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와 처서가 지났으니 절기상 가을이다. 가을은 이사의 계절이다. 이사하면 나의 다정한 선배 K가 생각난다. 선배는 평소에 “내 스위트홈은 언제......?” 하고 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었다. 그런 선배가 마침내 자기 아파트를 마련하고 퇴직하여 바리스타가 되더니 기어이 카페까지 차렸다는 소문이다. 반갑고 존경스러운 소문이 아닐 수 없다.
그 선배의 이사 비하인드스토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역시 당시의 회사 월급쟁이들이 그랬듯이 월세를 살다 전세로 옮겨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이 좋아 10년 만에 회사 주택조합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어 소원이 이루어지나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아파트가 명의만 자기 아파트지 실제로 자기 아파트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용인즉 대출이 많아 안방은 국민은행 안방이고 거실과 딸아이 방은 농협, 아들 방은 우리은행 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든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던가?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행복은 그 연속선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위로일 뿐이다”라고.
국가적 위기인 IMF라는 고금리폭탄을 맞아 은행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아주 작은 평수의 반전세로 이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선배는 다시 은행 소유가 아닌 온전한 자기 집 마련을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해야만 했다. 그의 아내 역시 절약에 절약, 아이들도 틈틈이 알바를 하여 스스로 학비를 벌었고,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타려고 고군분투하기를 10년. 그리고 지인의 조언에 따라 재개발지역의 낡은 빌라로 이주를 감행하여 견디기 10년,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어 평생숙원을 이루었다. 마침내 은행 빚을 모두 청산하고 온전히 내 스위트홈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여전히 나의 방 나의 공간이 없다고 푸념을 했다. 말인즉, 이젠 안방과 거실은 아내의 안방과 거실이요, 결혼한 딸아이의 방은 여전히 딸아이의 방이고 아들 방 역시 아들 방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안방 침대 한쪽은 내 자리려니 했지만, 그 역시 어느 날 딸아이가 손자를 낳느라 친정이라고 들어와 온통 자리를 차지하더니 침대마저 손자의 침대 겸 놀이터로 점령당해버렸다는 것이다.
선배는 자기 방, 자기 자리는 송곳 하나 거꾸로 꽂을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다고 울먹였다.
아파트를 마련하는데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한 게 누구인가? 자문해보았지만 선배는 자기가 어느 위치에 머물러야할지 늘 서성거린다고 했다.
심지어 그 영향 탓인지 가족 내에서 발언권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딸아이가 서열 1위, 아내가 2위, 아들이 3위 그리고 강아지가 4위라고 했다. 그럼 5위냐, 그것도 아니란다. 5위는 아내의 동창생들이라고 했다. 이유는 자기가 제시한 의견을 그들이 대부분 묵살해버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휴가철 여행지나 맛집을 정하고자 할 경우 100% 그랬다.
무위의 존재. 그게 어느 새 자신의 실존 캐릭터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선배는 하소연 하듯 중얼거리곤 했다.
“내 쉴 곳은 어디에......?”
그러던 선배가 정년을 맞아 노후를 대비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더니 퇴직금과 약간의 은행대출로 카페를 차렸다는 소문이다. 기어이 자기 자리,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박수를 보냈다. 축하 전화도 걸었다. 선배는 흔쾌히 내 축하전화를 받았고 기꺼워했다.
“놀러와. 커피 한잔 맛있게 내려줄 게.”
그러다 잠시 후, 선배의 다급한 음성이 먼 공간을 건너왔다.
“아, 집사람이 올 시간이다...... 그만 전화 끊자.”

권혁수 시인
- 강원 춘천 출생
- 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 198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2002년 시 ‘미네르바’로 등단
- 서울문화재단 2009 젊은예술가지원 선정
- 2010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현대시인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