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베트남 여행기(2) 영원한 가을의 도시, 달랏

입력 2022.11.01 13:18 조회수 2,698 0 프린트
달랏은 코로나의 여파인지 외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호치민시에서 휴가를 온 현지인들로 붐볐다. 달랏에서 호치민시는 약 300km이지만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약 2,500km 거리이기 때문에 달랏에서 호치민은 갈만한 거리인가 보다. 달랏에 방문하는 현지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이국적인 기분을 내기 위해 제주도에 가는 것처럼 평소 잘 입을 일이 없는 두꺼운 겉옷을 캐리어에 넣고 놀러 온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중심가에서는 관광객용 음식을 파는 식당이 대부분이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달랏에 사는 사람들이 가는 저렴하고 평범한 음식 파는 곳도 있지만 여행 초반에는 찾기가 어려운 법이다. 베트남 국민 음식인 쌀국수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유행 중인 찍어 먹는 국수 분짜는 하노이 음식이기 때문에 흔하지 않다. 

달랏 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음식은 베트남 피자라고도 불리는 반짱느엉이다. 달랏의 중심인 호수와 나이트 마켓 근처를 빙 둘러싼 반짱느엉 노점은 평균 한화로 1,300원정도 하는데, 여기에 치즈를 추가한다면 한화로 300원 정도를 더 내면 된다. 반짱느엉은 식사보다는 간식에 가까운데, 넉넉한 크기를 보고 하나만 주문해서 일행과 둘이서 나누어 먹는다면 곧장 하나를 더 시키게 될 것이다. 반짱느엉이란 라이스페이퍼 위에 각종 잘게 썬 야채, 소스, 소시지, 치즈 등을 올린 뒤 달걀을 하나 풀어서 석쇠 위에서 직화로 익힌 뒤 달콤한 칠리소스와 마요네즈를 뿌린 음식이다. 숯불에 잘 익은 반짱느엉은 노점마다 내는 모양새가 다르다. 피자처럼 동그란 모양 그대로 먹기도 하고, 두 번 접어서 크레페 모양으로도 먹지만 부리또처럼 양쪽을 접어서 파는 게 가장 흔하고 먹기도 편한 것 같다. 
달랏의 반짱느엉 노점

밤이면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 동행과 나는 야시장과 호수를 몇 번이고 쏘다녔다. 불빛이 있는 곳만 있으면 가까이 가서 무엇을 파는지 확인하고 구미가 당기면 바로 먹어보면서 새로운 노점들을 격파, 간식거리를 거덜 내던 우리는 반짱느엉보다도 더 취향에 맞는 간식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따우 후 느억 두엉이라고 불리는 차가운 달랏의 밤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디저트이다. 하나 주문하면,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서 김이 풀풀 나는 뜨거운 연두부를 주걱으로 퍽퍽 퍼서 그릇에 담고 생강 시럽과 코코넛 소스, 타피오카 펄을 넣어서 내어준다. 주변의 현지인들은 그런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우리는 뜨겁고 밍밍한 두부를 퍼먹으며 MSG 없는 순수한 음식에 기뻐하는 한편 진간장을 그리워했다.
달랏의 따우 후 느억 두엉 노점


밤에는 가을처럼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여름 날씨였기에 열기를 식혀줄 수 있는 간식이 당겼는데 우리가 늘 먹었던 것은 바로 깸보(KEM BƠ)이다. 달랏의 특산품인 아보카도가 메인인 이 음식은 달랏에서 가장 흔하고 유명한 디저트이다. 깸보는 1,300원짜리부터 3,000원까지로, 어디에서 어떤 깸보를 먹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깸은 아이스크림, 보는 아보카도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아보카도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는 음식이다. 가장 흔한 노점의 깸보는 아보카도 스무디 위에 코코넛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올리고 땅콩이 약간 올려져 나온다. 
노점에서 파는 깸보

하지만 노점에서만 파는 반짱느엉과 다르게 깸보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엘레강스한 유리잔에 담겨 나오는 깸보는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이 각각 한 스쿱씩 나오기도 하고, 한 카페에서 먹은 깸보는 물도 시럽도 연유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하고 진한 아보카도 스무디가 나와서 감동하기도 했다.
전문점에서 파는 깸보

달랏에서의 5일 차,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더 이상 반짱느엉을 나누어 먹고는 양이 적다며 ‘하나 더 먹을까?’ 하며 동시에 웃어 보일 일행이 없어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희망을 품고 지내던 호텔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새로운 숙소인 ‘John's hostel’은 이전 숙소보다 시내에서 더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기대와 다르게 외국인은 많이 없었다. 이틀 동안은 텅 빈 도미토리룸에서 혼자 지내다가 호치민 시티에서 온 흐엉, 짱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관광을 온 자매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함께 관광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좋다고 대답하고 숙소 근처에서 함께 아점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렌트한 이륜차로 3~40분을 달려 교외에 있는 카페에 갔다. 들어가는 길이 맞는 길인가 싶은 정도로 포장이 되지 않은 험한 길이었는데 동생을 탠덤하고 씩씩하게 앞서가는 흐엉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혹여나 넘어질까 조심조심 천천히 그들을 따라갔다. 카페에 도착하자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화원과 농장이 내려다 보이는 야외 카페였다. 
함께 동행했던 흐엉과 짱의 뒷모습,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

나는 에스프레소를 곁들인 푸딩을 주문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푸딩을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흐엉과 짱은 서로를 찍어주는데 열정적이었다. 그러다 흐엉이 나에게 본인의 음료를 내밀며 이것을 들고 저 의자에 앉아보라며 내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들은 사진을 찍는데 너무 열중한 바람에 카페를 나설 때 음료가 모두 반 이상씩 남아있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 카페는 음료보다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그날 밤, 흐엉과 짱이 호치민 시티에 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이제 달랏에 익숙해진 나는 이전보다 덜 외로웠다. 아침이 되면 척척 가방을 싸서 근처 카페에서 여유로운 커피를 마시고,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에게 맛집 추천을 받아 점심을 먹기도 했다. 이렇게 달랏이 익숙해질 때쯤,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달랏에 도착한 지 열흘만이었다.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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