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회, 마른 하늘에 날벼락 (1)편에서는 라이더에게 떨어진 날벼락인 시동멈춤을 처음 겪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여러번의 시동 멈춤을 겪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 두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짱짱한 2004년식 에이프 - 2022년의 한여름밤, 영화를 찍었다.
낮에는 후덥지근했던 공기가 서늘해져서 시원하게 몸을 감싸고 지나가는 여름의 밤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을 빼면 조용하고 휑한 국도에서 나는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바이크를 갓길에 세워두고, 헬멧도 벗지 않은 채로 보도블록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안 팔 리는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사소하고도 큰 시련이 계속되지만 예쁘게 눈물을 글썽이기보다는 깊은 한숨 푹 쉬고 세상을 비관하고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주저앉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바이크의 엔진이 멈추기 삼십 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누구나가 겪어본 구질구질한 이별이었다. 깔끔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았다. 일주일간 관계를 질질 끄는 것을 견디지 못한 나는 옆 도시인 여수에 있는 애인의 집에 가서 단판을 지었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게 내가 바란 게 맞는데도, 슬픔은 피할 수 없었다. 바이크를 타고 온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을 맞으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다.
보통 귀가하면 ‘집에 도착했어요.’라고 연락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게 어색해서 집에 도착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기어를 변속했는데, 그 순간 바이크의 시동이 툭 꺼졌다. 우선 옆 차선과 후방에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핸들을 갓길 쪽으로 향한 뒤 브레이크를 잡아 적당한 곳에 주차했다. 당연히 기름이 없는 거겠지. 바이크의 연료 콕을 돌려 리저브로 바꾸고 다시 시동을 건다. 한번, 두 번, 세 번… 킥을 열다섯 번 차고나서야 이게 금세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우선은 땀으로 젖기 시작한 헬멧을 벗었다. 잠시 쉬었다 다시 킥을 차도 바이크는 미동도 없다. 밀어 걸기를 하기 위해 주변을 정찰한다. 괜찮은 내리막이 보여서 바이크를 끌고 가서 밀어 걸고, 다시 올라가서 밀어 걸기를 반복했다. 한 번, 잠시 푸르르하며 시동이 돌아올 듯했으나 곧장 꺼진다. 한 시간을 국도에서 방황했다. 히치하이크해야하나? 택시를 불러야 하나? 근데 여수에서 순천에 가려면 택시를 여수에서 불러야 할까, 순천에서 불러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한 게 무색하게, 운 좋게 지인 찬스로 트레일러에 에이프를 싣고 나는 조수석에 타고 편안하게 집으로 복귀했다. 에이프는 여름 내내 지인의 창고에서 방치되었다. 결국 그해 가을, 나는 에이프를 팔았다. 전 애인과의 연애도 에이프와의 관계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잔병치레 하는 1992년식 자이로 X - ECU는 구할 수가 없는데요?

킥스타터로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안전하게 주차를 해두고 헬멧을 챙겨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며칠 뒤, 다시 바이크를 세워둔 곳에 가서 마지막으로 시동을 한 번 더 걸어본다. 걸릴 리가 없다. 근처 바이크 센터에 전화해서 견인을 문의했다. 지금 당장은 견인이 어렵다고 해서 방한 토시에 바이크 키를 숨겨두기로 하고 바이크 주차 해둔 위치를 말씀드렸다. 다음날 수리가 완료되었으니, 바이크를 찾으러 오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가니 센터에서는 점화 플러그와 배터리를 교체했다고 했다. 배터리도 점화 플러그도 교체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좀 의아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바이크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이후로 1주일간 바이크 시동이 잘 걸리지 않고, 걸리더라도 유지가 잘 안되고, 유지가 되더라도 주행 중 시동이 꺼지고, 킥스타터로 여러 번 걸어야만 걸리는 등의 문제가 반복되어서 다시 센터에 갔더니 ECU와 이그니션 코일을 구해오면 수리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우선 혼다 바이크 부품의 메카 강북 혼다에 문의했는데, ECU는 단종된 부품이라 구할 수 없다고 해서 우선은 이그니션 코일과 또 나가버린 점화 플러그만 주문하고, 국내 중고 사이트와 일본 옥션 등 가리지 않고 서치를 시작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ECU를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이건 부품 차를 하나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센터에 문의하니 그러면 우선 도착한 부품이라도 교체해 보자고 해서 부품을 가지고 센터에 가서 교체를 했다. 다행히 ECU가 나간건 아닌지 바이크가 정상적으로 고쳐졌다. 그 이후로 10개월간 문제 없이 자이로를 잘 타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종종 일본 옥션에 들어가 ECU 매물이 없나 검색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가끔 국도 한복판에 의아한 자리에 멈춰있는 바이크를 볼 때가 있다. 외관상 손상이 많으면 사고가 났구나 싶지만, 그런게 아니라 고이 한쪽에 예쁘게 주차를 해둔 경우는 아마 위 순간들의 나처럼 바이크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서 그러지 않았을까? 고장이 난 거라면 주위에 있는 바이크 센터에 전화해서 견인을 문의하면 되는데 너무 멀어서 와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때라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또, 단순히 기름이 떨어져서 시동을 걸 수 없는 경우라도 사륜차라면 보험사에 연락하면 되지만 이륜차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몇 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주유소까지 걸어가서 기름을 가져오던지, 요즘에는 기름을 직접 차에 주유하지 않는 것을 금하는 경우가 많으니, 바이크를 끌고 몇 시간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뻔한 결론이지만 대비책은 결국 예방정비일 것이다. 장거리를 가는 경우 더 꼼꼼하게 바이크의 상태를 점검하고 기름 게이지가 없는 바이크일수록 휘발유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유소의 위치와 남은 휘발유의 양을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