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바이크를 타고 전주 국제 영화제로

M스토리 입력 2023.06.16 15:45 조회수 2,033 0 프린트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 살던 내가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시대에 혼잡함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온 2020년도 가을부터 바이크를 타고 사람이 없는 시골길들을 유유자적 달리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규제가 많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축제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이왕 전라도에 살고 있는 김에 일정이 허락하는 대로 바이크를 타고 여러 축제에 참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광양부터 구례까지 이어지는 매화 축제였으나, 엄청난 차량 행렬을 보고는 초입부터 포기하고 화개장터에서 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다. 하지만 봄은 꽃의 계절만은 아니다. 바로 전주 국제 영화제의 계절이다. 4월 27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리는 전주 국제 영화제(이하:전국제)는 올해로 24회를 맞이하는 영화제로, 상영되는 일부 작품만 경쟁작인 부분 경쟁 시스템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작품이 수상 되는지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고, 즐기는 축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타 영화제에 비해 실험적인 작품이 상영되는 경향이 있어서 평소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 혹은 OTT에서 크게 홍보하는 콘텐츠와 상반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전후로 비 소식이 있었지만 비를 피해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바이크를 타고 전국제에 다녀왔다.
 
 
오늘의 출발지는 늘 그렇듯이 순천이다. 순천에서 전주까지 거리는 120km. 쿼터급 이하 바이크 라이더로써 왕복 240km는 하루 동안 무리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최대 거리이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마음을 먹으니 짐이 단출하다. 보호대와 재킷을 챙겨입고 보조배터리와 지갑을 챙겼다. 저녁에 갑자기 추워질 수 있는 날씨를 대비해서 겨우내 달아두었던 방한 토시는 일부러 달아둔 채로 시동을 걸었다. 구례를 거쳐 남원에 진입하니 성춘향과 이몽룡 캐릭터가 여기저기 달려있어 이곳이 춘향전의 배경임을 바로 눈치챘다. 오랜만의 장거리여서 70km를 달렸을 뿐인데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가 몰려와 휴게소가 나오길 애타게 바라던 참에 오리정 휴게소가 나왔다. 간판만 있고 실제로 운영하지 않는 것 같은 휴게소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첫 휴게소였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곳이란 문구를 읽으며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시동을 건다. 임실을 지나서 전주로 진입할수록 차가 많아졌지만, 평일 낮이라 그런지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오늘 예매한 두개의 영화 모두 전국제의 대부분의 영화가 상영되는 전주객사에 있는 CGV와 메가박스에서 상영하므로 우선 전주객사에 주차하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상영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첫 영화는 <삼각형의 마음>이라는 국내 다큐멘터리로, 매번 북한산만을 등정하는 MAM이라는 연극인 등산모임에 대한 영화이다. ‘발 한 번 삐끗하면 이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예요.’ 이토록 위험하고 무서운데 왜 계속 오르고 싶을까? 이 질문은 어디서든 통한다. MAM에 속한 그들이 산에 대한 마음을 가지게 된 매력은 어디서 왔을까? 인간은 왜 위험에 대한 매력에 끌리고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상영관을 나와서도 오토바이에 대입해도 그럴듯한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리에 남았다.
 
 
두 번째 영화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 인생의 목적이라는 흔하지만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보편적인 의문이 주제인 영화로 세 편의 단편이 다중우주라는 콘셉트처럼 미묘하게 맞물려 있는 장편영화이다. 난해해 보이는 제목에 비해 실없이 웃을 수 있는 이 코미디영화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도, 누구도 아니어도, 모두가 외면해도 어쩌면 이 보통의 우주 안에서 찬란한 존재일 수 있지 않을까?

영화제가 오랜만이어서 영화제만의 암묵적 에티켓을 잊고 있었다. 우선 전국제의 모든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고 나서 불이 켜진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급히 상영관을 나오다가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는 관객들을 위해서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또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의미로 박수를 치는 것도 일반적이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오니 벌써 6시가 되어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복귀하기 위해 서둘러 보호대를 입고 다시 순천으로 향했다. 따뜻한 봄 날씨 덕에 라이딩자켓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햇빛이 스러져 가는 시간대의 라이딩은  아직 손이 시리다. 방한 토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가끔은 이렇게 라이딩이 목적이 아닌 목적지가 있는 여행도 좋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영화를 보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도 해본다. 방금 봤던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회상하며 노을 지는 국도를 달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가을에는 부산 영화제를 가볼까?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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