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서울에 없는 서울 사람

M스토리 입력 2022.11.16 15:17 조회수 2,374 0 프린트
 
 
 










아내는 가끔 내 행동에 대해 “촌스럽다”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있어서 ‘촌스럽다’라는 표현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리라.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소파에 누워 음식을 먹다가 흘리거나, 아무 데서나 가래침을 뱉는다거나, 전철에서 다리를  꼬거나 벌리고 앉아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것 등이다.

서울 사람이라면 그런 저급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덧붙여 서울 사람이라면 말을 교양 있게 해야 하고 음식 값을 먼저 선뜻 낼 줄 알아야한다는 것도 있다. 게다가 계절 마다 세련되게 의복도 갈아입어야 하고 특히,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반드시 서울에 사는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일까?

아내의 고향은 청주다. ‘양반의 도시’로 정평이 나있는 고장답게 그곳에는 그런 남자가 얼마나 많았기에 그러나 싶기도 하다. 참고로 아내는 성이 이씨이고 본관은 <전주>다. 문뜩, 조선 시대의 왕족의 모습이 그랬나? 싶다. 

상당수의 지방 사람에게는 서울에 대한 환상이 있다. 나 역시 성장기에 지방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상경만 하면 무엇으로든 성공할 것 같은 환상이 있었다. 누구에게 듣고 나만이 갖는 느낌인지는 몰라도, 서울은 화려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사는 발전 지향적인 도시라는 선입견이다. 그렇듯이 아내에게도 서울에 대한 어떤(나로서는 알 수 없는) 나름대로의 선입견이나 환상이 있어서 은연중에 나에게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우연히 서울 변두리 한 카페에서 젊은 남녀 커플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남자가 물었다. 아마 소개팅 자리인 것 같았다.
“서울이라예”
  여자가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가 
“경상도 아니신가요?” 하고 다시 묻는다.
“아니라예. 어릴 때 아버지가 부산으로 발령이 나서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지예.”

그런가하면 서울이 고향인 또 다른 두 사람도 나는 알고 있다. A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고 서울 소재 직장을 다녔다. 그가 서울을 떠난 것은 공군에 입대하여 지방 비행장에서 근무한 3년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는 자기 고향을 강원도라고 주장한다. 부모의 고향을 자기 고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B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았고 아직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할아버지 적부터 사대문 안에 살지 않아서 그런지 자신은 서울 사람이 아니라 <강남>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루는 누군가 그가 살고 있는 압구정동의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라서 좋겠다’고 한 마디 하자, 그는 눈을 부라리며 ‘그럼 나보고 고향을 떠나라는 말이냐’라며 버럭 화를 내던 성난 표정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속설에 ‘서울 사대문 안에서 3대가 살아야 서울사람’이라고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아내가 들려준 말이다. 마치 서울 사람은 <사람의 완성품> 같은 말 같다.

하지만 ‘뉴요커’란 뉴욕에 사는 사람을 총칭한다.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어디에서 살다 왔던, 언제부터 살고 있든, 아무 관계없이 현재 뉴욕에 사는 사람은 모두 ‘뉴요커’인 것이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는 서울에서 30년 이상씩 살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셈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은 초.중.고 대학까지 다 다니고. 그러니 이제 그들은 서울을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들은 서울을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서울 사람 되기가 쉽지 않고  자신이 없어서 그럴까?

한해가 가기 전에 아내가 말하는 진정한 <서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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