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친구들과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 주인공, 유키. 유키는 비틀거리며 텅 빈 아케이드 상가를 길을 걷다 무료 배포 책자 거치대를 발견한다. 그 중 집어든 것은 산림 관리 연수 프로그램의 홍보 책자. 유키는 그 책자 모델에 한눈에 반해 연수 프로그램에 신청하기로 결심한다.
오늘 소개할 캐릭터는 주인공인 유키가 아니라 주인공이 반한 책자의 표지 모델인 나오키이다.
그는 전문 모델은 아니고 산림 관리 사무소의 부탁을 받아 책자의 모델을 해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오키가 모델을 서 준 사진을 한 번만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마땅한 모델이 없었는지(전문 사진 모델을 고용할 것이지…) 매년 홍보 책자의 표지에는 나오키의 얼굴이 박혀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무소를 보다못한 나오키가 직접 책자를 회수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른다. 나오키는 회수한 책자를 들고 나와 본인의 바이크 짐대에 단단히 묶고 유유히 집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되돌아온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차를 놓치고 문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유키를 불쌍히 여겨 뒤에 태워주기 위함이었다.
나오키가 타는 바이크는 가와사키 TR250로 스크램블러에 속하는 바이크이다. 스크램블러는 오프로드 바이크나 듀얼퍼포즈 바이크에 비해서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은 어렵지만, 일반적인 온로드 바이크에 비해서는 가벼운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바이크이다.

바이크를 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산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나오키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나오키와 바이크가 처음 등장하는 –뒤에 주인공인 유키를 태우고 가는 초반-장면을 봤을 때, 나의 과거가 떠올라 조금 괴로웠다.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초반에, 유키처럼 뚜벅이인 친구들을 뒤에 태우고 다니던 나의 모습이 제법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 때 말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바이크를 탈 때 느끼는 불편한 시선과 반응들을 여성 혐오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피해의식이라는 반응이 늘 따라온다. 남자애를 뒤에 태우고 달리는 나의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이다. “그 바이크는 몇 cc냐”는 질문은 문장이 같다고 해서 다 같은 질문이 아니다. 상황과 표정, 말투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과 질문받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권력관계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이크가 한 대이고 여성과 남성으로 패싱 되는 사람이 바이크를 타고 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운전자가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예상을 뒤집는 짜릿함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더 멋있는 것은 스스로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멋짐에 대한 깐깐한 기준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자제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은 그 누구에게도 나오키에게 왜 바이크를 타냐고 묻거나, 멋있다고 하거나, 치마를 입고 바이크를 타는 모습을 불법 촬영하지 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니 나오키가 부러워졌다. 나는 영원히 나오키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나오키도 내가 알 수 없는 문제에 괴로워 하고 있을것 같다. 그런 미묘하고 씁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로에서 마주친다면 반가워 할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