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얼굴 속 얼굴

M스토리 입력 2022.03.16 13:33 조회수 2,909 0 프린트
 
권혁수 시인
누가 조사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자는 하루에 2만 단어를 떠들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남자는 200단어 이상 떠들면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말을 많이 한다는 생리를 풍자한 것이리라. 허나 짧은 내 경험에 의하면 남자들이 더 말을 많이 하는 경우도 꽤 있다. 특히 소설가들이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시인들도 상당수는 술자리에서 한없이 떠드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특정 권역도 있다. 불교명상인 선(禪)의 경우다. 선(禪)은 불립문자, 언어도단을 지향하기 때문인데 도(道)를 깨닫기 위해서 아예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묵언정진이란 수행도 한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다. 하여 묵언(言)이란 번뇌·망상을 내지 않고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터, 선(禪)에서도 부득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짧게 문자언어를 초월한 시(詩)형식을 취하여 자신의 깨달음이나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시는 어머니의 절친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오셔서 늘 내 얼굴을 만져보며

“아이구, 꼭 느그 아버지로구나.” 

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태어난 유복자인 나로서는 어린 시절에 무당 접신하듯 그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는 신비로움을 맛보곤 했다.

그런가하면 시인 K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 마다 짜증이 난다고 푸념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 자신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고 싶은 존재인 아버지가 바로 자기 얼굴 속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다는 것이 심이 증오스럽다는 폭언까지 불사하며 말이다. 생활에 무능했고 술만 마시면 취해서 어머니를 폭행했던 가장 아닌 가장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욕하면서 닮아간다’던가. 푸념을 하는 내내 그는 연거푸 소주잔을 기울였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가 소주를 다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 주먹으로 작고한 아버지처럼 자신의 아내를 폭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증오 속에는 작으나마 자신의 존재 곧, 제 얼굴을 찾아 살피는 한 가닥 명상의 묘가 담겨있기도 한 듯싶다.

<그림자를 돌아보고 느낌이 있어> 란 서산대사의 시를 보자. 

어머니와 이별한 후/도도히 흐른 세월 깊어졌네.
늙은 자식도 아비 얼굴 닮는가?/못 바닥 그림자 보고 홀연히 놀라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또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어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은 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면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존재를 인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처럼 아버지를 아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는 어쩔 것인가? 

하여 서산대사가 그런 우리의 존재를 알고 살필 수 있도록 시 한 편을 남겨준 것이다. 

‘못 바닥 그림자 보고 홀연히 놀라’게 되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던가? 연못에 비친 나의 얼굴이 다름 아닌 내 아버지를 닮은 때문이다. 그렇듯이 내 아들 역시 연못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지금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 아닌가? 결국 미래의 후손이 놀라면서 증오하지 않고 반가워하도록 지금의 내 모습을 잘 가꾸어야한다는 논리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던가!

나는 시인 K가 하루빨리 아버지를 용서하고 스스로 멋지고 존경받는 아버지 상(像)을 가꿀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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