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 걸린 거 아냐?

M스토리 입력 2021.09.28 14:51 조회수 3,585 0 프린트
 

오곡이 무르익는 추석명절이다. 때맞춰 선배 P가 가을풍경 동영상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내 스마트폰 화면에 단풍이 짙게 물든 산과 들, 강과 호수의 파노라마가 멋지게 펼쳐진다. 별도의 메시지는 없었지만 코로나 시대에 무탈하다는 안부를 전한다는 의미이리라.

잠시 뒤, 똑 같은 동영상을 몇몇 지인들도 보내왔다, P선배처럼 메시지가 없는 동영상을 받고 보니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복제되는 기분이 들었다.

<공유·퍼나르기>는 누군가가 수고하여 생산한 정보를 마치 자기가 생산한 것처럼 전달하는 것이다. 생산자의 감정과 의사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또는 ‘나도 그렇게 글을 썼다’고 착각하고 또 상대도 착각하라고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종종 생각지도 못한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되거나 지친 일상에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컨텐츠도 있어 가치가 느껴진다. 하지만 때로는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하기에 상대를 짜증나게 하거나 사회적으로 예기치 않은 화를 불러일으키는 공해도 적지 않다.

한때 P선배도 설날과 추석이면 SNS에 떠도는 틀에 박힌 풍경이나, 복날에 멍멍이와 삼계탕 사진을 받으면 진저리치며 그 사람들을 폄하하고 공해유포자라고 비난했었다. 그런 그가 남들처럼 버젓이 <공유·퍼나르기>를 하다니! 왜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일까?

일면 이해는 간다. 직장에서 조기에 퇴직을 하고 하루 종일 따분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내자니 소일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비로소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찾으셨나 싶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자 예상 밖의 대답이 먼 공간을 건너왔다. T시에 사는 S선배 때문에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S선배가 어느 날 『SNS에 떠도는 수많은 문자나 영상 가운데 어떤 것은 고품격도 있더구먼. 누군가 세계적인 쇼나 자연 풍경을 다양하게 편집해 보내주는 것을 알아보니 실로 대단한 열정과 정성인 거야. 누가 그 수고료를 보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야 공짜로 쓰니까 고맙지 뭐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여 그 말을 듣고 자신도 생각을 수정하게 됐다는데, 선배 S 역시 누구보다도 공유와 퍼 나르기를 맹비난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나도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나 글이 아니면 친구들에게 보내지 않는다. 혹 어쩌다 신문이나 유튜브에 누군가에게 전달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내용이 나오면 캡처해서 보낼 때 한두 마디 내 의견을 붙여 내 체온과 입김이 느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P선배는 또 『친구들과 품위 있게 소통하고자 하는 게 뭐 없을까 고민 좀 해봤었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수준에 그거만큼 경제적이고 적절한 도구가 없더군. 내용이 좋건 나쁘건 클릭하는 순간, 그것은 온전히 내가 나를 인식하고 나를 찾는 순간인 것이야. 그리고 그 내용을 다시 보면서 나의 정서와 위치를 확인하게 되니 그게 바로 명상 아니겠어! 누군가의 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그와 함께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또 내가 보낸 것을 그가 클릭하는 순간, 역시 그가 나와 함께 하는 곧 우주적 공존의 순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좀 거창한 거 같아 쑥스럽네만, 한마디로 간편한 안부 전하기지. 바쁜 세상에 그거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 누가 조언을 하더군. 늙으면 삼가야 할 몇 가지 덕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젊은이들에게는 절대 <공유·퍼나르기>를 하지 말라」는 거야. 허허허.』 

라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는

『야, S가 요 며칠 새 카톡을 전혀 안 보내는데…… 전화도 안 받고 말이야, 혹시…』

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S선배로부터 문자나 일상적으로 보내오던 그 ‘퍼나르기’ 영상조차 받아보질 못했다. 전화도 없다니, S선배의 근황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코로나 걸린 거 아냐?』

P선배의 걱정 소리가 인정의 산을 넘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권혁수 시인
- 강원 춘천 출생
- 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 198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2002년 시 ‘미네르바’로 등단
- 서울문화재단 2009 젊은예술가지원 선정
- 2010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현대시인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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