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건강한 거짓말

M스토리 입력 2022.12.16 16:06 조회수 1,943 0 프린트
 
 
 










남자가 하는 말의 80%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반면 여자가 하는 말은 80%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말이라고 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남녀가 공동으로 가정경제를 책임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자가 가장으로서 주로 책임지는 형태였다. 따라서 바깥일을 담당한다고 남자는 바깥양반이라 불렀고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한다고 안사람 또는 아내라 불렀다. 

당시에는 남자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안사람인 여자는 대야에 물을 떠다 주고 남자는 세수하고 발 씻고 여자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때 경상도 남자(사나이)는 말을 세 마디만 한다고 한다.

<아는?>, <밥 묵자>, <자자>

다른 도(道)의 남자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

거짓말은 어떤 이득을 챙기고자 하는 진실 되지 못한 말을 말한다. 별달리 피해를 주지 않는 가벼운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왜 그런 거짓말을 많이 해야만 했을까?

동분서주, 밖에서 겪은 일에 대해 남자들은 아내에게 시시콜콜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가령,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고 여자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갔던 일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술값이 얼마였는지, 누가 영수증을 끊었는지, 술값(팁 포함)의 출처 등…… 반면 여자는 어떤가?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앉아 남자를 기다리며 집안일 하랴, 애 보랴 정신없이 지내다가 밤늦게 (기어)들어오는 남자를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일과 기다림에 지쳐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남편이라고, 참고 참다가 밥상머리에서 한마디 한다. 말을 하다보면 끝이 없다. 이 말 저 말 생각나는 대로 화풀이 삼아 쏟아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 말의 내용이라는 게 대부분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주변의 소문이거나 연속극 이야기 아니면 아이들과 연관된 소소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쉽다. 

남자끼리 떠들던 정치나 사업정보, 인생철학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니 남자에겐 그저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다. 따라서 남자의 귀에는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하여 여자의 마음은 눈곱만큼도 헤아릴 줄 모르고 짜증을 내거나 들은 척 만척하기 일쑤다. 

어쩌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개 집안 어른 생신날이나 결혼기념일, 아이들 생일을 넘겼을 때의 말이다. 아차, 싶다. 그것은 남자인 바깥양반이 가장으로서 챙겼어야 할 일인 것이다. 그게 20%의 안사람인 여자의 말(들어야 할 말)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남자 여자 구분이 없는 시대다. 어찌 보면 남자가 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 정보도 여자보다 더 어둡고 편협하다. 오죽하면 아이의 대학진학문제에서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하여간 이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각종 미디어 특히 SNS가 발달해서 정보교환은 물론 누가누구를 만났는지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다 알 수 있는 시대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CCTV가 쫙 깔려있어 누가 어디를 경유해 어디로 갔는지 다 아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세상에 <진실 된 말>이라는 것은 없다. 또한 <거짓말>도 없다. 가령 누군가 어떤 말을 했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솔직하게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그의 말은 솔직한 말이 아니다. 그의 말 속에는 그가 목적하는 어떤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의도를 포장해서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그 감춰진 의도를 듣는 사람이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해 내느냐가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누군가 내개 공을 던져주었다고 하자. 그는 공을 던져주고 뭐라고 지시어를 준다. 나는 그가 왜 내게 공을 던져주었는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그의 의도대로 판단해 내지 못하면 공을 엉뚱한 사람에게 던지게 되고 그러면 게임(대화)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를 들어보자. 과거의 상당수 남자들은 술집에서 자기가 술값을 내고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는 친구가 술을 사줬다고 하는 게 일반이었다. 왜 그렇게 말을 해야 했을까? 그 심리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아내를 안심시키고자하는 의도가 그 말 속에는 감춰져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남편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슬쩍 속아주거나 버릇을 고쳐줘야겠다고 작심하고 야단을 치게 된다. 남자는 또 그 아내의 용서와 야단의 정도를 판단해내야 한다. 그리고 아내의 의도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는 거의 매일 거짓말을 하고 또 들으며 산다.
「언제 술 한 잔 하자.」
「그래 좋은 날 보자.」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 얘.」
「그래,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다시 하자.」

 거리에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집안에서 오늘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거짓말을 듣고 거짓말로 약속을 한다. 건강하게 함께 오래오래 잘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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