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처능력의 허를 찔리는 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났다. 집 앞 큰길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친구가 보낸 사연이 등장한다고 해서 주의 깊게 듣느라 주변 소리에 신경을 못 쓴 탓일까? 갑자기 내 옆으로 등장한 스쿠터 한 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스쿠터와의 거리는 운전자끼리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가까웠다. 운전자는 헬멧을 쓰지 않고 왁스를 번들번들 바른 머리를 드러내며 얼굴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네오프랜 마스크를 한 채로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운전자 뒤에는 스모크 쉴드의 검정 헬멧을 쓴 텐덤자가 있었다. 운전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안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분명히 그의 눈빛은 단순히 라이더를 만나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차 간 주행을 해서 도망쳤다. 그러자 뒤에서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왜 끈적한 눈빛으로 말을 건 건지. 내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즐거울 일인지.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과 바이크를 타고 만나 편의점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일전과 같이 긴 청치마에 리넨 셔츠를 입고, 머리는 두 갈래로 땋은 상태였다.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늦었었다. 문을 연 곳이 편의점뿐이었으니까. 다들 곧 집에 갈 요량으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다른 친구들은 먼저 집에 갔고, 나는 남은 한 명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친구가 바이크 위에 앉은 나를 멋지게 찍어준 뒤, 나는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바이크에서 내렸다. 두 걸음쯤 걸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거진 30분 전부터 편의점 앞에 스쿠터를 주차해두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먼저 집에 간 친구와 계속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그는 내게 갑자기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애쓰느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재차 자신이 말을 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여자분이 바이크 타시는 게 멋있어서요..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여전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내 노력을 어떤 메시지로 이해한 것인지 갑자기 말을 덧붙였다. “아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네.”라고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스쿠터로 되돌아갔다. 나에 대해서 그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 바이크를 탄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나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한 ‘여자분이 바이크 타시는 게 멋있다’는 것이 나름 칭찬이었을까?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끝없이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즐거운 하루를 당황과 공포로 마무리해야 했고, 친구는 나를 바래다줘야 했다. 그가 내 집까지 따라올까 봐.


가장 놀라운 일은 즐겁게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났다. 바이크의 알피엠이 낮아져 있어 킥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아 5분 정도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필 바이크를 세워둔 곳이 해가 쨍한 곳이라 그늘로 바이크를 옮기자마자 이날 클라이막스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내 시야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나 내게 눈빛 빔을 쏘아 댔으면.. 어깨가 쭈삣한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킥 시동을 걸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걸려야 하는 것은 시동인데, 말을 걸리고 있으니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나는 문화시민이니까 그의 말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졌다.
여러분이라면 그가 어떻게 말을 걸었을 것 같은가? ‘킥 시동은 이렇게 걸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돼!/여긴 위험하니 이쪽에서 해!/그 바이크는 얼만가?/바이크가 고장 난 건가? 내가 도와주겠다!’ 정도를 예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들은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차라리 전기 자전거를 타겠다…”
어미만 본다면 혼잣말이 아닐까? 말을 건 게 아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 말을 제대로 하기 전까지 ‘차라리…’, ‘자전거가….’ 라고 웅얼거리며 자전거를 탄 채로 나를 한 바퀴 빙 돌았기 때문에 소리 정도는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해야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본인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바이크를 버리고 전기자전거를 구매하러 떠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가 사실은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라서 ‘비비디바비디 부!’라고 외치면 내 바이크가 전기 자전거로 바뀌는 걸까? 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일본 어느 마을에 있는 시바 동상 정도로 느껴졌다.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저것 보라고 일행의 옆구리를 찌르고, 시바가 왜 저런 표정이냐는 등의 말을 듣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갑자기 길 가던 누군가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와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여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를 벗어나면 순식간에 시바 동상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구경하고 손가락질하고 선을 넘어 자기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겨버린다. 내가 킥 시동을 걸고 이동해 볼일을 보는 동안 위의 자전거를 탄 사람이 쫓아와 나를 기다렸다가 ‘사과’를 했다는 점은 적당히 생략하도록 하자.


[치맛바람라이더스 기획단 소개]


채린
채린은 어렸을때부터 모든 종류의 바퀴 달린 탈 것을 사랑했다. 아기 때 분유 먹기를 싫어했던 채린은 신기하게도 차에 타기만 하면 분유를 잘 먹었다고 한다. 아기 채린에게 어떻게든 분유를 먹이기 위해서는 매일 드라이브를 해야 했다. 지금은 바퀴 달린 모든 것 중에 바이크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언더본, 네이키드, 듀얼을 거쳐 현재는 에이프100과 사륜차를 탄다. 바이크를 타며 겪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윤진은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다.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곧 죽어도 라이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이더는 어쩐지 본인에게 과분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멀리 나갈 때는 꼭 바이크를 탄다. 이런 ‘삼보 이상 바이크’라는 철칙을 지키고 산지 꽤 오래됐지만 사실 바이크를 타는 행위 보다도 바이크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바이크 그만 타야겠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언제나 생각 뿐이다. 이런 시시각각 변하는 바이크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노노
노노는 걷기가 힘들어 바이크를 타는 생활 밀착형 라이더다. 라이프 스타일은 편안함과 쾌적함을 지향하지만 바이크만은 늘 예외로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여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한다. 혼다의 올드바이크 2대와 비교적 신차 1대를 소유하고있다. 자주 하는 말은 “시동 안 걸리면 어떡하지?”다. 바이크가 주는 공기처럼 은은한 즐거움과 그 안에서 마주하는 괴롭고 힘든 난관에 대해서 글로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