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여행기] 태국 모터싸이클 여행기 (1) : 태국의 국민 바이크 혼다 스쿠피

M스토리 입력 2021.09.16 10:09 조회수 4,227 0 프린트
 
틀어진 계획
2019년 봄, 나는 7월에 떠나는 여행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사실 그 여행은 혼자가 아닌 그룹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한참 함께 바이크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며 붙어 다니던 친구 2명과 함께 여느 때처럼 놀다가 히말라야에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인도 여행 경험이 있는 나와 친구 B는 다시 한번 인도를 가고 싶다는 생각에 눈빛이 진지해졌지만 친구 A는 확신이 없는 듯했다. 그러다 B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유튜브에 있는 인도 라다크 바이크 여행 영상을 틀었다. 영상을 보자마자 우리 세 명은 서로를 쳐다봤다.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눈빛으로 한마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다. 무조건 가야 한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도시 ‘레’였다. ‘마날리’에서 극악의 컨디션을 가진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레’에 도착하는데, 2016년도에 그 루트를 지프로 갔을 때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멀미를 처음 앓아보았다. 마날리에서 레까지는 000km로 거리도 상당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커브 길에 더해 가드레일이 없는 낭떠러지 길이 대부분이므로 약 30km/h 이하로 매우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물론 가로등도 없기 때문에 해가 떠 있을 때만 운전이 가능하다. 
 
 
바이크로는 하루 만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중간중간 마을에 들어가 숙소에서 하룻밤씩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뚜벅이 여행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프로는 약 18시간 정도 걸렸는데, 워낙 긴 로드 트립이다 보니 2-3번 정도 멈춰 게르 같은 천막으로 만들어진 휴게소에서 음식도 해결하고 티 타임도 가졌다. 분명 출발할 때는 선선한 가을 날씨였지만 휴게소에 도착하면 사방이 눈이다. 짐을 줄이기 위해 샌들 하나로 버티던 나는 지프에서 내려 눈이 녹은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까 봐 살금살금 걸어 화장실로 향하는데, 그러던 와중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지금 나는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오토바이를 타지? 와, 나는 진짜 죽어도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게 또렷이 기억난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극악무도한 코스를 오토바이로,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렌트 바이크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침 그 동네 렌트샵에 로얄엔필드의 듀얼 퍼포즈 바이크 히말라얀이 들어왔다고 했고, ‘히말라야를 히말라얀으로? 이건 진짜 인생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서운 것도 잊고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뿐만 아니라, 임도 길을 익히기 위해 여행 멤버들과 함께 감악산에 가서 임도 체험도 다녀왔다. 하지만 A의 바이크 사고와 B의 일정 때문에 여행은 무산되었고, 나는 원래 인도로 예정되어있었던 여행을 태국으로 바꿔 혼자 떠나기로 했다.
 
치앙마이 혼다 매장
한여름의 동남아 여행
동남아 여행은 보통 한국의 추위를 피해 한겨울에 떠나는데, 이번에는 여름에 가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으로 가야 했다. 선선한 날씨를 좋아해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들은 대부분 고산지대에 있다. 인도의 맥그로드간지, 베트남의 사파, 한국의 무주 등.. 그렇다면 태국은 역시 치앙마이다. 태국의 북쪽에 위치한 이 도시는 고도 310m로 앞서 이야기한 도시들에 비해는 낮은 고도지만 수도인 방콕에 비해 한결 시원한 날씨를 자랑한다.
 
스쿠피
여행의 시작
공항에서 나오자 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헬멧과 무릎보호대, 글러브가 든 배낭은 무거웠다. 한낮에 출발했지만 치앙마이에 도착하니 바깥은 어두컴컴해서 막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해진다.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면 되기는 하지만, 몇배나 차이나는 택시요금은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사치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최대한 많은 바이크를 타고 가는게 목표이기 때문에 바이크 렌탈 비용 확보를 위해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무사히 버스에 올라탔다. 30분쯤 갔을까? 외국인인 걸 금세 알아보고 목적지를 물어본 기사님이 ‘너 여기서 내리라’며 나를 부른 곳에서 내리니 커다란 야마하 모터사이클 매장이 나를 반기듯 서 있다. 반가워서 쇼윈도 너머를 잠시 흘낏대다 곧장 숙소로 들어왔다. 도미토리 룸이라 내 침대를 배정받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치앙마이 혼다 매장 입구
첫 바이크 렌트, 혼다의 스쿠피
다음 날 아침, 바이크를 빌리기 위해 근처 렌트샵을 돌며 가격을 확인했다. 첫날이라 스쿠터를 빌려 동네 구경이나 슬슬 다녀볼까 싶어 스쿠피 가격을 알아봤는데, 우연히도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렌트샵이 1일 100밧으로 가장 저렴했다. 흰색 구형 스쿠피를 대여하겠다고 하니, 여권을 맡기거나 보증금을 내는 것 중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여권을 내밀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바이크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한 장 가져오시더니 바이크의 스크래치가 난 곳을 확인하고 그림의 동일한 위치에 표시했다. 혹시 빼먹고 체크하지 못하신 흠집이 있을까 싶어 바이크 전면을 천천히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확인을 마치고 바이크를 구경한다. 시트 아래에는 넓은 수납공간이 있지만 풀 페이스 헬멧은 들어가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시트 아래에 우비를 넣고 밥을 먹으러 갈 나선다. 무작정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다 보니 노점상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스팟을 발견하곤 바로 앞에 보이는 노점 의자에 털썩 앉는다. 손님의 바이크인지, 일하시는 분의 바이크인지 앉은 자리 바로 코앞에 CRF250L이 주차되어있다. ‘바이크뷰네~’라며 자신에게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곤 똠얌꿍을 주문했다. 새콤하고 짭짤하고 달달한 똠얌꿍을 한입 떠먹으니 정말로 태국에 온 게 실감이 난다. 깨끗하게 똠얌꿍을 한 그릇 비우고, 치앙마이의 <북악 스카이웨이>라고 할 수 있는 도이수텝으로 라이딩을 가려 했으나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에, 도이수텝에는 가로등이 없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도이수텝 입구
치앙마이의 북악 스카이웨이, 도이수텝으로
다음 날 아침, 도이수텝으로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는 채비를 마쳤다. 도이수텝 입구에 다다르니 예쁜 올드 커브도 보이고, 라이딩하러 다녀오는 길인지 내려오는 닌자도 한대 보인다. 도로를 오르다 보면 자전거도 가끔 한 대씩 보인다. 도이수텝은 북악 스카이웨이보다 커브는 더 급하지만, 도로가 넓어서 달리기 어렵지는 않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차가 거의 없어서 설렁설렁 올라갈 수 있었다. 또, 태국은 한국과 비교해서 차들이 느리게 달리는 편이라 조급함 없이 페이스를 지키기가 쉬웠다. 

중턱쯤 도착하자 휴게소처럼 각종 음식점과 찻집들이 있어 타이티를 한잔 주문했다. 타이티는 연유가 들어간 밀크티로, 카페인도 당도 넉넉해서 아침에 몽롱한 정신을 깨기에는 딱 맞다. 슬슬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더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기로 한다. 올라올 때 보았던 도이수텝 입구 근처의 혼다 매장에 들러 구경을 한다. 19년도 당시에는 수입되지 않았던 아이보리색, 청록색, 주황색 커브를 홀린 듯 구경했다. 
 
CRF250이 주차된 노점상
태국은 스쿠터를 압도적으로 많이 타고, 그다음이 언더본이기 때문에 90%는 스쿠터와 언더본이었고, 그 외의 기종은 다양하지 않아서 커브 말고는 딱히 구경할 게 없었다. 커브를 타는 친구들이 생각나 괜찮은 파츠나 액세서리가 있으면 선물로 사갈까 싶었는데 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파츠 같은 건 없길래 혼다가 새겨진 힙쌕만 하나 사서 나온다. 시내로 돌아가니 벌써 바이크 반납 시간. 렌트샵으로 다시 돌아와 바이크를 반납했다.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가볍게 스쿠터로 한바퀴 돌았으니, 다음에 빌릴 기종은 도심에 최적화된 바이크를 선택하기로 한다. 
<태국 모터사이클 여행기 (2) 에서 이어집니다>
M스토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