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혈액형과 3개의 생일

M스토리 입력 2022.12.30 11:54 조회수 2,148 0 프린트
 
 
 
 










 
내 친구 중에 혈액형이 B형인데 초등학교 때 혈액 검사원의 실수로 한동안 A형인 줄 알고 살았던 친구가 있다. 다행히 수혈을 받을 일이 없어 별일 없이 지내다가 헌혈할 나이가 되어서야 정정하게 되었지만, 실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친구가 웃으며 하는 말이, 자기가 A형일 때는 A형처럼 행동을 하더니 B형일 때는 B형처럼 행동하더라는 것이었다.

A형과 B형의 행동이 다르다는 말인가?

 아닌 게 아니라 한때 혈액형을 갖고 농담을 주고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령 전쟁터에서 적에게 총을 맞았다고 가정할 때,  
A형인 친구는 몸에 박힌 총알을 살피며 『어떤 총알이 날아온 거야? 리벌버야 웨스턴이야? 이 각도로 들어왔으니 죽을 수밖에 없군.』 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A형은 과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보편주의자라라 해석한다. 

그런가하면 B형은 주위를 살피며 『어때, 이런 자세 괜찮아 보여? 이대로 죽어도 돼?』하고 보는 사람에게 묻고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폼 나게 쓰러져 죽는다는 것이다. B형은 낭만적인 사고를 가진 개인주의자라는 의미다.

반면에 O형은 버럭 화를 내며 『어떤 놈이 쏜 거야? (이해한다는 듯) 글쎄 쏠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이해심이 많고 종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해석이다,

AB형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허무해. 고작 이 총알 한 알 때문에 내 30년 청춘이 무너져야 한다는 거야! 아, 저 세상에서도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허무형 독백을 하다 죽는다고 한다. 이는 예술적인 성격이거나 A형과 B형의 혼합형일 가능성이 많다고 풀이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도 언젠가 이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당성이 있다는 듯이.  

혈액형뿐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운명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 또 있다. 

태어날 때 12지신에 의해 주어지는 띠가 그것이다. 띠는 점성술의 별자리와도 관련이 깊어 마치 신앙처럼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신봉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언젠가 종교 모임에서 만난 몇몇 여사들 끼리, 혈액형을 갖고 서로 성격이 맞니 안 맞니 또 무슨 띠는 무슨 띠와 궁합이 잘 맞고 무슨 띠하고는 상극이라느니 하면서 적령기 자녀를 둔 회원에게 자문 아닌 자문을 해주던 기억이 있다. 

가끔 신문지상에 재미삼아 보는 <그날의 운수>에도 띠를 갖고 운수풀이를 해주어서 여행 중에 심심치 않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가령 네이버에 나와 있는 2022년 12월 어느 날에 용띠는 전체적으로 ‘질투를 받아 괴로워하게 되리라’라는 점괘인데 그 가운데 1988년생(34세)은 ‘부모와 자식 간에 말다툼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하고, 1976년생(46세)은 ‘이성문제가 복잡해져 곤란을 겪게 되리라’지만 1952년생(70세)은 ‘겉으로는 모든 것이 흐뭇하고 만족한 상태에 있다’이다. 연령대별로 나타난 점괘가 심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나 역시 내 띠의 상징인 <닭>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가끔 하게 된다. 어쩌다 밥을 먹다가 밥알을 방바닥에 흘리기라도 하면 닭띠라서 밥을 흘리나보다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윤달이 있는 해의 2월 29일이 생일인 사람은 4년에 한 번 생일을 찾아먹는다는 것이다. 또 한 친구는 주민등록상 12월생인데 이는 음력 생일날짜라 양력으로 환산하면 1월로 생일이 넘어가 띠가 2개인 경우도 있다.   

생일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사람들은 대개 생일이 3개임을 알 수 있다. 주민등록상의 음력날짜로 기재된 생일과 양력으로 환산한 양력생일 그리고 본래 태어난 해의 양력 날짜의 생일이 각기 달라 빚어지는 현상이다. 본래 태어난 양력의 날짜가 왜 다른가하면, 현재까지 지내오는 동안에 윤달과 윤년이 끼어있어서 현재 양력의 생일날짜와 다른 것이다. 하여 별자리도 3개가 되다보니 별점을 치자면 본래의 양력 날짜를 찾아 점을 보던지 아니면 3가지 중 좋은 것을 취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혈액형은 수혈을 위한 분명한 과학이다. 별자리도 유목민들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데 반드시 필요했던 이정표로서 분명한 과학이었다. 그렇듯이 혈액형과 띠와 관련된 별자리에 대한 해석은 현대에 와서도 개인의 삶의 시간을 과거의 시간대로 회귀시켜 욕망을 이루고자 진화한 것 같다. 마치 푸른 초원 같은 <행복>을 찾아 메마른 사회를 유랑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인생좌표>가 된 것은 아닐까?

재미삼아 오늘의 나의 인생좌표인 <오늘의 운세>를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성취한 것을 이제 유지하기 위해 힘쓰는 시기이다’

‘성공이 결실을 이루는 하루이다’

내가 <성취><성공>한 것이 무엇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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