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내 손의 주인

M스토리 입력 2023.09.18 15:54 조회수 2,243 0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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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미국의 TV 드라마 <더 닉(The Knick)>을 재미있게 보았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마침내 매독균이 37도 이상의 고온에서 죽는다는 것을 발견한 주인공 존 대커리(크리브 오웬 분)가 자신의 연인의 체온을 올려 매독을 고쳐주는 장면,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이 등장해 수술실을 밝혀주는 장면 등 개척시대 미국의학의 민낯을 보여준 명작이다. 드라마 시작부분에서 하버드 출신의 흑인외과의사 에드워즈(앤드류 홀랜드 분)가 외과 과장 존을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며 “고릴라 손 같으시네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드리브 같은 가벼운 대사임에도 유독 공감이 갔다. 나 역시 한동안 기자신분으로 의사들을 만나러 다녔기에 외과의사 상당수가 그의 말처럼 손과 팔에 털이 수북하게 난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료과목에 따른 선입견이랄까, 내과의사의 손은 마른 듯 부드러운 선비의 손 같은 느낌이었고 소아과의사는 다정한 아기 엄마의 손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빈도가 높았다고나 할까, 나와 악수를 나눈 의사들은 대체로 그랬다.

그럼 내 손은 타인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내 손은 털이 없고 마른 듯 딱딱하고 가냘프다. 영락없는 중소도시 소시민의 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한 결 같이 내 손을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좋아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유전도 안 되는 내 손은 누굴 닮은 것일까?

휴일이면 아내와 거리를 산책한다. 거리에는 건널목이 있어 빨간불이 켜지면 잠시 멈춰야한다. 빨간불을 바라보며 무심코 나는 두 손을 혁대 앞부분에 걸치는 습관이 있다. 그럴 때 마다 아내는 혁대에서 손을 떼라고 잔소리를 한다. 아내가 보기에 그런 내 손은 손다운 손이 아닌 것이다. 남이 보기에 자칫 품위 떨어질 우려가 있는 자세인 것이다. 아내가 다시 한 마디 더 한다. 그때서야 나는 손을 혁대에서 내린다. 진정 내 손의 주인은 아내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내 손은 내 손이 아닐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한 스님이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 운전기사에게 한 마디 법문을 들려준다.
 
“기사양반. 운전기사가 운전을 안 하면 이 택시 어떻게 되지요?”

“그야, 꼼짝을 못하겠지요.”

“그럼, 운전기사양반을 운전하는 기사는 대체 누구요?”

“…….”

“자, 이제 저 골목 안으로 들어갑시다.”

운전기사는 스님의 요청에 따라 골목 안으로 택시를 몰아 내려드렸다.

운전기사는 스님의 요청에 따라 손으로 운전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운전기사를 운전하는 그 누구는 손일까, 스님일까 아니면 그 무엇일까?

장기(將棋)는 손으로 두는 게임이다. 말(馬), 포(包), 차(車) 심지어 왕(王)도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손은 왕을 지키기 위해 상대편 말을 죽이기도 하고 차를 죽이기도 한다. 손의 역할은 운명적이다. 반면 상대방이 <장군>하고 소리치면 손이 먼저 떨린다. 손은 나의 어떤 존재인가?

손 가운데 가장 바쁜 손이라면 요즘엔 택배기사의 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파트 분리수거 통에 쌓이는 쓰레기의 대부분이 택배쓰레기인 것을 보면 그렇다. 더욱이 컴퓨터와 교통수단의 발달, 코로나 여파로 인해 절해고도(絶海孤島)에까지 실시간 택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택배와 관련한 영화가 있다. 명절 때면 단골로 TV에서 방영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그것이다. 택배회사 직원인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약혼녀 켈리 프리어스(헬렌 헌트 분)와 헤어져 화물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던 중 기상악화로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지도상에도 나타나있지 않은 망망대해의 무인도에서 악전고투를 하다 마침내 뗏목을 타고 탈출, 기어코 택배물을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일종의 택배기업 홍보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아닌 배구공(윌슨, 배달의뢰 품목)을 주요배역으로 등장시켜 출연료도 절감하고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는 점이다.

불시착 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주인공 톰은 생선과 게를 구워먹기 위해 불을 피우려다 크게 손을 다친다. 그 고통을 주변의 물건들에게 화풀이를 하던 중 배구공에 묻은 핏자국이 손바닥 모양으로 찍힌 것을 보고 거기에 사람 얼굴모양을 그려 넣는다. 그런 다음 <윌슨>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처럼 유일한 대화의 상대로 삼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 파도에 흘러온 간이화장실 부유물과 무인도에서 베어낸 나무로 엮은 조잡한 뗏목배로 800Km를 표류하다 폭풍우로 인해 헤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요 복선이라 할 수 있다. 톰은 폭풍우에 의해 떠내려간 윌슨을 구하려고 애써 시도해보지만 허기와 폭풍우에 시달리고 지친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하여 파도에 휩쓸려가는 윌슨을 향해 마치 자신의 분신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참담한 심정으로 울부짖는 주인공 톰. 속절없이 대양 저편으로 흘러가는 윌슨을 바라보며 “미안해 윌슨. 미안해”라고 절박하게 소리치는 장면은 실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 장면은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약혼녀 켈리와 비가 쏟아지는 날 극적으로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미 결혼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이별해야하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흔적조차 찾지 못한 장기간(4년)의 실종으로 인해 약혼자 톰의 장례를 치르고 타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켈리에게 그녀의 사진이 담긴 그녀의 회중시계를 돌려주며“미안해.” 하고 떠나가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별은 곧 새로운 출발인가보다! 마침내 분실할 뻔했던 물품을 고객에게 배송하고 어느 시외의 황량한 네 갈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멈춰 서있을 때, 베티나 피터슨(컨트리 가수, 래리 화이트 분)이 등장해 손으로 그가 갈 방향을 가리켜주며 <행운이 있기를> 하고 기원해준다. 톰은 그녀가 승용차를 몰고 떠나간 뒤 그녀가 손으로 가리켜준 방향을 살펴보다 시선을 돌려 그녀가 사라진 쪽 길을 주시하며 은근히 미소를 짓는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나도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했던 것은 아닐까? 험난한 사회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직장 동료나 가족이 아닌 운명적인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려는 것은 아닐까. 아니 이미 그 누군가를 만났는데 방향을 가리키는 손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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