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⑤ 치라's pick 각자 다른 목적으로 스쿠터에 오른 그들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8.27 14:01 조회수 4,942 0 프린트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바이크와는 다른, 생활감 있는 바이크
영화에 오토바이가 나온다고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반짝반짝한 은색 머플러가 여러 개 달린 클래식 바이크 혹은 원색의 스포츠바이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두 영화는 모두 그런 반짝반짝함과는 거리가 좀 먼, 길을 지나가다 흔히 볼 법한 스쿠터가 등장합니다.

장르도 분위기도 다르지만, 공통점을 가진 두 영화
일본 영화인 <불량공주 모모코>와 프랑스 영화인 <퍼스널 쇼퍼>는 각각의 국가가 가진 이미지만큼이나 다른 영화입니다. 장르부터 영상의 색감까지도 완전히 다르지만 주인공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바이크 안장 위에 오른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이번 화에서 언급하는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점은 이 캐릭터들이 바이크를 모는 모습에서 실생활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업을 위해서, 취미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태우러 간 모습까지도요.
 
 
#1 <불량공주 모모코> 모모코와 이치코 by 윤진
주인공은 로리타 패션을 즐겨 입는 공주님 스타일의 모모코다. 이 영화의 원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실제 도시인 이바라키 현 시모츠마 시의 이름을 따서 <시모츠마 이야기>이고, 영어 제목은 <카미카제 걸즈>이다. 

스토리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모모코의 공주님 스타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적 심심한 원제와 도대체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알 수 없는 자극적이기만 한 영어 제목에 비해 한국어 제목의 작명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모모코의 겉모습만 봐서는 바이크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많이 달린 로리타 드레스를 입고 바이크를 타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모모코 또한 자신의 패션 철학을 지키기 위해 바이크는 물론 자전거조차 탈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이치코는 폭주족이다. 언제나 바이크를 타고 나타나고, 바이크샵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다. 로리타로 대표되는 모모코와 폭주족으로 대표되는 이치코는 겉보기에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르지만, 둘은 결국 친구가 되다.
 
 
폭주족이란 존재는 굉장히 민폐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비주얼이 너무나도 좋은 것은 사실이다. 업쇼바를 말도 안 되게 올려놓는 커스텀이나 해괴해 보이기까지도 하는 카울은 웃기면서도 짜릿하다. 

내 맘대로 바이크를 타겠다는 강한 고집이 느껴져서일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다. 영화 속에서 “여자는 말이야.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울면 안 돼. 동정 받게 되니까. 울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어라. 그리고 울고 난 후에는 운만큼 강해져라.” 이런 대사가 나오는데 이 대사 또한 너무 말도 안 되고 직접적이라서 어이가 없고 웃기지만 그래서 너무 좋아지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모모코가 바이크를 타고 나타나 이치코를 구해준다. 그 바이크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인자해 보이지만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모모코의 할머니의 바이크로, 오랫동안 창고에 세워져 있었다. 몇 십년동안 방치되었을 그 바이크가 도대체 어떻게 시동이 켜진 건진 알 수 없지만 그 정도는 영화적 연출로 넘어가겠다.

처음으로 바이크를 타느라 하늘하늘한 로리타 원피스가 꼬질꼬질해진 채로 바이크에서 내려 씩씩대는 모모코의 모습은 짜릿함을 안겨준다. 절대로 바이크를 안 탈것 같은 모모코가 이치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코처럼 바이크를 타고 간다는 연출도 좋았다. 로리타와 바이크는 너무나 다른 성격의 두 가지지만 그것들이 만났을 때 보여주는 시너지들이 너무 좋다. 모모코와 이치코의 우정도 그렇다. 새롭고 짜릿하다. 내일은 나도 치렁치렁한 화려한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봐야겠다.
 
 
#2 <퍼스널 쇼퍼>의 모린 by 채린
이 영화는 단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보게 되었다. 크리스틴을 보기 위해서 극장에 가서 눈을 반짝이며 집중해서 봤다. 하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건 번쩍이는 드레스를 입은 크리스틴과 노란 가죽 장갑을 끼고 푸조 장고의 스쿠터를 타는 크리스틴의 모습뿐이다. 

사실 크리스틴이 연기하는 퍼스널쇼퍼의 주인공, 모린이 바이크를 타는 것이 영화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별로 중요한 설정도 아니다. 직업 특성상 이동이 많고, 그러니 당연하게 차를 타도 됐을 설정인데 왜 굳이 굳이(몇 천 만원 씩 하는 보석과 옷들을 들고 다니는데!) 바이크를 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이 크리스틴의 바이크 타는 모습을 담고 싶어서 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무튼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린이 바이크를 타는 덕분에 관객들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라이더의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제목 그대로 모린은 퍼스널 쇼퍼로서 클라이언트의 쇼핑을 대신 해주는 일을 하고 있고 덕분에 늘 짐이 많다. 쇼핑백을 잔뜩 들고 스쿠터를 운전하기 위해 쇼핑백을 다리 사이에 넣고, 또 어깨에 메고 운전을 하는 등의 모습이 나온다. 

바이크만 타면 이유 없이 많아지는 짐을 주체하느라 끙끙대며 다니는 내 모습과는 다르게 더 멋지고 쿨하지만, 바리바리 쇼핑백을 매고 다니는 모린의 모습에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헬멧을 손목에 걸고 걸어 다니는 모습,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장갑을 입으로 벗는 모습(실제로는 장갑이 무척 더러워서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만)까지!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왠지 길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만난다면 오토바이 이야기로 스몰 토크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많은 미디어에서는 오토바이 타는 여성을 날라리 여고생, 다방 레지(웩) 등등 왠지 불량하고 나쁜 이미지로 소비한다. 아무 개연성 없이 단지 성적 매력을 부각하기 위해 바이크를 타는 여성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은 생업을 유지하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바이크를 탄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헬멧을 멋지게 벗는 슬로모션 장면도, 기교를 부리며 운전하는 모습도 나오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마음에 박힌다.

헬멧을 안 쓰고 운전하는 영화적 허세를 부리지도, 장갑을 안 껴서 보는 사람 마음을 졸이게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장갑과 헬멧도 너무 익숙한 그것. 바이크도 그냥 평범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스쿠터인지라 더 현실적이다. 이런 현실적인 바이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여성 캐릭터를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한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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