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베트남 여행기 (5) 판랑-탑짬의 마지막 날

M스토리 입력 2023.02.01 13:26 조회수 2,092 0 프린트
이른 아침 일어나 뽀끌롱 자라이에 다녀왔더니 숙소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정신이 흐릿해지며 잠에 빠졌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누가 놀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몸이 한결 가뿐하고 정신이 맑아졌다. 바이크를 타고 근처 카페로 갔다. 찾아간 카페에서는 음료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도 팔길래 달랏에서도 흔히 보였던 반짱느엉과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와 함께 차 한 잔이 같이 나왔다. 베트남에서는 커피 한 잔을 시켜도 재스민차를 내어준다. 며칠 전까지 지냈던 달랏에서는 뜨거운 차가 나왔는데, 버스를 타고 몇 시간 이동했을 뿐인 이곳 판랑-탑참은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에 얼음을 띄운 차가운 차가 기본인가 보다.

내일 낮에 냐짱으로 떠나는 기차를 예약해뒀기 때문에 오늘이 판랑에서의 마지막 날인 셈이다. 그동안 판랑에서의 기록을 정리하고 오늘 계획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 한낮이니까 해가 지기 전에 어딘가 다녀올 짬이 있다. 숙소 주인 ‘민덕’의 추천 목록을 떠올려본다. 가장 흥미로운 곳은 바로 남쿠엉 듄 (Nam Cuong dunes). 영화 듄이 개봉하기 전에는 모래언덕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친구와 영화 듄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다가 ‘근데 듄이 뭔지 알아?’하고 물으니 ‘사막이잖아.’라고 말해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막은 desert 인줄만 알았던것이다. desert(사막)는 듄(모래사막 혹은 사구)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건조하고, 초목이 없고, 모래가 많은 지형을 통틀어 말하고 듄은 사막의 바람으로 인해서 모래가 퇴적된 구조를 칭한다. 수년 전 인도 여행 중 만난 동행들을 따라서 누브라 밸리에 있는 헌더 듄에 간 적이 있다. 저 모래언덕의 이름이 뭔지도 영 관심 없이 이곳저곳 떠돌기만 했던 때였다. 그때의 향수에 판랑에서도 듄을 가기로 한 것이다.

인도의 헌더 듄은 지프를 이용해서 험준한 지형을 오랜 시간 이동해야 하지만, 그에 반해 남쿠엉 듄은 쉽게 갈 수 있다. 대중교통은 없지만 택시나 바이크를 타고도 충분히 갈 수 있다. 구글맵을 켜고, 물 한 병을 챙겨 들고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큰 시내를 통과해서 점점 작은 마을로 이동했는데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더 마을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주택가 안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안간 나타난 도로에 고운 모래들이 휘날리는 걸 보고는 제대로 가고 있단걸 확신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질수록 도로에 쌓인 모래가 더 많아졌고, 어느 순간 도로 전체에 모래가 얇게 덮여 있었다. 여길 지나가도 되나 싶어 잠시 멈춰서 머뭇거리는데, 바이크 몇 대가 지나갔다. 남쿠엉 듄의 입구까지 가려면 좀 더 직진해야 하는 분위기라 미끌거리는 모래를 애써 무시하고 앞으로 직진했더니 아담한 크기의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는 세워진 바이크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뜨거운 한낮인데도 어쩐지 스산한 기분이 든다. 영화로 치자면 스릴러나 호러영화. 무기를 든 사람이나 짐승이 나타나 공격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모래언덕에 바이크를 타고 오른 바퀴 자국이 있긴 하지만 요령 없는 사람이 섣불리 도전하기에는 난코스 같아서 구석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맨몸으로 모래언덕을 오른다.
 

뜨겁고 부드러운 모래가 샌들 속을 파고든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오니 아무도 없고 쓰레기 몇 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구석에 풀들이 모여 자라나고 있다. 저 아래 마을의 풍경이 보이는데 집들은 많이 없고, 공장처럼 보이는 큰 건물들이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여러 대의 풍력 터빈이 눈에 띈다.
 

과연 터빈이 있을 만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특히나 듄 위에서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서 눈으로 들어가고 카메라 삼각대 관절 사이사이에 껴서 빠지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그저 모래언덕의 연속일 뿐이라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듄을 내려왔다.

근처에는 차를 마실만한 곳도,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없어서 시내 쪽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시내라고 해도 식당은 잘 보이지 않고 거리에 있는 식당들은 동물의 내장을 주재료로 하는 뜨거운 국수가 대부분이라 당기지 않았다. 구글맵에서 채식 레스토랑을 검색해서 찾아가니 유니폼을 갖춰 입은 주차요원이 발렛을 해줄 테니 바이크를 세우라는 손짓을 한다. 
 
가게 건너편에 마련된 바이크 주차 공간에는 열대 정도의 바이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가게 안에 들어가 보니 손님은 나 혼자뿐. 이제는 어딜 가도 나를 빼고 아무도 없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고, 다시 내가 유일한 손님인 숙소로 돌아간다.
 
 
이렇게 판랑의 모든 곳에 손님이 적은 탓은 물론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원체 판랑이 달랏이나 다낭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탓이 크다. 판랑은 흔히들 히든잼이라고 하는 숨겨진 보석이다. 
 
정보가 적어서 찾아오기도 쉽지 않고, 바이크를 빌리지 않으면 이동도 어려운데, 어디서 바이크를 빌려야 할지도 찾기 어려운 그런 곳이다. 이렇게 정보가 적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여행하려면 영어에 능통한 현지인이 있는 숙소에 머무는 게 좋다. 내가 판랑 여행 내내 머물었던 Minh Duc Hotel의 주인인 민덕의 말에 의하면 그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말인 게 각종 카페, 식당, 바이크 대여점 등을 다 합쳐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민덕을 제외하고 한 명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판랑 여행을 계획한다면, Minh Duc Hotel을 추천한다. 여행 중 막막한 상황이 발생하면 민덕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든든할 것이다.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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