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시트고에 대한 키 작은 라이더의 아쉬움

M스토리 입력 2022.04.01 10:36 조회수 3,395 0 프린트
 

나는 150cm보다 아주아주 약간 작은 키를 가지고 있다. 평생 동안 키가 작고 왜소한 여자애였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딱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콩알만 한 여자애’라는 수식어를 떨구고 싶어서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해도 갑자기 10cm씩 키가 커지진 않겠지. 아무리 운동을 하고, 식이조절을 해서 근육을 잔뜩 만든다고 해도 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 키는 평생 동안 나를 괴롭혀 왔다. 채린이는 다 좋은데 키가 작아서, 골고루 먹어야 키가 크지, 그거 먹어서 되겠니, 운동을 해야지 키가 크지, 일찍 자야 키 크지.. 등등 수도 없는 참견들. 키가 컸다면, 못해도 평균만 되었다면 절대 듣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평생 들어왔고, 지금도 종종 듣는다.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난 키 작은 게 문제야, 키만 컸더라면, 5센티만 크면 좋겠다.. 와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외적인 부분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얹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 작아졌다. 좋든 싫든 평생을 150cm보다 작은 키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이크를 타게 되면서 또 다른 불편함의 장이 열렸다.  거의 모든 바이크는 발이 완전히 닿지 않고, 덕분에 남들의 몇 배나 되는 두려움을 가지고 바이크 위에 오르게 되었다.

내 첫 바이크는 시티백이었다. 시티백은 시트 고가 딱히 높지 않은 바이크다. 다른 바이크들과 비교한다면 평균이거나 약간 낮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나에게 시티백의 시트 고를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이크는 자전거처럼 쉽게 레버 하나로 시트 고를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그저 익숙해지는 수 밖에 없다. 시티백을 타면서 다리에 멍이 없는 날이 없었다. 후진을 하거나 정차해 있을 때 포지션이 엉망이라 앞꿈치로 시티백을 견뎌내고 있어야 했고, 당연하게도 스텝에 계속해서 다리를 맞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릎 보호대를 해서 정강이가 멀쩡하면 종아리에 노랗게 멍이 들었다. 웃기게도 한동안은 바이크를 처음 타게 된 즐거움에 멍이 생기는 줄도 몰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리에 멍이 없어지지 않고, 그 이유가 키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멍 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정차시에 지면에 발을 딛으면 자연스럽게 다리와 스텝 사이에 공간이 충분히 생기는데 나는 다리를 스텝에 대고 시티백의 무계를 버텨내야한다니. 너무 타기 쉬워 한 손만으로도 탈 수 있는 언더본 바이크를 타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했다.

정말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다! 왜 남들은 안 해도 되는 노력을 나는 해야 하는걸까. 고작 키가 작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바이크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너무 큰 제약이 생기고, 결국 소배기량 바이크 몇몇이 아니면 편하게 탈 수조차 없다. 노력하면, 연습하면 발이 닿지 않는 바이크도 충분히 탈 수야 있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무리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데 취미생활을 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바이크는 순전히 즐겁고 편리하기 위해서 타는 건데! 나는 절대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며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내가 왜 여기서까지 그래야 하지? 내가 키가 작은건 내 잘못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 이건 다 평균 신장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이크 제조사들이 남성 평균 신장에 맞춰 바이크를 만드는 바람에 그들의 타깃 소비자가 아닌 나는 돈을 내고 가랑이를 찢어가며 타야 한다. 뱁새 가랑이가 찢어지는 바이크들을 제외하면 정말 손에 꼽을 수 있는 선택지들만이 남는다. 

지금은 발레 하듯 발끝이 겨우 닿는 바이크를 타고 있다. 바이크를 타면 곡예를 하는 건지 운전을 하는 건지 좀 헷갈릴 때도 있다. 발이 잘 닿지 않기 때문에 중심을 잃기 쉽고,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친다. 한번 중심을 잃으면 무조건 넘어진다. 뭐,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 50%의 확률로 넘어진다. 이전에 타던 바이크들은 발 앞꿈치까지는 충분히 닿았고, 덕분에 넘어지면 무릎에 멍이 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타는 바이크는 무조건 골반과 어깨가 부딪힌다. 시티 100을 타고 넘어지는 것의 세배쯤 더 아프고 2주쯤 더 오래 아프다. 넘어져도 괜찮아, 와 절대 넘어지면 안 돼, 가 주는 차이는 정말 너무 크다. 넘어져도 괜찮은 상황에서는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들을 절대 넘어지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그저 탈출해야 하는 위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오는 날 우비를 입고 비를 온몸으로 맞응면서 바이크와 한몸이 되어 미끄러운 노면 위에서도 안전하게 라이딩 하는 즐거움은 비오는 날에는 땅을 딛은 발이 미끄러지는 상상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뒷바퀴가 조금만 흐르기라도 하면 바로 센터부터 가는 것과 뒷바퀴가 흐르는 걸 즐길 수 있는 것의 차이는 사하라 사막과 아마존 정글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발이 닿지 않는 위기감을 매일매일, 바이크를 탈 때마다 느끼며 나는 서서히 지쳐갔고 무력감을 느껴왔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바이크를 타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 나를 압박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끔찍한 출근길에서도 바이크를 타는 것만은 너무 즐거워 노래 부르며 운전했었는데. 지금은 무슨 노래를 듣든 간에 도로 지면을 살피느라 바쁘다. 솔직히 지금 타는 바이크가 정말 귀엽고 멋지기 때문에 참는 거지, 만약 못생겼더라면 진즉에 팔아버렸다. 바이크의 디자인과 내 괴로움을 맞바꾼 셈이다. 내가 180cm의 키를 가졌다면, 아마 나는 지금 아프리카 트윈쯤은 타고 있지 않을까. 못해도 닌자 400정도는 타고 있겠지. 누가 내 시트고에 대한 분노를 풀어줄 수 있을까 싶다.    
by. 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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