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크를 타다 보면 종종 2차 전직을 한 듯 한 라이더들을 마주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라이딩 스타일을 확실히 알고 추구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라이더는 50cc 스쿠터로 바이크에 입문했지만 지금은 리터급 레이싱 모델을 타기도 하고, 어떤 라이더는 125cc 클래식 바이크로 입문해 쿼터급 듀얼 바이크를 타기도 한다. 본인은 Citi 100으로 입문해 온로드에 특화된 MSX 125cc를 타다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장르인 트리커 250을 탔었다. 어떤 매력들이 있길래 우리는, 그리고 이 라이더들은 각자의 2차 전직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다양한 갈래로 전직을 할 수 있겠지만, 편의상 온로드와 오프로드로 뭉뚱그려볼 수 있겠다. 오늘은 오프로드로 전직한 라이더, 1172를 만나보자.
채린> 먼저, 어떤 바이크들을 타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1172> 첫 바이크는 무조건 소배기량 스쿠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주변 남자애들이 ‘너 같은 애가 바이크 타면 무조건 사고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어서 ‘바이크 같은 바이크’ 보다는 조금 더 자전거에 가까운 소배기량 스쿠터 줌머 50을 타게 됐어요. 근데 막상 타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신중한 성격이라서 조금씩 조금씩 입문자 코스를 밟는 것처럼 다음에는 Cite 100을 타고, CG 125를 타면서 이제 제 기준의 바이크 튜토리얼이 끝난 느낌이었어요. 이다음에는 조금 더 재미로서의 바이크를 타볼까 하고 어찌 보면 1차 전직이라 할 수 있는 듀크 390을 탔어요. 취미로서의 바이크 생활은 그때 시작된 것 같아요. 듀크 타다가 갑자기 엄청난 장르의 갭이 생겼지만 XTZ 125로 넘어왔어요.
채린> 어쩌다가 XTZ를, 오프로드를 타게 되셨나요?
1172> 듀크가 정말 재밌는 바이크였고 너무너무 잘 탔지만, 어느 시점부터 지루함이 느껴졌어요. 듀크는 고속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는 바이크였고, 자연스럽게 고속 주행 위주로 타다 보니 ‘이렇게 고속 주행에서만 재미를 찾는다면, 계속 더 빠르게 가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물론 공도 주행의 즐거움도 더 깊고 다양하지만 저에겐 안 맞았던 거죠. 동시에 바이크를 타면서 스트레스받는 일, 도로 위에서 여자로 존재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고요. 바이크 자체에 정이 많이 떨어져서 ‘서울에 있을 때만 커브를 타자’ 하고 커브를 샀는데 그것조차 손대기가 싫은 거에요. 그때 ‘아 나는 바이크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바이크를 보고 소장하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뒤로 1~2년간 한 달에 한 번도 잘 안 타는 정도로 지냈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 서울에서는 역시 바이크가 있어야겠어서 MSX로 시내 주행을 하면서 정을 붙이고 있었어요. 당연하게 도심 속 주행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시 느끼던 차에,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마주치던 오프로드 라이더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도로에서 내 잘못 없는 위협을 걱정하는 게 너무 피곤한데, 최소한 오프로드는 그런 게 없어서 좋겠다. 근데 입문도 어렵고, 애초에 내가 그걸 탈 수 있겠어~’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 우연한 기회로 오프로드 타는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순서가 물 흐르듯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몇 년간 운동을 열심히 해서 예전보다 체력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고, 하던 일도 거의 끝나가고, 액티비티에 한창 관심이 생겼을 때였거든요. 친했던 친구랑 멀어지게 되었다가 다시 친해질 계기가 생길 듯한 기분이었어요. 예상대로 비포장도로를 타게 되면서 바이크에게 다시 애정이 생겼고. ‘아 나 바이크 정말 많이 좋아했지’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1172> 처음으로 제대로 오프로드 탔던 때가 아무래도 제일 재밌었고 기억에 남아요. 양자산 헬기장이라는 되게 유명한 코스를 갔어요. 그땐 몰랐는데 그 코스가 사실 초급자 코스가 아니에요. 당시 일행들이 조금씩 꼬드기는 느낌으로 ‘여기만 지나가 보자!’ 이랬었고 저도 ‘끝을 봐야 하는데!’ 이런 성격이어서 계속 올라가게 됐어요. 그런데 중간쯤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힘들면 그만하면 되는데 너무 재밌어서. 이게 너무 어려운데 또 너무 재밌고, 정말 뽕 맞은 사람처럼. 8월, 한여름에 온로드 헬멧 쓰고 어지러울 정도로 더웠는데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마음으로 가다가 정신 차리니까 헬기장 정상까지 온 거에요.
산 정상에 바이크가 올라와 있다는 것 자체가 공도만 타던 저한테는 납득이 되지 않던 장면인데 내가 바이크를 산 정상에 올려놨고, 저 밑이 다 내려다 보이는 게 기분이 진짜 생경했어요. 엄청나게 보람차기도 하고. 포기할까 하던 거 참고 올라와서 성취감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살면서 처음 겪는 자극과 성취감이라는 거. 나이가 아주 많은 게 아니지만 이제 그런 일은 흔하지 않은데 그게 엄청난 도파민, 엄청 짜릿한 거에요. 그때가 진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 정말 산에게 한 대 맞은 것 같아요.
채린> 그럼 반면에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요?
1172> 오프로드의 즐거움이자 단점은 다 같이 해야 하고, 혼자선 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같이 오프로드를 탈 여자분이 거의 없어요. 그냥 바이크 타는 여자만으로도 마이너한 위치에 있는데 그 안에서 더 마이너한 오프로드라는 장르 안에서 여자로 있겠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평균 연령대가 높다 보니 20대 여성인 저에게 대뜸 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맥락 없이 존경한다, 팬이다, 멋있다고 하는 것도 썩 기분 좋진 않아요. 같이 몸을 써야 하는 일이다 보니 남녀 역할에 너무 얽매이는 사람과 부딪히는 일도 간혹 있어요. 저에게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도전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는데 저의 실제 실력과 체력이 어떤지를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저에게는 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제 의사와 상관없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인데 자신이 해결해버리기도 하기도 하고요.
채린> 어떤 기대치라는 것이 전혀 없고 제로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1172> 그렇죠. 자기 바이크도 세우지 못할 거로 생각하고, 겁나서 쉬운 것도 제대로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저 사람은 여자니까’가 기반에 깔린 무시가 더 적나라해요. 오프로드 자체는 저를 힘들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판이 좁아서 선택지가 적다는 점이 힘들죠. 혼자서 탈 수도 없는데, 혹시나 여기서 인간관계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면 얼마나 복잡하게 될지도 걱정 되고요. 공도 주행에서 스트레스받았던 것도 결국에는 사람 때문이 가장 컸는데 산이라고 백 퍼센트 피할 수는 없겠다 싶어요.

1172> 오프로드가 더 불확실하고 위험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산에서는 위협운전을 하는 차도,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차도 없고 앞에서 급정거하는 차도 없어요. 산에서는 저만 잘하면 되고 외부의 위협이랄게 없거든요. 함께 해줄 사람들이 있고, ‘괜히 따라갔다가 사람들 발목만 잡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만 안 한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공도 주행에서 맨홀 같은 조금의 노면 이슈에 대해서도 겁을 심하게 먹고 긴장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오프로드는 모든 노면이 나를 받아주지 않잖아요.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실수해도 돼요. 제가 넘어져도 유별난 게 아니고, 다 넘어지니까요. 모두가 실수하는 게 당연한 세계라는 게 좋았어요.
애초에 오프로드엔 실수라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실수라기보다는 그냥 1회차 인 거에요. 도전해 보고, 안됐으면 다시 해보면 되는 거고. 그러다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하면 되는 거고. 그게 여러 가지로 건강한 스포츠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 인스타그램에는 주로 넘어지거나 성공 못 한 영상 위주로 올려요. 그걸 보고 오프로드가 궁금한 입문자분들이 ‘아 저렇게 넘어지며 가도 괜찮구나, 빠르게 못 올라가더라도 함께 해도 되는구나’ 하며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 느끼셨으면 좋겠거든요.
오프로드에서 쌓은 경험치로 공도 주행이 좀 더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으니, 관심이 생긴다면 아예 초심자 친구들끼리, 혹은 천천히 잘 이끌어줄 오프로드 라이더와 함께 이포보 같은 평지 임도에서부터 시작해보세요. 분명 재밌는 경험이 될 거예요. 자기 속도에 맞게 천천히 시작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빠져들 매력 있는 장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