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③ 치라의 pick [사랑은 콩다콩]의 노은이 엄마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7.28 10:00 조회수 4,716 0 프린트

 

 

# ‘쫑아는 사춘기’보다는 ‘사랑은 콩다콩’
‘쫑아는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대교방송에서 2004년도부터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이 애니메이션은 2010년, ‘사랑은 콩다콩’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투니버스에서 방영되었다. 구판과 신판 모두를 보며 자란 나는 (내용은 같다) 쫑이가 사춘기이든 사백춘기이던 어른들이 그렇게 이름 붙이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사랑은 콩다콩’이라는 이름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 바람의 친구, 어버이날 선물
일본에서는 1995년부터 방영된 이 애니메이션은 집마다 집 전화가 있는 것만 빼면 25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비슷한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오늘 소개할 편은 3기 6화의 <바람의 친구, 어버이날 선물> 편이다. 주인공인 노은이네 집은 초등학생인 노은이와 남동생,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사는 그야말로 정상 가족의 범주 한가운데 있는 가족이다. 노은이는 어버이날을 맞아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친구들과 얘기하며 하교를 하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노은이에게 달려와 동생이 어떤 오토바이에 의해 유괴되었다는 말을 전해준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은 분명히 폭주족이었다.”라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노은이는 불안한 마음으로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데, 윗집 아주머니조차 남동생이 어떤 남자가 모는 오토바이에 타고 있었다는 말을 전하며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냐는 말을 덧붙인다. 그렇게 노은이의 불안감이 커지는 동안 동생과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듯 집에 도착하고 동생은 오늘 오토바이를 타서 기분이 짱이라는 말을 던지며 노은이의 의아함은 커져만 간다.
 

# 폭주족의 정체와 엄마의 과거
사실은 이렇다. 동생을 태우고 간 라이더는 엄마의 친구인 주리 아줌마였다. 주리 아줌마는 노은이 엄마가 결혼하기 전 함께 바이크 투어를 했던 사이로, 노은이 엄마는 원래 라이더였다는 비밀을 밝히며 바이크를 타던 사진을 보여준다. 주리 아줌마는 애가 셋이지만 여전히 바이크를 탄다. 노은이 엄마는 결혼할 때 남편과 더 바이크를 타지 않기로 약속하고 바이크와 옷을 모두 처분했다. 

#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바이크 투어
주리 아줌마는 노은이 엄마에게 함께 투어를 가자며 몇 번이나 졸랐지만 노은이 엄마는 남편과 한 약속을 깰 수 없어 계속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노은이에게 들려준다. 그 얘기를 들으며 노은이는 엄마에게 ‘바이크 투어’를 어버이날 선물로 주겠다고 결심한다. 아빠와 한 약속 때문에 바이크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바이크를 타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 아빠에게 바이크 라이딩 사실을 ‘들킨’ 엄마
노은이의 계획을 알 리 없는 아빠는 오페라 티켓을 노은이에게 내밀며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에게 주라고 하지만, 노은이의 활약 덕분에 노은이 엄마는 오페라 대신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의 바이크 투어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빠에겐 오페라를 본 척했다. 노은이 엄마가 바이크 투어를 간 동안 낚시를 하러 간 노은이 아빠와 친구는 바이크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여자들만 있는 것 같은데?” “저런 여자들하고 결혼하면 아마 꽉 잡혀 살아야 할걸~”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중에 자기 아내가 있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노은이와 주변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노은이 엄마가 다시 바이크를 탔다는 사실을 노은이 아빠에게 들키게 되고 화가 난 아빠는 노은이 엄마와 말을 하지 않는다.

# 허락이 요구되는 여성들의 바이크 라이딩
너무나 뻔하고 있을법한 상황이지 않은가. 헬멧을 쓰고 바이크를 타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주리 아줌마를 ‘남자’라고 생각하거나 ‘폭주족’이라고 말한 노은이 친구들도, 바이크를 탄 사람이 친구였다고 하니 노은이 아빠 친구냐고 묻는 이웃집 아주머니에, 걱정된다는 이유로 바이크를 그만두게 만든 노은이 아빠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는 하이퍼리얼리즘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같은 내용으로 티비쇼 <안녕하세요> 같은 곳에 사연으로 나왔다면 바이크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 ‘남편’이고 바이크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여성’이며 ‘엄마’라는 사실을 대문짝 한 자막으로 몇 번이고 내보내고 놀란 패널들의 얼굴을 비치는 것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결말
노은이 엄마는 바이크 투어를 즐기고 직접 자가 정비도 하던 바이크 마니아였지만 바이크를 그만두라는 남편의 강요에 그렇겠노라고 약속하는 순종적인 아내상으로 그려진다. 또, 남편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즐긴 죄로 ‘죄송하다’라며 용서를 구한다. 노은이는 취미를 즐기며 “예뻐진” 엄마가 좋다며 아빠를 설득하고 그 말에 설득된 아빠는 ‘사고 안 나게 조심해야 해요~’라며 노은이 엄마에게 바이크 타는 것을 허락해 준다. 노은이 엄마는 허락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하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 불쾌한 상황을 풀어내는 이상한 방식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라며 노은이 아빠의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파트너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바이크를 그만둘 것을 강요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것뿐만 아니라 결국에 허락해 주게 된 계기도 ‘취미를 즐기는 엄마가 예뻐 보여서 좋다’는 노은이의 말인 것까지. 그래도 초반에 노은이의 친구가 헬멧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바이크를 운전하던 사람이 ‘험상궂게 생긴 젊은 남성’이었다고 얘기한 부분은 흥미로웠다. 얼굴이 완전히 가려져 있지만, 바이크를 탄다는 사실만으로 흔히들 라이더 하면 생각하는 외모, 나이, 젠더까지 머릿속에서 그려버린 것이 사실과 완전히 달랐다는 부분을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바이크를 다시 타는 것을 허락해 준 노은이 아빠를 착한 가부장으로 올려 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은 적잖은 찜찜함을 주었다.
 
 
# 아빠의 ‘관용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엄마의 라이딩 에피소드
노은이 아빠가 노은이 엄마의 라이딩을 허락해 주기는 했지만 ‘아내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언제든지 마음이 바뀐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후에 노은이 엄마가 바이크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 에피소드는 더 없었다. 사실 노은이 엄마가 바이크를 탔다는 사실은 단지 노은이 아빠를 포용력있고 이해심이 넓은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름을 가지지 못한 엄마
마지막으로 그 어떤 에피소드에서도 노은이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찾아본 등장인물 소개에는 나경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은이 아빠와는 달리 노은이 엄마의 캐릭터 명은 ‘노은이 엄마’였다. 1995년도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적어도 캐릭터에게 이름과 자기 결정권은 있길 바란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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