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② 도로 위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들에 대해

김은솜 기자 입력 2021.07.15 09:10 조회수 4,675 0 프린트
 
 
글쓴이 채린
치맛바람라이더스 약력
 
 
바이크를 탄 지 햇수로 5년째다. 기간이 조금 뻥튀기된 감이 있지만 5년의 세월 동안 한 가지 얻게 된 능력이 있다면, 그건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들이받아도, 내가 누군가를 들이받아도, 누군가 들이받고 받혀있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풀어갈 수 있다. 슬프지만 모두 이미 해본 일이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도로 위의 공포들(그루빙, 젖은 맨홀, 갑자기 사라지는 차선, 공격하듯 끼어드는 차들, 갑자기 꺼지는 시동 등)을 어르고 달래는 방법은 이미 숙지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대처 능력에 허점이 있었다. 최근 250cc에서 100cc 바이크로 기변하고서 나는 다시 공포를 다루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새 바이크를 등록하고 집에 데려온 다음 날, 나는 의기양양하게 킥 시동을 걸고 신이 나서 타고 나갔다. 일전이라면 높은 시트고에 허덕이느라 치마를 갈무리할 여유가 없어 입지 못 했던 긴 청치마를 입고, 리넨 셔츠에 긴 머리를 푼 채로 안장 위에 올랐다. 날씨가 맑아서 얇은 리넨 셔츠가 덥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대처능력의 허를 찔리는 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났다. 집 앞 큰길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친구가 보낸 사연이 등장한다고 해서 주의 깊게 듣느라 주변 소리에 신경을 못 쓴 탓일까? 갑자기 내 옆으로 등장한 스쿠터 한 대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스쿠터와의 거리는 운전자끼리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가까웠다. 운전자는 헬멧을 쓰지 않고 왁스를 번들번들 바른 머리를 드러내며 얼굴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네오프랜 마스크를 한 채로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운전자 뒤에는 스모크 쉴드의 검정 헬멧을 쓴 텐덤자가 있었다. 운전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안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분명히 그의 눈빛은 단순히 라이더를 만나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차 간 주행을 해서 도망쳤다. 그러자 뒤에서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왜 끈적한 눈빛으로 말을 건 건지. 내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즐거울 일인지.
 
 
 
하필 집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그 운전자와 텐덤자가 나를 쫓아오지 않을지 무서워 동네를 한 바퀴 돌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가 좌회전 차선으로 온 건 정말 단순히 나 때문이었던건지, 다행히 따라오지는 않았다. 갖고 싶던 바이크를 사고 나서 처음으로 신이 나서 타고 외출한 날에, 이런 일을 겪다니. 그리고 내가 선택한 대처법이 도망치는 것이었고 그게 웃음을 샀다니.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몇 시간 동안은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앞서 당일에 입었던 옷을 설명한 이유는 내가 치마를 입고, 긴 머리가 헬멧 밖으로 보였고, 체구가 작고, 바이크도 작았기 때문에 말을 걸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골프웨어를 입은 배 나온 50대 아저씨라면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과 바이크를 타고 만나 편의점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일전과 같이 긴 청치마에 리넨 셔츠를 입고, 머리는 두 갈래로 땋은 상태였다.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늦었었다. 문을 연 곳이 편의점뿐이었으니까. 다들 곧 집에 갈 요량으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다른 친구들은 먼저 집에 갔고, 나는 남은 한 명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친구가 바이크 위에 앉은 나를 멋지게 찍어준 뒤, 나는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바이크에서 내렸다. 두 걸음쯤 걸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거진 30분 전부터 편의점 앞에 스쿠터를 주차해두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먼저 집에 간 친구와 계속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그는 내게 갑자기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애쓰느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재차 자신이 말을 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여자분이 바이크 타시는 게 멋있어서요..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여전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내 노력을 어떤 메시지로 이해한 것인지 갑자기 말을 덧붙였다. “아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네.”라고 말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의 스쿠터로 되돌아갔다. 나에 대해서 그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 바이크를 탄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나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한 ‘여자분이 바이크 타시는 게 멋있다’는 것이 나름 칭찬이었을까?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끝없이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즐거운 하루를 당황과 공포로 마무리해야 했고, 친구는 나를 바래다줘야 했다. 그가 내 집까지 따라올까 봐.
 
 

 
일주일 정도 후, 새 바이크를 네 번째로 타고 나가는 날이었다. 이날은 청바지에 반 팔 티셔츠, 긴 팔 셔츠를 입고 머리는 푼 상태였다. 미용실 예약을 해둔 상태였기에 늦을까 봐 1차선 직진차로에서 적색 신호를 노려보던 중, 내 뒤에 있던 택시가 2차선인 우회전 차로로 오는 것을 눈치챘다. 혹시나 내 앞으로 무리해서 끼어들까 봐 경계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창문이 내려가더니 택시 운전기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ㅇㅇ에서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어?” 그는 내 번호판이 서울이 아닌 것을 보고 본인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정지선 바로 직전, 실선에서 차선변경을 한 것이다. 나는 그를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에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대단하다, 혼자왔냐는 등 말을 계속했다. 그는 호기심에 즐거워 보였으나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고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정지선을 넘어 내 앞으로 끼어들었고 초록 불로 바뀌자마자 직진해서 갈 길을 갔다. 고작 나한테 말 한 번 걸기 위해 교통법규를 두 개나 어기다니. 조금 웃겼다. 이어서 다른 사거리에서. 역시나 미용실 예약에 늦을까 봐 적색 신호를 노려보며 가장 빠른 길을 생각하던 중, 또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바이크도 125cc에요?” 대체 어디서 들려온 소린지 한 번에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말을 걸기 10초 전에 내 뒤로 배달 노동자의 바이크가 멈춘 것을 사이드 미러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더 무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약에 늦을까 봐 바쁜 마음을 가지고도 친절을 베풀 여유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요란하게 스로틀을 당겨 정지선을 넘어 나를 추월했다.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나를 추월해서 앞으로 가다니. 그것도 택시와 바이크, 두 번이나.
 
 
 
놀랍게도 내가 집에서 미용실까지 가는 데는 단 11분이 걸렸다. 그동안 2명에게 말을 걸리고 2명의 운전자와 1명의 보행자에게 구경을 당했다. 내가 엄청나게 특이한 바이크를 타고 있었냐고? 전혀 아니다.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래식 네이키드 바이크다. 

가장 놀라운 일은 즐겁게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났다. 바이크의 알피엠이 낮아져 있어 킥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아 5분 정도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필 바이크를 세워둔 곳이 해가 쨍한 곳이라 그늘로 바이크를 옮기자마자 이날 클라이막스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내 시야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나 내게 눈빛 빔을 쏘아 댔으면.. 어깨가 쭈삣한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킥 시동을 걸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걸려야 하는 것은 시동인데, 말을 걸리고 있으니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나는 문화시민이니까 그의 말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졌다.

여러분이라면 그가 어떻게 말을 걸었을 것 같은가? ‘킥 시동은 이렇게 걸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돼!/여긴 위험하니 이쪽에서 해!/그 바이크는 얼만가?/바이크가 고장 난 건가? 내가 도와주겠다!’ 정도를 예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들은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차라리 전기 자전거를 타겠다…”

어미만 본다면 혼잣말이 아닐까? 말을 건 게 아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 말을 제대로 하기 전까지 ‘차라리…’, ‘자전거가….’ 라고 웅얼거리며 자전거를 탄 채로 나를 한 바퀴 빙 돌았기 때문에 소리 정도는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해야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 걸까? 

내가 본인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바이크를 버리고 전기자전거를 구매하러 떠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그가 사실은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라서 ‘비비디바비디 부!’라고 외치면 내 바이크가 전기 자전거로 바뀌는 걸까? 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일본 어느 마을에 있는 시바 동상 정도로 느껴졌다.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저것 보라고 일행의 옆구리를 찌르고, 시바가 왜 저런 표정이냐는 등의 말을 듣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갑자기 길 가던 누군가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와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여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를 벗어나면 순식간에 시바 동상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구경하고 손가락질하고 선을 넘어 자기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겨버린다. 내가 킥 시동을 걸고 이동해 볼일을 보는 동안 위의 자전거를 탄 사람이 쫓아와 나를 기다렸다가 ‘사과’를 했다는 점은 적당히 생략하도록 하자.
 
 
 
바이크를 타고나서 생긴 가장 큰 공포는 여기서 오는 것이다. 나와 바이크가 각각 따로 존재할 때는 나는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바이크 위에 올라타는 순간 신기한 ‘대상’이 되어버린다. 바이크 위에 있으나, 옆에 있으나, 바이크 없이 있으나 똑같은 나인데 순식간에 나의 성질이 바뀐 것 마냥. 재미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일이 내가 250cc의 바이크를 타는 동안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경우의 9할은 바이크의 가격 문의, 바이크가 무섭진 않은지, 여자애가 대단하다 정도였다. (놀랍게도,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반바지를 입거나 치마를 입은 날에 유독 많이 말을 걸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라이더보다 도로 위에서 한 번쯤 말을 걸만한 여자애로, 고작 바이크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번호를 물어 볼만한 연애 대상으로, 바이크보단 전기 자전거가 어울리는 존재로 대해지고 있다. 위의 일들은 100cc의 바이크로 기변한지 2주 동안, 단 4번의 라이딩만에 일어났다. 이제 나는 새로 나타난 공포를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치맛바람라이더스 기획단 소개]
 
 

채린

채린은 어렸을때부터 모든 종류의 바퀴 달린 탈 것을 사랑했다. 아기 때 분유 먹기를 싫어했던 채린은 신기하게도 차에 타기만 하면 분유를 잘 먹었다고 한다. 아기 채린에게 어떻게든 분유를 먹이기 위해서는 매일 드라이브를 해야 했다. 지금은 바퀴 달린 모든 것 중에 바이크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언더본, 네이키드, 듀얼을 거쳐 현재는 에이프100과 사륜차를 탄다. 바이크를 타며 겪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윤진

윤진은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다.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곧 죽어도 라이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이더는 어쩐지 본인에게 과분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멀리 나갈 때는 꼭 바이크를 탄다. 이런 ‘삼보 이상 바이크’라는 철칙을 지키고 산지 꽤 오래됐지만 사실 바이크를 타는 행위 보다도 바이크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바이크 그만 타야겠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언제나 생각 뿐이다. 이런 시시각각 변하는 바이크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노노

노노는 걷기가 힘들어 바이크를 타는 생활 밀착형 라이더다. 라이프 스타일은 편안함과 쾌적함을 지향하지만 바이크만은 늘 예외로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여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한다. 혼다의 올드바이크 2대와 비교적 신차 1대를 소유하고있다. 자주 하는 말은 “시동 안 걸리면 어떡하지?”다. 바이크가 주는 공기처럼 은은한 즐거움과 그 안에서 마주하는 괴롭고 힘든 난관에 대해서 글로 남겨보려 한다.
김은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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