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 여행기] 바이크를 타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M스토리 입력 2024.02.29 13:56 조회수 3,487 0 프린트
 

이번 겨울은 눈도 제법 와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덧 낮기온이 10도를 넘어서는 봄이 되었다. 이번 겨울 나는 예전보다 바이크에 올라앉은 날도 적었고 장거리 투어를 거의 안 가서인지 열선장비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겨울이었다.  우리나라는 삼한사온의 날씨라 한겨울이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덜 추운 날들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100km 내외의 근교투어를 다녀온 게 전부였는데 벌써 겨울이 끝났다니 기분이 묘하다.

겨울을 보내고 2024년 시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번 편에는 바이크를 타면서 느끼는 오감(?)에 대해서 독자들과 공감대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무엇이든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있던 4년 동안 자동차로 10만 마일(16만km)를 넘게 돌아다니면서 미국의 12개 주를 여행했고, 국내에서도 일이 바빠도 고민이 있을 때면 밤 늦은 시간에 정동진이나 동해로 훌쩍 드라이브를 다녀온 적이 여러 번 이었다.  아무튼 바이크를 알기 전에는 그렇게 자동차로 충분히 만족하면서 싸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2006년경 산악자전거와 로드싸이클에 빠지면서 자전거들로도 2만km는 족히 돌아다녔는데,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면서 ‘탈 것’이 느릴수록 더 색다르고 더 풍성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자전거는 체력증진에는 좋지만 인간의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다닐 수 있는 반경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타고 나면 자전거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반경 50~100km내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살살 꾀가 생겨서 오솔길과 등산로, 멋진 지방도를 타고는 싶지만 좀 쉽게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어 내 심장이 아니라 엔진의 힘을 빌어서 쉽게 멀리 달릴 수 있는(누군가는 ‘날로 먹는’이라고 표현하더라) 바이크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다. 바이크가 기계적으로 차량보다 느리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바이크는 고속도로를 비롯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탈 수가 없기에 기계적 성능과는 관계없이 바이크가 더 느린 탈 것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바이크가 주는 경험의 풍성함은 자동차와 자전거의 ‘중간 그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경험은 바이크의 배기량이나 사이즈, 장르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일반적으로 느끼기에는 자동차는 이동하는 과정보다는 ‘자동차 자체의 성능(가속력, 코너링, 승차감, 배기음 등)’이나 ‘목적지의 경험(다녀온 경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그냥 목적지로 워프한 느낌이었다)’들이 훨씬 기억에 많이 남았고, 할리데이비슨은 바이크 자체의 성능 외에도 ‘바이크가 주는 주행의 감성’과 ‘주행하며 지나치는 경로들에 대한 세세한 기억’이 목적지의 경험보다 크게 자리잡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바이크는 자동차에 비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도로상황에 더 주의하고 집중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속도로와 같은 ‘빠른 길’보다 느긋하게 달릴 수 밖에 없는 국도를 반 강제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비록 나는 처음부터 대배기량 바이크로 입문해서 쿼터급이나 미들급을 타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쿼터급은 느린 대신에 좀 더 풍성한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기회가 되면 미들급 정도의 만만한 바이크를 기추하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자동차들의 위협에서 빠르게 피할 수 있는 가속력이 부족한 입문용 바이크는 선호하지 않는다)

바이크는 주행풍을 줄여주는 페어링이 달려있는 경우에도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시끄럽고 도로의 상황 뿐 아니라, 그날의 날씨가 온 몸으로 느껴지기에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예민하고 섬세하며 때로는 혹독한 경험을 하게 된다.(심지어 앞 차량들의 배기가스도 섬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할리데이비슨을 비롯한 대부분의 바이크들은 요즘 자동차들에서는 보기 힘든 수동기어라 왕복 500km 정도의 여행만 다녀와도 때로는 수천 번의 클러치 조작과 기어변속을 할 정도로 자동차보다 바쁠 수 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피곤할 수 있지만 잠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어서 오히려 안전한 장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바이크는 시각(국도의 호젓함과 도로상황에 대한 집중으로 더 또렷한 시각적 경험), 청각(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시끄럽고 감성적인 소음), 후각(시골길을 주행할 때 느껴지는 계절의 냄새), 촉각(그날의 날씨를 그대로 느끼며, 온 몸을 사용하는 코너링과 잦은 기어조작), 미각(경로상의 맛집을 주차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장점)에서 모두 자동차와는 다른 섬세하고 풍성한 기억을 남겨 라이더로 하여금 그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2024년 구정이 벌써 지났다.  개인적으로는 올해에는 라이더로서 두 가지 정도의 바램이 있다. 하나는 지정차로제의 완화다. 바이크가 느려 터진 교통수단도 아니고, 오히려 빠르지만 충돌에 취약한 탈 것임을 감안하면 외측차로로 주행차로를 제한하는 것은 도로소통면에서 답답한 것을 넘어서 안전면에서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넓은 교차로에서도 무턱대고 두 세개의 차선을 넘어 냅다 1~2차선으로 밀고 들어오는 차량들로 위험천만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지정차로제가 아니라면 미리 중앙차선으로 주행하면 피할 수 있는 위험들도 외측차선에 묶여 있는 경우에는 대처하기 어렵기에 위험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무 어이없는 경우에는 해당 운전자에게 항의하는데 그러면 ‘못 봤다’고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할리데이비슨 투어링은 거의 경차 정도의 덩치이고 고속으로 주행하지 않아서 못보기는 더 어려운데도 정말 못 봤다면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 말은 무개념 운전자들의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알고도 ‘바이크가 피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밀고 들어오는 습관을 가진 차량운전자가 많아 외측차로로 주행차로를 제한하는 것은 사고를 부추기는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자동차전용도로의 완화다. 고속도로의 바이크 통행은 여러가지 여건으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많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선진국들에서 대배기량 바이크의 고속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고속도로 뿐 아니라 지방국도를 여행하다 보면 엉뚱하게 갑자기 특정구간만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되어 적잖은 거리를 우회해서 가야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는데 그 구간만 자동차전용도로로 정한 이유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지자체나 경찰서장이 자신의 권위나 신념만으로 해당구간을 전용도로로 설정한 경우도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호영 변호사를 비롯한 라이더들이 귀한 능력을 당연한 권익을 위해 쏟으며 싸워야 하는 현실도 답답하다. 경찰서장을 비롯한 지자체장들의 라이더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2024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시즌 온이다. 모든 라이더들이 올해에는 빠르게 달리기보다는 더 안전하고, 풍성한 경험을 누리는 여유를 가지고 함께 라이더 문화를 성숙시켜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by.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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