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역사적 미스터리! <올빼미>

M스토리 입력 2022.12.16 16:05 조회수 2,926 0 프린트
 

임진왜란(1592.4)이 일어나고 조정을 나눈 '분조'를 맡아 남쪽을 지킨 광해군의 선전으로 선조는 죽을 때까지 광해군을 시기와 정적의 대상으로 여겨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고 왕권 강화를 위해 내부적으로는 많은 옥사를 일으키고 외부적으로는 사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과 후금에 대하여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계속되는 옥사로 궁지에 몰린 세력들은 반정을 일으키게 되고 마침내 인조반정은 성공하게 된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1623~16 49)는 “광해군과 반대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기존 중립적인 외교정책에서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한다. 후금은 광해군 시대의 외교를 거듭 요청하였으나 인조는 거절한다. 후금은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되고 3만군사가 황해도까지 침입하자 인조는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래도 명에 대한 사대주의가 계속되자 1636년에는 병자호란을 일으키게 되고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12만 군대가 홍이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점령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되고 45일간의 항전이 있었으나 마침내 청나라 황제 태종(홍타이지)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삼배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의 예를 갖추게 되며 인질로 소현세자를 청나라로 보내게 된다. 민심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인조를 원망하게 되고 인조의 죄업으로 고생하는 소현 세자에 대해서는 동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온 소현세자는 청나라 측에서 툭하면 외교적 현안들에 대해 따져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치 오랫동안 외교 훈련이라도 받은 듯 능숙하게 대응했으며 고요한 가운데 당당하고 실언을 하거나 표나게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청에서 자급자족하라며 나눠준 땅을 가지고 조선인 포로들을 규합하여 농사를 짓고 무역을 관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청태종의 아홉 번째 아들의 섭정을 맡은 도르곤은 후방의 안정을 위하여 8년여의 인질 생활을 끝으로 소현세자를 본국으로 귀국시킨다. 

인질 생활을 통한 외교정책의 성공과 조선 포로들을 규합하고 민심을 달래는 것에 성공한 소현세자의 귀국은 인조로서는 반가웠을 리가 없다. 일련의 과정은 소현세자에 대한 인조의 의심과 질투심이 자라 제거해야 할 가장 큰 정적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 “올빼미”는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인조(유해진)의 “몽니” 때문에 일어나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소재화한 영화이다. 침술에 능한 주맹증(낮에는 시력이 저하되고 밤에는 시력이 회복되는)을 앓고 있는 경수(류준열)를 어의 이형익(최무성)은 앞을 전혀 못보는 맹인인지 알고 발탁하여 소현세자를 독살하는데 이용하게 되고 이 비밀을 밝히려는 경수(올빼미)의 시선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려는 인조의 어심과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 앞에서 경수의 노력은 한낱 하루살이가 불을 향해 뛰어드는 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소현세자의 죽음 뒤에 세자빈 강빈은 인조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는 모함으로 사사되게 되고, 아들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영화에서 강하게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이형익이 소현세자를 죽이려고 독침으로 시침할 때, 양눈,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소현세자가 애타게 경수를 쳐다보고 있었고 마침 초가 다되어 촛불이 흔들리며 꺼지는 것과 동시에 앞이 보이게 된 경수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영화의 시사점으로 우리의 삶은 내부환경 보다는 외부환경에 의하여 삶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봐서 좋을 영화는<광해>,  <남한산성>, <최종병기 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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