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 여행기] 대배기량 바이크로 시작하는 바이크라이프는 어떨까?

M스토리 입력 2023.11.01 10:34 조회수 5,675 0 프린트
장준영 씨와 그의 첫 바이크 포티에잇.

어느덧 내가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지가 벌써 7년반이 되었다. 그동안 2대의 바이크로 거의 20만km를 달렸고 그러다보니 이제 그동안의 바이프라이프를 한번 되짚어 볼 때가 되었다.

나는 다른 많은 선배 라이더들과는 다르게 바이크를 매우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얼리어답터(?)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 20~30대에 첫 바이크를 경험하는 다른 라이더들과는 그래서 라이딩의 시작과 경험이 좀 다르다. 나는 감성보다 하나의 ‘달리는 기계’라는 측면에서 바이크에 접근했고, 라이딩을 할 때에도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라이딩을 했었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자의 이상행동을 잘 파악해서 사고가 거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바이크를 시작할 때, 나의 라이딩 스킬은 보잘 것 없었고, 그래서 탈 수 있는 바이크의 선택도 한정적일 수 밖에 없어서 바이크 선택의 최우선 순위가 넘어뜨리지 않을 수 있는 바이크였다. 어차피 초짜라 빨리 달리지도 못하니 고성능의 레플리카들은 줘도 제대로 타지도 못할 계륵인 마당에 나이도 40대 중후반에 어디 부러지거나 다치면 손해 볼 것들이 많은 중년가장으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매니악하게 탔던 스키와 30살 정도에 시작해서 대략 10년을 탔던 마운틴바이크와 로드바이크 경험으로 속도감, 균형감과 체력은 나이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처음에는 두카티 몬스터 1200S, BMW R1200R, BMW R nine T를 고려했었고 비록 다들 배기량이 1200cc 였던 바이크들이지만 과속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마력과 토크가 좋으니 타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바이크들은 초보가 첫 바이크로 타기에는 너무 고성능이라 위험할 수 있는 바이크들이다). 그때 나는 나름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 열심히 바이크 리뷰들을 읽어보고, 2종 소형 면허도 없으면서 두카티와 BMW 모토라드에도 자주 가서 앉아보며 입맛을 다시곤 했었다. 
 
속초 울산바위
그러다 대배기량 바이크를 타기 위해서 필요한 2종 소형면허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250cc 바이크에 앉아 보고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멈춰 있을 때 앉아본 시트의 느낌과 실제로 주행할 때 느끼는 시트고의 느낌은 너무나 다르고, 심리적인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면 시트고가 생각보다 충분히(?) 낮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때 바이크의 전도를 막으려면 발바닥이 편안하게 닿아야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학원 바이크를 대여섯 번 자빠뜨리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곤, 한층 겸손해진 마음으로 전반적으로 시트가 낮은 바이크들인 할리데이비슨을 보러 매장으로 찾아갔다. 다양한 할리데이비슨 기종에 앉아보고, 가지고 싶은 기종과 첫 바이크로 적당한 기종을 나름 고민하며 1200cc인 포티에잇, 1690cc의 팻보이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셋 중에 가장 소형(소형이라도 1200cc 바이크다)인 포티에잇을 첫 바이크로 선택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팻보이로 선택했었다면 적어도 1년만에 기변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포티에잇으로도 만족스러운 라이딩을 즐겼지만 작은 연료통과 장거리 주행에 적합하지 않은 라이딩포지션,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납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지금 생각하면 이 약점은 시시바를 달고 배낭을 꽂으면 해결될 부분이더라)에 아쉬움을 느껴 1년간 2.2만km를 타고 선배 친구에게 넘기게 되었다. 포티에잇을 팔아넘긴(?) 건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지만 그래도 다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장준영 씨의 두 번째 바이크 로드글라이드.
그렇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면허도 없는 마당에(실기시험을 2번이나 떨어질 줄은 몰랐다) 할리데이비슨을 신차로 주문하고도 바이크를 받지 못하다 면허를 따자마자 바로 집으로 가져왔는데, 그 때 탁송이 아닌 할리데이비슨 용인점에서 서울 대치동 집까지 할리 영업사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온 것이 연습코스를 벗어난 나의 첫 주행이었다.(그때가 처음 바이크로 시속 80km를 내 본 날이었고, 가장 길게 주행한 날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바이크라이프는 예전부터 장거리 운전과 여행을 좋아하던 나를 ‘다른 탈 것’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로 출퇴근을 제외하면 차를 거의 타지 않아서 자동차들의 주행거리는 모두 합해도 1년에 5~7000km 남짓에 불과한 반면 바이크는 연평균 3만km에 가깝게 탔었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첫 바이크를 대배기량 바이크로 시작했고 1년만에 역시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로 기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론이 이렇게 길었던 건 혹시 나처럼 40대 중후반에 바이크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바이크는 125cc, 쿼터, 미들, 리터급으로 단계별로 올라가야 한다’는 업계상식(?)에 너무 빠지지 않으셔도 된다는 점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다. 단계별로 올라 가는게 물론 더 좋겠지만 그게 정말 필요한 바이크 유형은 레플리카나 고성능 로드스터들이 그렇고 (얘네들은 한번의 실수로 날아가기 쉽다) 할리데이비슨 같은 아메리칸 바이크들은 그것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할리데이비슨은 자동차와 비슷한 점이 많다. 자동차를 꼭 모닝부터 타야 하는게 아니고, 너무 크지 않고 너무 고성능의 앙칼진 스포츠카가 아니라면 8기통 대배기량 차량이 오히려 더 타기 편하고 다루기 좋은 것과 같다. 물론 풀악셀을 하면 얘기가 다르지만 이미 그러기엔 한번의 객기에 잃을 것이 많은 40대 이상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할리데이비슨을 타 보면, 엔진의 회전수 사용도 고성능바이크들과는 달리 2000~3000rpm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낮은 회전수에서도 충분한 토크로 묵직하게 바이크를 끌어주는데 이 느낌이 살짝 디젤 SUV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 보니 무리해서 달리게 되지도 않고 느긋하게 스로틀을 당겨도 자동차보다는 빠르게 가속하여 답답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위험할 정도로 튀어나가지 않아 고성능 바이크들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할리데이비슨이 배기량이 큰 이유는 고속주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주행을 위한 것이라 대배기량 자동차들의 목적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중년 초보 라이더가 대배기량 바이크를 선택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점들’은 있다.

첫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덩치의 바이크를 고른다. 특히 초보는 시트고가 중요하다. 혹여 제자리에서 넘어졌을 때 (이걸 ‘제꿍’이라고 한다) 적어도 혼자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제원표를 보며 동급에서 마력과 토크가 높은 바이크를 찾기 위해 비교분석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하고 고rpm에서 고성능이 나오는 바이크들은 초짜가 다루기에는 위험하다.

셋째, 자신의 라이딩의 목적을 충분히 고민한다. 나는 요기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기변을 했었다. 적어도 자신이 장거리 방랑형(?) 라이더인지는 알아야 한다. 물론, 이건 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넷째, 세상풍파를 겪어본 40대 이상의 라이더라면 감정에 휩싸여 객기를 부리지 않을 각오가 필요하다. 125cc라도 풀악셀 하면 날아간다.

다섯째, 안전하게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다.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장마를 견뎌낼 수 있는 지하주차장이 최상이다. 적어도 할리데이비슨은 자주 타지 않으면 도난방지 장치가 상시 작동하기 때문에 잦은 방전을 경험하게 된다. 

여섯째,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 아마도 허락을 받아서 바이크를 사려면 백 년쯤 걸리지 않을까?

인생의 버킷 리스트로 바이크라이프를 꿈꾸시는 잠재라이더(?)들께서는 용기를 가지시고, 슬쩍 할리데이비슨을 비롯한 아메리칸 바이크 매장을 방문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중년의 라이더라면 적어도 사고의 위험이 생각과는 달리 매우 낮고, 오히려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정신건강에 무척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by.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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