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리즈 동양인 히어로의 등장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9.24 14:48 조회수 3,835 0 프린트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양조위)’는 끊임없는 침탈을 이어오던 중 신비한 마을 ‘탈로’를 찾기 위해 떠난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리(진법랍)’와 사랑에 빠진 웬우는 모든 야욕을 벗어던지고 리와 함께 아들과 딸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리는 죽음을 맞고 웬우는 분노에 차 다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들의 아들로 태어난 ‘샹치(시무 리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년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을 받으며 자라고 동생 ‘샤링(장멍)’은 여자라는 이유로 방치된 채 자란다. 소년이었던 샹치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라는 웬우의 명을 받아 집을 떠나게 되고, 그 길로 가출을 결심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션’으로 이름을 바꾼 후 미국에서 새 삶을 살아가던 샹치 앞에 다시 아버지의 부하들이 나타나며 영화는 흥미를 더해간다. 샹치는 아버지에 대항하기 위해 친구 ‘케이티(아콰피나)’와 함께 동생을 찾아 떠나고, 그 곳에서 다시 아버지와 마주한다. 어머니의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그들 앞에 생각지 못했던 진실이 펼쳐진다.
 
 
마블 속 동양인 히어로의 등장
마블 시리즈 중 주연급 아시안 히어로가 처음으로 등장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배우들을 비롯한 감독 및 주요 제작진들이 아시아계로 캐스팅되어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또한 인종차별적 묘사에 대한 비난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
기존 마블을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의 고질적 병폐인 ‘화이트워싱(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으로 대체 캐스팅하는 인종차별적 행태)’에 대한 비난은 지속되어왔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단순히 화이트워싱에 대한 문제는 피해갔을지 모르나 동양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이 담긴 스테레오타입은 여전하다. 영화 전반에서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수해오던 오리엔탈리즘이 눈에 띄게 드러나며 스토리와 연출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지적할 만한 부분이 상당하다.
 
 
대표적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볼 수 있는 것은 동양을 매우 신비로운 곳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또한 동양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비한 전설이 숨겨진 마을 ‘탈로’에 대한 묘사를 통해 백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무협 영화의 클리셰가 대거 등장하며 너무나도 뻔한 장면들이 지속된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어느 정도 화이트워싱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히 이를 탈피하지는 못했다. 동양인 빌런인 웬우의 거처는 중국 어딘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동양풍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웬우의 부하들의 거의 모두 백인 남성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웬우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주요 인물 격인 부하 또한 건장한 체격의 백인 남성이다. 대체 중국의 산골짜기에 위치해 마치 소림사를 연상시키는 곳에 어떻게, 왜 하필 백인 남성들이 동양 무술을 훈련받고 있는 것인지 관객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할리우드 영화이기에 동양인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주 언어가 영어로 지정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영화는 과한 영어 사용으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주요 인물들인 동양인들끼리의 영어 사용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하더라도 탈로에서의 전쟁 후 전사한 마을 사람들을 추모하는 장면에서조차도 추모식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에 관객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샹치 vs 웬우, 누가 주인공인가
대표적인 인종차별적 관습을 조금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로서의 한계가 보여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기존 마블 시리즈들보다 스펙타클한 면이 부족하기도 했으며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가족 중심적 스토리로 이전 시리즈들과는 결을 달리 했다.
 
 
또한 주인공 샹치보다는 아버지 웬우 캐릭터에 더욱 중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계속 주다보니 과연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웬우 역을 맡은 양조위가 다시금 대중들에게 조명을 받으며 큰 홍보 효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지닌 양조위인 만큼 전성기에서 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연기로 팬심을 이끌어냈다. 분명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그 동기가 이해되고 관객으로 하여금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마블시리즈의 또 한 번의 흥행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중국 무협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적인 요소가 섞인 영화이지만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다고 하기는 힘든 영화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던 영화지만 마블 시리즈라는 점이 관람 이유로 크게 작용하고 있기는 하다. 또한 마블 시리즈답게 통쾌한 액션을 선보이고 있어 킬링타임용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실망스러운 점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의 동양인 배우들의 대거 등장과 동양계 제작진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 있어 영화를 소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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