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산책] 관심 밖 관심

M스토리 입력 2022.12.01 10:43 조회수 2,250 0 프린트
 
 
 
 











 
언젠가, 사무실 여자 직원과 점심을 함께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때마침 길 건너에서 다른 동료 남자직원들이 모여 있기에 무슨 일인가 관심을 갔게 되었다. 요구르트를 사먹는 것 같았다. 그곳에 몰려있는 직원들 면면을 살펴보니 평소에 요구르트 아줌마하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직원들이었다. 
하여 나는 무심코 “저 아줌마는 예쁘기도 하지만 상냥하기까지 해서 인기가 많네요.”하고 여직원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대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거 성희롱이에요.”하고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그 여직원에게 ‘미안하다. 불쾌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하고 정중히 사과를 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그날의 사건에 대해 말을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하길 잘 했다’고 한다. 게다가 어디서나 아무에게나 <예쁘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그런 언사는 자기와 비교하는 말로 들려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당신처럼 키 작고 못생긴 남자가 하면 더 불쾌해서 성희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은 결국 이 시대의 언어의 법률적 판단은 객관적 팩트가 아니라 여성의 주관적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그 해석을 듣고 보니 삭막하달까, 사막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회는 온통 메마른 사막 같은 곳이고, 그 사막에는 또 지뢰가 도처에 깔린 듯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기분, 과연 나만의 기분일까?)

어떻든지 여자와 대화를 해야 할 경우에는 먼저 어떤 언어를 쓸 것인지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거나 심지어 예감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녹음>을 하겠다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아내는 다른 여자의 의상이나 얼굴 등 외모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 신체와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농담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재치 있는 유머로 여자를 웃기고 감동 시켰다 하더라도 자기만족 이외에 손해가 나면 났지 득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 농담도 하지 말라. (과연 수컷 생리상 남자에게 가능한 노릇일까?)
하루는 휴일 오전에 아내와 가까운 야산 둘레길 산책을 나갔다. 그 둘레길은 주로 노인들이 많이 다니는 명소였지만 다른 쪽 가파른 산행 코스는 젊은 연인들도 많아 누구나 산행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늦가을이라 단풍이 진하고 좋았다! 하여 단풍 구경하려고 몰려든 산행객들이 많았는데 우리가 내려갈 때 마침 젊은 여자 둘이 천천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40대 초반쯤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중 한 여자가 말을 하고 한 여자는 듣고 있었다. 오전이라 기온이 낮고 공기가 맑아 그런지 그 여자의 말소리가 또렷이 내 귀에 들려왔다.

『나, 그동안 잘못 살았나봐. 반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반대로 살았어.』

순간, 나는 전기충격기에 감전 된 듯 몸이 떨렸다. 남의 말 같지 않았던 것이다. 
왠지 그 여자들의 수수하고 평범한 모습에서 가을 낙엽 같은 쓸쓸한 느낌도 받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외로운 친구 끼리 휴일을 맞아 마음을 나누며 산에서 하루를 힐링 하려는 것이리라.

『그 여자 말이 인생철학으로 들리네.』

라는 말꼬리를 달아 아내에게 들려주었더니 아내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 속에는 내 개인적 반성도 함께 접수한다는 것 같기도 했다.

평소에 가수나 탤런트를 비평하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모나 분위기에 대해 평가하는 습관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몹시 걱정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날은 그 여자들에 대해서 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진즉에 아내의 조언이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 여자의 말 <반대로 살아왔다>는 명제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여자는 - 그 옆의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특별히 관심을 끌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부류랄까, 관심 밖의 여자들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산책을 마친 뒤 한 달이나 지난 오늘까지도 그 여자의 그 말 <반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반대로 살았어.>라는 말이 내 관심 안에서 뱅뱅 맴을 돈다.

<반대로 살았어야 했는데>는 무엇이고 <어떻게 반대로 살았다는 것인가?>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 그 여자들을 다시 산행 길에서 만난다면 그 말의 사연과 의미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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