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 여행기] 할리데이비슨 라이더가 바이크 권태기에 대처하는 방법

M스토리 입력 2024.01.31 15:07 조회수 3,876 0 프린트
 

이제 완전한 겨울이다. 올해 겨울은 눈도 제법 오고, 기온도 일찌감치 떨어져서 낮 최고기온이 영상인 날이라도 오전에는 도로 곳곳에 블랙아이스와 염화칼슘이 도사리고 있어 선뜻 오전에 라이딩을 나서기 부담스러운 날씨의 연속이다. 겨울이야 원래 그런 것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제는 라이더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한 연말연시에 바이크 시즌오프를 하면서 함께 찾아오는 ‘바이크 권태기’가 아닐까 싶다. 

2016년 봄에 바이크라이프를 시작한 나도 올해로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한지 만 8년이 된다. 물론, 중간에 한번의 기변이 있었지만 현재의 바이크인 로드글라이드 스페셜과 함께 한 지 벌써 7년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그 동안 두 대의 바이크로 누적 20만km를 넘게 달렸고, 그 사이에 신호대기 중에 정신줄 놓은 운전자가 핸드폰 하다가 슬금슬금 다가와 들이받은 간단한 접촉사고를 제외하고는 사고도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아마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이미 ‘바이크 권태기’를 겪고 있는 라이더들은 살짝 궁금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만km 정도를 돌아다니면 이미 바이크라는 물건으로 갈 수 있는 곳들은 거의 다 다닌 셈이라 어디를 가더라도 대개 ‘첫 방문’은 아닌 고인물이 되기 때문에 새로움이 반감되어 ‘바이크 권태기’가 찾아오기 딱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바이크 권태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앞으로의 바이크 라이프의 안전과 즐거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이크 권태기는 너무 많은 곳을 열심히 돌아다녀 더 이상 새롭게 갈 곳이 없는 경우에도 찾아오지만, 그 외에도 라이더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는 것을 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를 언급해보면 아래 정도가 떠오른다(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첫째, 바이크로 갈 수 있는 곳을 이미 거의 다녀서 새로운 곳이 없는 경우
둘째, 자신과 맞지 않는 바이크를 선택해서 애물단지가 되어 바이크에 흥미를 잃은 경우
셋째, 바이크의 고장이나 사고로 인해 라이딩에 대한 두려움과 흥미를 잃게 된 경우
넷째, 함께 라이딩하던 동료들과의 불화 또는 라이딩스타일의 차이로 흥미를 잃은 경우
다섯째, 그룹라이딩을 하기 애매했던 코로나 시기 솔투(혼자 가는 투어)를 도전하지 못해 바이크를 한 동안 타지 못해서 흥미를 잃은 경우

많은 바이크 동호회들이 대략 3년을 지켜보면 그 사이에 멤버들 사이에 몇 번의 분란이 생기고, 멤버들이 바뀌거나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분란의 뒤에는 다양한 이유와 사정들이 있겠지만 처음에는 서로 비슷한 실력과 관심사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서로 다른 실력과 관심사(가고 싶은 목적지나 식당)를 가지게 되면서 결국 이에 대한 아쉬움들이 그 분란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매너를 지키지 않고 이기적인 멤버들이 분란의 가장 문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동호회를 잘 만나는 것도 라이더에게는 참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동호회를 언급한 이유는 위에서 생각한 바이크 권태기의 이유 중 넷째와 다섯째가 대부분 동호회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호회의 규모와 무관하게 분란이 없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 ‘바이크를 접을 것이 아니라 라이딩 동료를 바꾸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안되는 라이더들도 은근 많더라. 이 부분은 참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나는 동호회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기에 기대가 적어서 실망도 적은 편이다. 라이딩의 성격에 따라서 서로 다른 그룹의 라이딩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어쩌면 답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대해서 실망하면 만사가 귀찮은 분들도 많기에 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더 나누기로 하고 요기서 줄인다.
 
 
바이크 권태기에 빠지는 데에는 라이더와 함께 ‘바이크’의 문제도 크다.  바이크를 잘못 선택하면 매우 신속하게 바이크 권태기가 찾아온다. 나를 바이크의 세계로 꼬신 친구녀석이 그랬다. 바이크라고는 학원의 250cc 바이크 밖에 못 타보고 냅다 BMW의 R1200RT(아시다피시 경찰바이크로도 이용되는 그 덩치다)를 호기롭게 샀다가 아파트 주차장의 경사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여섯번 경사로에 자빠뜨린 후에 바이크가 무서워져서 그대로 바이크 라이프를 마친 친구였다. 그 친구는 250cc 바이크와는 확연히 다른 무게, 시트고, 덩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가 아파트 단지 몇 바퀴 돌아보고 6개월만에 150km도 못 타보고 바이크를 처분했었다. 반면, 나는 초보라는 주제파악을 하고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을 선택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그 친구는 바이크를 팔고 스쿠버다이빙과 골프에 매진하며 다른 취미를 즐기고 있지만 나는 그래서 졸지에 라이딩버디(?)가 사라지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었다.  결국,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바이크를 선택’하고 ‘바이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선택하고 갈 수 있어야’ 바이크 권태기를 이겨낼 수 있다.  

세번째 이유인 바이크의 고장이나 사고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꼼꼼한 성격이면 상당부분의 고장은 줄일 수 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바이크라면 정비만 정석으로 하면 고장이 나질 않는다. 대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소모품 교환주기를 지키지 않거나, 경험이 적지만 저렴한 센터에서 정비를 받다가 정비부주의로 고장이 나는 경우, 바이크의 일상점검에 둔감해서 오일소모가 된 상태로 계속 주행하거나, 드라이브벨트/체인의 정비를 소홀히 한 경우 등 대부분은 라이더의 ‘관심부족’이 고장의 원인이다. 내 경험으로는 잔고장이 많다는 선입견이 있는 할리데이비슨의 바이크도 20만km를 넘게 타면서 한번도 황당한 경험은 없었고, 오히려 놀라운 내구성에 감탄하고 있다. 세차만 열심히 해서는 바이크의 성능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정비에 대한 라이더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첫째 요인인 ‘바이크로 안 가본 곳이 없어서’ 권태기에 빠지는 경우다. 

내 경험으로는 바이크는 자동차와 달라서 다녀 온 목적지만이 아니라 다녀오는 그 ‘여정’까지 경험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같은 곳을 다녀도 각각 다른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 이야기다. 춘천을 수백 번, 속초/강릉 역시 수백 번을 다니고 나면 어떤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건망증이 심한 나의 경우는 매번 새롭기는 하다(좋은건가?). 아무튼, 같은 코스를 몇 백 번 다니면 그 경로는 재미가 없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바이크로 ‘못 가본 곳’을 가면 되는데 그러려면 한 번 정도의 추가적인 기변은 필수가 된다. 몇 년 전에 할리데이비슨에서도 듀얼퍼포스(온/오프로드를 탈 수 있는) 바이크인 팬아메리카를 출시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미 할리데이비슨의 기존고객들이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같은 곳만 다니는 것이 지겨워질 무렵 ‘그동안 못 가본 새로운 코스’를 갈 수 있는 바이크를 출시한 것인데, 이건 내 경험으로도 그동안 승용차량만 타다가 작년에 포드 브롱코라는 오프로더를 사서 타보니 바이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목적지를 가도 살짝살짝 옆길로 새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오는 것이 은근 새롭더라. 

다행히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는 완전 온로드 투어링 바이크라 듀얼퍼포스 바이크를 기변/기추했을 때 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오롯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한대 더 사고 싶다는 말이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웅장한’ 바이크를 멋있다고 고르면 앞에서 언급한 내 친구의 결말을 피하기 어렵기에 고민 중이다.
 
아무튼, 라이더에게 바이크 권태기는 ‘기변병’과 함께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신년에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바이크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경험’들을 즐겁게 쌓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소망한다. 바이크 권태기는 안녕이다.             
by.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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