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자는 치마를 입고 바이크를 타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치마를 입고 바이크를 타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일까? 짧은 치마나 폭이 넓지 않은 치마는 피부가 노출된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반바지와 동일한 단점으로 치마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길고 폭이 넓은 치마는 옷감이 바이크에 끼어 사고가 날 수 있지만 그것은 비단 치마 뿐만이 아니라 긴 머플러나 코트처럼 옷감이 긴 의류라면 모두에 해당하는 일이다. 라이딩 전 주유 탱크와 신체 사이로 치맛자락을 단단히 고정한다면 치맛자락이 바이크에 말려들 확률은 아주 낮다.

사실 치마를 입고 바이크를 탔을 때 가장 흔한 위협은 안전사고가 아닌 주변의 반응이다. 당신은 라이딩 중 불법 촬영을 당할까 봐 두려운 적이 있는가? 불법 촬영된 사진이 바이크 커뮤니티에 게시되어 평가 받고 조롱 받아 괴로운 적이 있는가? 바이크 정차 중 바로 옆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것에 불쾌함과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정차 중 옆 차선 운전자가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괴로워한 적이 있는가? ‘치마 입고 라이딩하기’, 그리고 ‘여성 라이더로 특정 되기’의 리스크는 명확한 피해부터 미묘한 불쾌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존재한다. 위에서 나열한 불편한 상황들에 대해 토로할 때 혹자들은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그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당신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라이더이기 때문에 받는 당연한 관심의 증거라도 되는 양 이야기한다. “만약 ‘성적 객체화’라는 용어가 당신의 세계를 단지 보이는 대로 이해하게 하는 데 결정적이라면, 당신은 성적 객체화 [현상]을 보자마자 그것이 성적 객체화임을 알 것이다”라는 철학자 낸시 바우어의 말처럼, 당신의 세계에 ‘성적 객체화’라는 용어가 당신의 세계를 구성한다면 어떤 현상이 왜 여성 혐오이고 객체화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20년 8월, 류호정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출근했다가 적절치 않은 복장이라며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캐주얼한 옷차림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른 옷차림의 기준은 그것이 바지인지 치마인지로 나눌 필요가 없다. 류호정 의원이 국회에서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었을 때는 문제 되지 않았던 옷차림이 ‘분홍색 원피스’로 바뀌었을 때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치마를 여성성과 동일시하고, 바이크를 타거나 국회에서 일하는 것은 그러한 여성성을 드러내면 안 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사회는 치마를 올바르지 않은 옷으로 낙인 찍으면서, 여학생이나 승무원의 유니폼처럼 여성성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는 치마 입기를 강요한다. 치마를 입고 활동적인 일을 하면 속옷이 보이고, 속옷이 보이는 것은 여성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더우면 훌떡훌떡 윗옷을 벗는 남자애들과 달리, 여자애들은 가슴을 가리기 위해 브라를 입어야 했고, 브라가 비치지 않도록 민소매 티를 입어야 했다. 속옷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용도의 속옷을 입어야 하는 셈이다. 별 생각 없이 팬티만 입고 거실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성별은 대체로 같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치마는 여성에게 필수적이거나 부적절한 둘 중 하나로만 존재해왔다. 2020년 10월, 배우 봉태규 씨가 치마를 입고 드라마 제작발표회를 마친 뒤 SNS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너무 편했다. 진작이라도 입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라도 치마의 실용성을 알았으니 다행이다. 지금까지 바지라는 한정된 아이템만 입고 살아서인지, 치마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멋졌다. 어떤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개인에게 놀라울 만큼의 자극을 주고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더라” 치마는 이제 특정 젠더에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인 장치이다. 만들어진 ‘여성성’과 ‘남성성’을 깨고,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을 제지하고 평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유튜브에 영상 콘텐츠를 올리면 이런저런 피드백을 댓글로 받게 되는데, 그 중 ‘바이크와 페미니즘을 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대답할 가치가 높은 피드백은 아니지만 소개를 하는 김에 명확히 밝혀볼까 한다. 치맛바람라이더스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키워드는 바이크와 여성주의다. 지금 시대에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여성주의’나 ‘페미니즘’ 자체는 괜찮지만,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원래의 ‘좋은 페미니즘’이 아닌 남성을 혐오하는 ‘나쁜 페미니즘’을 한다는 이상한 비판을 받는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처럼 페미니즘은 남성이 허락하고 말고 할 범주의 일이 아니다.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기준은 당신의 기분이 아니다.

치맛바람라이더스는 자연스럽게 여성만을 위한 단체가 아닌 페미니스트에 의한, 페미니스트를 위한 행사와 콘텐츠를 만든다. 치맛바람라이더스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려면 여성이어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치맛바람라이더스가 주최하는 행사의 참가 기준은 젠더가 아니라 치맛바람라이더스의 약속문을 지킬 수 있느냐와 없느냐로 갈린다.
[치맛바람라이더스 기획단 소개]


채린은 어렸을때부터 모든 종류의 바퀴 달린 탈 것을 사랑했다. 아기 때 분유 먹기를 싫어했던 채린은 신기하게도 차에 타기만 하면 분유를 잘 먹었다고 한다. 아기 채린에게 어떻게든 분유를 먹이기 위해서는 매일 드라이브를 해야 했다. 지금은 바퀴 달린 모든 것 중에 바이크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언더본, 네이키드, 듀얼을 거쳐 현재는 에이프100과 사륜차를 탄다. 바이크를 타며 겪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윤진은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다. 4년이 다 되어가지만 곧 죽어도 라이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이더는 어쩐지 본인에게 과분한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멀리 나갈 때는 꼭 바이크를 탄다. 이런 ‘삼보 이상 바이크’라는 철칙을 지키고 산지 꽤 오래됐지만 사실 바이크를 타는 행위 보다도 바이크를 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바이크 그만 타야겠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언제나 생각 뿐이다. 이런 시시각각 변하는 바이크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노노는 걷기가 힘들어 바이크를 타는 생활 밀착형 라이더다. 라이프 스타일은 편안함과 쾌적함을 지향하지만 바이크만은 늘 예외로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여 스스로 힘든 길을 자처한다. 혼다의 올드바이크 2대와 비교적 신차 1대를 소유하고있다. 자주 하는 말은 “시동 안 걸리면 어떡하지?”다. 바이크가 주는 공기처럼 은은한 즐거움과 그 안에서 마주하는 괴롭고 힘든 난관에 대해서 글로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