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봄, 그 빛과 소리

M스토리 입력 2023.05.16 15:01 조회수 1,799 0 프린트
Photo by casey horner on unsplash
 
 










아침에 봄비 오시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워 벌떡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보았다. 차갑고 시원하고 감미로운 빗방울이 손바닥을 적신다. 봄비가 이런 감촉, 이런 냄새로구나! 매년 겪는 일이건만 늘 처음인 것처럼 새롭다.

공원길에 흩날려 쌓인 벚꽃 꽃잎 위에도 봄비가 내려 촉촉하다. 그 길을 걷노라면 공원 어디에선가 새싹이 쑥쑥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의 첫 기억도 어느 밝은 봄날이었다. 그날, 나는 방에서 기어 나와 봄볕에 반짝이는 우리 집 바람벽의 진흙을 손톱으로 긁어 침이 괴괴한 입안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내 인생의 시작이었다. 마치 비로소 지구의 살맛을 맛본 순간이랄까, 매우 비위생적인 상황이었지만 나와 지구의 첫 만남은 이렇듯 원시적이었다.

오늘도 나는 지구를 돌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 내가 도는 지구에는 무수히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다. 살기 위해 줄기를 뻗어 빛을 받아먹고 치열하게 빛을 향해 하루를 달린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빛의 산물이요 분신인 것이다. 하여 빛은 생명이요 궁극적 목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빛이 오히려 죽음의 빛일 수도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말인즉,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자야 하는 게 생물의 정상적인 생활일 터. 하지만 낮에 해야 할 일을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계속 해야 한다면 과연 심신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낭패를 볼 것이다. 실제 사례로 큰 도로 주변의 농장에서는 밝은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농사가 잘 안 된다고 한다. 또 24시간 내내 불 밝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아야 하는 고단한 암탉은 수명이 극히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지난 주 수요일 저녁 산책길에 농부인 최선생으로부터 들었다. 서글픈 진실이 아닐 수 없다.

태초의 소리는 <옴>이라 한다. 이 소리는 청정한 본원적 발성으로 불교 경전에 <옴마니반메훔>이란 진언의 첫 글자로 명시돼있다. <연꽃 속의 보석>이란 의미의 이 주문을 외우면 그 소리가 ‘온 우주에 충만하여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실현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어느 시인은 ‘종달새 우는 소리’라고 노래했다던가! 하지만 나는 개울물 소리가 봄을 알리는 소리인 것 같다. 계곡의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는 그 소리는 지난 계절에도 수없이 들었으련만 왜 이 봄에 색달리 느껴지는 것일까? 물론 누구나 각자 다 자기만의 감각으로 봄을 느끼는 것이겠지만 봄에 듣는 계곡의 개울물 소리는 나에게 한 해의 생각을 열어주는 각성의 소리인 것 같다.

그런데 사시사철 계곡의 개울물 소리가 좋아 그런 곳에 펜션을 짓고 사는 고등학교 선배가 있다. 하여 지난달 휴일을 기해 죽마고우들과 1박2일로 그 펜션으로 놀러 갔었다. 하지만 펜션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기는 잠깐, 오로지 코 고는 소리만 듣다 온 것 같다. 어느 모임에서나 겪는 일이겠지만 코를 고는 친구들은 방에서 잠을 자야 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거실에서 잠을 자야했는데 잠을 자는 시간만큼은 코를 고는 친구는 그 어떤 친구도 나에게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빛과 소리가 없어야 잠을 잘 수 있다!

빛과 소리가 없는, 혹은 초월하는 경계를 참구하는 것을 명상이라 한다면 잠을 자는 것 역시 명상의 한 갈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이 빛과 소리로 이루어진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또 그 우주가 없어진 뒤에 나는 과연 무엇일까 ?를 깊이 참구하는 것이 명상의 한 방법인 것처럼 다만, 우주가 없는 곧 빛과 소리가 없는 공허(空虛)한 상태에서 곤하게 잠을 자는 무의식의 나는 어떤 경계의 존재일까?

옛 속담에 ‘애 우는 소리는 초상집에서도 시끄럽다’고 했다던가. 초상집에서는 슬피 우는 게 당연하건만 아기 우는 소리는 왜 그렇게 상주조차 짜증을 내게 하는 것일까? 아기는 또 왜 사태파악을 못하고 그렇게 장소 불문하고 자극적으로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기는 울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적으로 오줌을 지렸거나 배가 고프거나... 하니 나를 살펴달라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간절히 호소하는 생명의 소리인 것이다.

여름이면 어느 도시나 가로수에서 우는 말매미 소리로 인해 정신이 없다. 게다가 그 소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보다도 더 시끄럽기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하는 시민들도 꽤나 있다. 하지만 말매미는 고작 7일 동안만 세상을 살아야 하기에, 어서 짝을 찾아 시급히 자손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호라, 그 소리는 도시인들에게는 소음이겠지만 매미에게는 그야말로 처절한 세레나데인 것이다.

코 고는 소리든 매미소리든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겠지만 나는 요즘 소리가 있어야만 잠을 잘 수가 있다. 망상이 많아서 그런지 유튜브나 라디오를 틀어놓아야만 그 소리에 신경을 쓰다보면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든다. 하여 오늘은 어느 방송 어느 프로를 들으며 잠을 잘까, 방송과 프로를 고르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돼버렸다.

<바위 아래 흐르는 물소리는 젖지 않는다.> 한암 스님의 말씀이다.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이 지나야 매화가 피고,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는 격언도 있다. 잠결에 어느 유튜브인지 어느 방송에선가 들은 불멸의 명언들이다.

지구에 태어난 이상 빛다운 빛과 소리다운 소리를 보고 듣고 또 만들어가며 사는 게 삶의 과정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처럼 나 역시 산란한 빛과 불쾌한 소음을 만들어내어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는가? 오늘도 반성을 해본다.

일기예보에 내일 또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봄비를 맞으러 가까운 시외로 나가봐야겠다.
M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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