번에 비 소식이 있더라. 네 바이크에 달린 USB 포트로 핸드폰을 충전할 거잖아? 근데 비 올 때는 USB 포트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 비 오는 걸 대비해서 대비해서 보조배터리가 하나 있으면 좋겠네. 아니면 주행 중간에 핸드폰 충전 겸 휴식이 가능한 카페 위치를 지도에 미리 표시해 두고, 배터리 잔여량 체크를 주기적으로 한다면 괜찮을 수도 있어. 그리고 USB 포트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커버를 잘 닫아야 해. 한번은 내가 라이딩하다가 갑자기 비가 와서 USB 포트에 꽂아둔 충전기 선만 후다닥 빼고 깜빡하고 커버를 닫지 않았더니 거기에 물이 들어가서 고장이 나버렸더라고. 비가 오면 핸드폰 거치대도 못 쓰겠지? 그리고 아직 추운 날들이 이어져서 낮은 기온 때문에 핸드폰이 방전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 추위 때문에 핸드폰이 방전되면 뒤에 핫팩을 붙여두는 방법이 있어. 오랫동안 붙여두면 기계에 무리가 갈 테니까 이 방법은 급할 때 잠깐 사용하기 좋아. 핸드폰 거치대를 사용하지 못할 때는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귀로만 내비게이션을 들으면서 가게 될 텐데, 핸드폰은 바지나 외투 주머니에 넣으면 절대 절대 안돼. 한번은 내가 외투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국도에서 떨어뜨려서 고장나는 바람에 한밤중에 국도를 3시간이나 헤맨 적이 있거든. 그 이후로 장거리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야 한다면 그냥 탑 박스에 넣는 습관이 생겼어. 근데 너는 탑 박스가 없다고 했으니까, 지퍼나 벨크로가 있는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는 게 좋고, 핸드폰을 포함한 자주 쓰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작은 보조 가방을 메는 것도 좋아. 혹시 집에 사용하지 않는 핸드폰 공기계가 있다면 그걸 내비게이션 전용 핸드폰으로 사용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물건 얘기가 나와 말인데, 네가 바이크에 이렇게 많은 짐을 싣는 것도 처음인가? 탑 박스나 사이드백이 있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너는 거의 모든 짐을 짐대에 묶어야 한다고 했잖아. 캠핑하는 건 아니니까 짐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매일 짐을 풀고 싸는 게 꽤 불편할 수 있어. 짐대의 크기에 잘 맞는 가방 하나에 짐을 컴팩트하게 넣는 게 좋아. 필요한 물건을 빼놓고 갈 필요는 없지만 꼭 필요한 짐만 챙겨서 짐이 적어질수록 수고를 덜 수 있거든. 짐의 모양이 네모반듯해서 짐대에 딱 들어맞는다면 좋겠지만 옆으로 길거나, 높이가 너무 높다면 달릴 때 무게중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 그래서 균형이 잘 맞도록 패킹하는 게 중요해. 실어야 하는 짐이 바이크의 너비보다 길다면 중심을 맞추어 패킹하고, 무거운 짐은 아래에 넣는 식으로 말이야. 방수 가방은 이번에 못 샀다고 했지? 장비가 있으면 편하지만 없다고 못할 건 없어. 내 꼼수를 하나 알려줄까? 김장 봉투를 쓰면 돼. 내가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바이크 여행을 갔을 때 거의 매일 비가 내렸는데 김장 봉투 한 장에 각종 캠핑용품을 다 넣은 데다가 거의 젖지 않았거든. 금방 찢어지는 일반 비닐로는 어림도 없어. 꼭 김장 봉투여야 해! 아, 너 바이크에 바구니도 달려있었지? 거기에는 바구니에 맞는 크기의 작은 방수 가방을 넣어도 좋은데, 없다면 대안으로는 지퍼백을 쓰면 돼. 그 대신 바구니는 사이사이 틈이 큼직하니까 빠지지 않도록 커다랗고 튼튼한 거로 챙겨야 해. 또, 그 위에 그물망을 덮는 걸 잊지 마! 요철을 지날 때 바이크에 가해지는 충격이 제법 큰 거 알지? 넣어둔 물건이 가벼울수록 쉽게 떨어지거든. 내가 바구니에 넣어두었던 과자를 떨어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닌 거 알지? 그 과자들을 다 모으면 작은 구멍가게를 열 수도 있을거야. 바구니에는 바로 꺼내야 하는 물건들을 넣으면 좋아. 우비나 방수 커버 같은 거 말이야. 네 방한화가 방수기능이 없다고 해서 내가 신발 방수 덮개를 보내줬잖아. 그게 꼭 비가 올 때만 유용한 건 아니거든. 방수기능은 곧 방풍 기능이 있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지고 나서 기온이 많이 떨어질 때 커버를 장착하면 발이 덜 시릴 거야. 아, 네가 산 방한 토시 말이야, 당장은 늘 장갑만 끼고 다니다가 토시를 끼니까 아주 따뜻하게 느껴지겠지만 국도에서 몇 시간이고 운전하다 보면 핸들 구멍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느껴질 거야. 그래서 출발 전에 핸들과 토시 사이의 구멍을 메우는 게 좋아. 뭐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고, 덕 테이프와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돼. 덕 테이프는 흔히 청 테이프라고 불리는 청색이어도 되고, 요즘엔 검은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색으로 나오더라고. 혹시 출발 전에 하지 못했다면 덕 테이프만 미리 사서 바구니에 넣어두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추워서 안 되겠다 싶을 때 잠시 멈추어 쉬면서 추가로 방풍 대비를 하면 돼. 대신 손을 넣는 구멍 쪽은 바람이 좀 들어오더라도 그냥 두는 게 좋아. 사고가 났을 때 바이크와 신체가 분리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집에 혹시 니트릴 장갑이 있다면 꼭 챙겨가. 라이딩 장갑 안에 이너 장갑 대신에 니트릴 장갑을 끼면 방풍효과가 높아지거든. 니트릴장갑이 이너장갑보다 얇아서 손가락이 둔해지는 불편함이 적어 좋더라.
아, 덕 테이프 말고도 대비하는 용품으로 있으면 좋은 게 뭐가 있냐고? 케이블 타이나 비상 연료통, 너를 위한 비상 연료인 에너지바랑 식수 약간,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 종류의 비상약이 있으면 좋지. 야간 운전이 예정되어 있거나 주유소나 편의점이 자주 나오지 않는 인적 드문 구간이 경로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위의 비상 물품을 꼭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 그래도 바이크 정기 점검을 받고 가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미 바이크를 입고했다며? 장거리 여행을 간다고 얘기하면 센터에서 알아서 잘해주시겠지만, 타이어, 엔진오일, 배터리, 점화플러그, 브레이크 같은 주요 소모품 주기도 한번 확인해 보는 게 좋아. 서울에서만 보았던 네 바이크를 곧 순천에서 볼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리고 설렌다. 안전하게 라이딩해서 무사히 서울로 복귀하길 기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