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초 여름 라이딩

M스토리 입력 2022.07.18 13:06 조회수 3,294 0 프린트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계절의 변화와 날씨에 민감해졌다. 이전에는 그저 비 오면 싫고 비 안 오면 좋고 이런 정도의 감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젠 바람이 부는 정도와 습도, 일교차뿐만 아니라 철마다 피는 꽃에까지 관심을 더하게 됐다. 단순히 덥고 춥다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내리쬐는 해가 따가워 더운지, 해는 없지만 공기가 습해서 더운지, 바람이 많이 불어 추운지, 기온이 낮아서 추운지 등등. 뭉뚱그려서 이분법적으로 좋고 나쁘다고만 생각하던 날씨라는 개념을 세분화해서 기억하게 됐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살다 보니 집 창문에서 논밭이 보이던 때와는 달리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덕에 무감해졌다가도 바이크를 타면서 피부로 느끼게 되어 또 다른 체험의 장이 열린듯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느 계절이 가장 좋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라이더에게 봄만큼 반가운 계절, 초여름. 더 이상 방풍에 목숨을 건 못생긴 기능성 외투를 입지 않아도 될 때. 아무리 기온이 오르고 해가 길어졌다고 해도 봄바람은 차가워서 헬멧과 함께 챙기던 목토시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선택의 여지 없이 핸들에 달아둔 토시가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열선 그립을 더 이상 켜지 않게 될 때. 방한 장갑이 답답해지고 헬멧의 쉴드를 여는 것이 두렵지 않아질 때. 드디어 여름의 초읽기가 시작됐다. 

바이크를 타게 된 뒤로 여름에도 여름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서, 여름의 시작은 어느때 보다 즐거운 시간이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작열하는 태양과 달리 장마 때문에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우리나라의 한여름은 바이크를 타기엔 너무 감수해야하는 것이 많다.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서 우비를 입고, 미끄러운 도로 위에서 평소보다 두세배는 신경쓰며 라이딩을 하고 있자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집에 가고만 싶어진다. 끝날것 같지 않은 장마가 지나고 나면 습하고 너무 뜨거운 햇볕 때문에 헬멧 안에서 머리가 쪄지는 것 같은 한여름이 시작된다. 푹푹 찌는 여름에 조금 적응을 했나 싶으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의 태풍이 시작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여름도 겨울 못지않게 바이크 타기 어려운 날씨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괜찮다. 짧다면 짧은 초여름. 그동안 바이크의 신이 있다면 그의 가호가 느껴지는 날씨 속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한낮엔 반소매만 입고 바이크를 타도 아무렇지 않은 기온. 내리쬐는 햇볕에 살이 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지만 또 속도를 내어 달리면 불어오는 바람에 햇볕은 아무렇지 않아진다. 해가 조금 수그러들면 적당히 선선한 날씨에 얇은 겉옷을 하나 걸친 채로 목적지가 어디든 안장 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기어를 변속하는 발끝에서부터 즐거움이 느껴진다. 겨우내 염화칼슘에 코팅된 채 꽝꽝 얼어있어 타이어를 튕겨내던 아스팔트가 지난 한낮의 태양에 말랑해져 있어 운전하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퇴근길에 괜히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보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좋아하는 길을 선택해 한참을 쏘다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하나 사 마시고 집에 가게 되는 날씨. 이 날씨 때문에 바이크를 탄다고 해도 그다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지 5년차, 이젠 가끔 바이크 타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다. 특히나 날씨가 추워지면 안장 위에 오르기 전에 입어야 하는 외투의 개수가 3개는 물론 5개도 되는 경우가 빈번하기에 겨울은 정말 견디는 계절이 되버렸다. 물론 겨울 라이딩만의 어떠한 즐거움과 낭만이 분명이 존재하지만 출퇴근길에 외투 때문에 무겁고 둔해진 몸을 이끌고 꽁꽁 언 도로 위에서 조심하려 애쓰다 보면 피로가 몰려오곤 하니까. 그런데 여름이 시작되자 다시 라이딩의 즐거움이 되살아났다. 

따뜻해진,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즐거운 것은 나 뿐만은 아닌 듯 하다. 잠수교나 북악 스카이웨이 등 라이더들이 자주 찾는 장소는 점점 바이크를 주차할 곳도 없어지고 있다. 그냥 관용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투어를 떠나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보고 싶은 얼굴들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겨울에 바이크로 30분 거리에서 만나자고 하면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겨우 외출하기를 결심하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헬멧과 얇은 겉옷 하나만 챙겨서 안장 위에 오르면 되니까. 또 나간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불어오는 아카시아 꽃향기와 청량한 여름 냄새를 즐길 수 있게 됐으니까. 초록과 연두 사이의 색이 얼마나 다양한지, 거리에 피는 꽃이 이렇게 많았는지. 아카시아 다음에 피는 꽃은 장미고, 장미 다음엔 능소화 차례라는 것.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눈여겨 본적 없는 꽃들의 순서를 생각해보게 된다. 신호대기 중에 멍하니 가로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고 즐거워할 수 있는 계절이라는게, 안장 위에서 이렇게 다양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게 정말 행복하기 그지없다.

도시에서의 삶은 사람이 날씨와 계절을 잊게 한다. 변하는 날씨와 자연을 보고 느낄만한 사건을 일부러 만들어내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는 그저 옷의 두께로만 느낄 수밖에 없다. 꼭 바이크가 아니더라도, 야외에서 활동하며 자연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취미 하나쯤 가지고 있는게 어떨까? 다가오는 다른 계절의 라이딩도 기대된다.                          
by. 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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