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실수 아닌 실수

M스토리 입력 2022.04.15 18:29 조회수 2,180 0 프린트
 
 
권혁수 시인
실수는 어떤 상황이나 정보를 정확하게 잘 모를 때 일어난다. 사전적으로는 조심하지 아니하여 말이나 행동이 예의에 벗어난 것을 말한다.

저 지난 해 봄날, 성(姓)이 이씨인 시인을 김씨로 잘못 기재해서 딸의 결혼 청첩장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시인은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아차, 싶었다. 나는 다시 정정을 해서 청첩장을 보내야 했고 전화로 정중히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왜 전화번호부에 이시인의 성씨를 잘못 등재했을까?

우리는 간혹 이름을 혼동해서 부를 경우가 있다. 작은아들을 불러야할 때 큰아들 이름을 부른다거나 아내를 부른다는 게 딸 이름을 부르는 경우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 최종삼과 배종남이 앞뒤로 앉아있었는데, 선생님이 “최종남 일어나 책을 읽어봐라.” 해서 누가 일어나야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성장기엔 내 이름도 간혹 잘못 부르는 어른들이 많았다. ‘김혁수’라거나 ‘장석수’ 심지어 ‘이수혁’이라고 부르거나 혀가 짧은 한 친구는 ‘고녹수’라고 불러서 배를 쥐고 웃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경우라 하더라도 언짢다거나 서운해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떻든지 나를 알아주고 불러준다는 것이었기에 그랬다. 마치 김춘수시인의 시에서처럼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는 것’과 같은 이를테면 새로 태어나는 심오한 쾌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하여 요즘말로 쿨하게 들어주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들이 불러준 이름 가운데 진정으로 어떤 게 내 이름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불리고 호적에 올라있다고 해서 그게 진정 내 이름인가? 혹시 다른 집에 태어나 다른 이름이었는데 애기 때 이 집에 입양돼 와서 지금 내가 아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순간 내가 어딘가 낯선 길에 들어선 것 같은 황당한 기분마저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그렇게 나름대로 불렀을까? 그들은 그들만의 어떤 특별한 정신적 영역에서 나를 인식하고 그가 아는 누군가의 이름에서 느꼈던 각별한 동질감을 나에게서도 느껴 그렇게 나를 불러서 만나려 했던 것은 아닌가!

김혁수는 그의 다정한 친구 김영수로 착각하며 부르지 않았을까? 장석수는 혹시 영화배우 장동휘나 장동건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며 나를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어떤 경우의 호칭에서든지 ‘수’자가 들어간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철수의 ‘수’ 때문에 혀가 익숙해져 연유된 호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아직도 그들은 나를 그들이 당시에 불러준 그 이름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아니 어쩌면 다시 만났을 때는 그들이 그동안 친숙하게 지냈던 또 다른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나를 부를 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을 다시 만나보면 알 일이라, 오늘따라 그들이 그립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꼭 만나보고 싶다. 김광수, 이정민, 박동욱, 이창숙, 정선아…… 어쩌면 그들의 이름도 내가 친숙하게 느낀 그 어느 누군가의 이름에서 착상해 낸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의 잠재된 심리 속의 그 친숙한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어느새 벚꽃이 져서 창밖에 꽃잎이 흩날리고 있다. 가슴이 화사하고 향기로워지는 느낌이다. 그 느낌으로 그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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