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⑥ 바퀴 달린 것의 역사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9.16 10:12 조회수 3,931 0 프린트
 
채린의 바퀴 달린 것의 역사
채린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으로 타본 바퀴 달린 것은 청소기였다. 당시의 청소기들은 몸체가 어린아이 몸만 했기에 서너 살 어린이었던 채린에게 완벽한 놀이기구였다. 청소기가 밖에 나와 있기만 하면 올라가 발로 밀면서 온 거실을 뒤집어놨었다. 그다음으로 채린이 타고 다닌 것은 한때 모든 집에 하나씩 있던 운동기구, 휠 슬라이더였다. 미취학 어린아이가 사용하기엔 꽤나 위험한 물건임에도 채린은 그걸 밀고, 타면서 방과 방 사이를 누볐다. 손잡이를 놓쳐 발가락을 찧기도 하고, 발을 잘못 디뎌 머리를 박으면서도 틈만 나면 올라탔다. 어느 순간 휠 슬라이더가 위험하다는 뉴스가 돌았고, 채린의 집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인라인스케이트
채린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모든 또래가 인라인스케이트와 휠리스를 타는 시기가 도래했다. 채린도 인라인스케이트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금세 커버리는 나이였기에 새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 받진 못하고 사촌 오빠가 신던 인라인스케이트를 물려받았다. 그 인라인스케이트가 너무너무너무 좋았던 채린은 엄청난 무게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타고 가고 싶어 했다(당시 몸무게의 10분의 1이 넘었던 것 같다).  당시 18층에 살던 채린은 학원을 가기 위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나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학원이었기에 오가는 길에 인라인을 타고,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벗어두면 되니 최고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에는 큰 차질이 생긴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인 것이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와 계단으로 내려갔으면 5분이면 내려갔을 것을. 채린은 기어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18층을 내려왔다. 30여 분이 걸려 내려오니 엘리베이터 점검은 끝나있었다. 그 무거운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난간에 기대 게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8살 채린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휠리스
채린은 모든 곳, 특히 학교에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 인라인을 타고 가는 건 암묵적인 금기였다. 하지만 휠리스에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그렇기에 채린은 휠리스를 타고 등굣길을 씽씽 달리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지만, 휠리스를 타다가 뒤로 넘어진 아이가 크게 다쳤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 채린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결국 채린은 22살이 되어서 휠리스를 샀다. 타지는 못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탈것이다.) 휠리스의 유행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채린은 길가에서 휠리스를 탄 사람을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안타까운 어린이 채린.

킥보드
휠리스와 함께 당시 유행의 쌍두마차이던 킥보드. 어린이가 여러 명인 집 현관 앞에는 어린이의 수만큼 킥보드가 있었다. 채린도 킥보드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힐리스보단 안전해 보였는지, 어디선가 얻어온 킥보드를 쟁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킥보드는 평범한 킥보드가 아니었다. 대체 누가 이런 방식의 킥보드를 만든 건지, 양쪽에 각각 오른발 왼발을 올리는 발판이 있고, 발판에 발을 모두 올려야 탈 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양 발판 사이 좁은 틈으로 땅을 박차거나 발판 바깥에서 땅을 박차야 하는 비효율적인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채린은 그 킥보드가 너무 싫었다. 결국 그 킥보드는 몇 달 타지 않고 다시 누군가의 집으로 넘어갔다. 아쉽게도 새로운 킥보드를 얻지는 못했다. (채린은 지금도 종종 인터넷 쇼핑몰에서 킥보드를 검색한다.)

에스보드
그다음은 에스보드였다. 채린은 에스보드로 동네를 휘어잡았다. 조금만 판판한 바닥이 나오면 앞뒤로 움직이며 현란하게 에스보드를 탔다. 키가 작고 왜소했던 채린에겐 또래 남자애들보다 빠르게 에스보드를 타는 기술이 있다는 사실이 큰 자랑거리였다. 에스보드를 잘 못 타는 남자애들을 놀리고, 그렇게 타는 게 아니라고 훈계하는 것은 채린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자전거
채린이 가장 오랫동안 탄 탈것은 자전거였다. 초등학교 때 작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유행하던 하이브리드 자전거(무엇과 무엇의 하이브리드 인지는 아직도 모른다.)까지 대여섯 대의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채린은 자전거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왜였을까? 자전거는 바이크와 비슷하게 키가 문제가 되었다. 예쁘고 마음에 드는 자전거들은 모두 안장이 높았기에 넘어지면 무조건 다쳤다. 채린은 넘어지기 싫었다. 자연스레 자전거에 쉽게 흥미를 잃었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보다는 자전거에 달린 벨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울릴 상황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바이크
채린은 이 외에도 수많은 바퀴 달린 것들에 성큼 올라탔다. 중학교 때엔 누군가 학교에 가져온 외발자전거를 타보려 했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 보드를 사기도 했다. (보드를 타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에 가는 아이러니.) 휠리스를 사고, 자동차를 타고, 롤러블레이드를 사고 싶어 하고, 롱보드  커스텀을 알아보고.

걷기가 싫었던 채린
채린은 왜 이렇게 많은 바퀴 달린 것을 탔을까. 채린은 걷는 것이 정말 싫었다. 채린에게 걷는 것은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성장기의 채린에게 산책이란 고문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멈추지 않는 생각에 배로 쉽게 피로해졌다. 그런 채린에게 걷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바퀴 달린 것에 집착했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17살이 되자마자 차를 샀을 거란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왜 그땐 오토바이를 탈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을까?)
 
 
직접 운전의 매력
지금의 채린도 별다를 건 없다. 바이크를 타게 된 계기는 대중교통이 싫어 서기도 했지만, 대중교통을 타는 동안 견뎌야 하는 생각의 폭풍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어느 쪽 문이 열리는지, 내릴 곳을 지나치진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한 산만한 채린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당최 대중교통을 타면서 주변의 정보를 적당히 차단하는 동시에 내려야 하는 순간과 대중교통 매너를 챙기는 기술은 늘지를 않았다. (지금은 그냥 포기했다.)

취미라기 보다는 생존전략 중 하나인 바이크
바이크를 타면서는 운전 외의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고, 그래서 바이크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바이크를 사랑하는 동시에 누군가 바이크가 취미 신가 봐요, 라고 말을 건네면 겉으론 부정하지 않지만 속으론 ‘취미..? 취미라기보단.. 생존 전략에 가깝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것도 아니어 보이는 바이크 하나만으로 일상에서 오는 잔잔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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