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아버지 사표

M스토리 입력 2022.07.01 13:38 조회수 2,985 0 프린트

며칠 전에 아들에게 포도밭을 가져가라고 했네. 농사짓기 힘들어서.

“아무렴, 건강을 생각해야지. 그래 얼마나 넘겨주려고?”

“3000평. 그런데. 아들놈이 싫다는 게야.”

“아니 왜? 거기 땅값이 요즘 장난이 아니게 올랐는데.”

“그래 좀 올랐지. 그런데, 땅값 오른 만큼 증여세도 올랐다는 게야. 녀석이 증여세도 함께 내주면 받겠다지 뭔가. 허허허…… 나 죽으면 알아서 상속하겠지.”

전철 옆자리에 앉은 농부들의 대화 한 토막이다.

그들은 고등학교동창 사이로 오랜만에 만나 등산을 가는 길인 것 같았다. ‘포도밭, 3천 평, 증여세, 상속........’ 낯선 낱말이 내 귀를 잡아당겼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 그만 전철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전철에서 내리면서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상속해야 하나!’ 싶었다.

불교 선종의 큰스님들은 수제자에게 깨달음과 함께 의발(낡은 옷과 밥그릇)을 전했다고 한다. 무당도 자신이 쓰던 무구(굿 도구)를 내림굿을 통해 신딸에게 승계하였고, 궁중의 내시들 역시 건강한 사내아이를 양자로 들여 집과 재물을 상속해주고 가문을 이었다고 한다.

몇 해 전인가, 지인 S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잔했던 적이 있었는데, S는 아버지가 서울의 요지에 5층짜리 빌딩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뒤늦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눈물 어린 소주잔을 기울이던 기억이 삼삼하다.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 하여 아무리 빈 호주머니를 뒤집어 살펴봐도 무엇 하나 굴러 떨어지는 게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던가! 이웃사촌인 동창 누구는 아들에게 성공한 사업을 물려주었다거나 가업인 콩나물 공장과 건어물가게를 물려주었다는 등의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은근히 속이 쓰리고 허전하다. 생계형 월급쟁이라 나로선 물려줄 사업도 없고 가게도 없고 그렇다고 인문학자도 아니다보니 정신적으로 뭔가 특별히 안겨줄만한 감동적인 철학조차 없는 처지이기에 그랬다.

하여 하루는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이제 할 일 다 했고 물려줄 재산이나 능력도 없으니 <아버지 사표>를 받아달라고 넌지시 요청했다. 그러자 아들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잖느냐, 그 ‘아파트 지키미’ 역할이 아직 남아있어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아직 역할이 남아있다니 다행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아파트는 우리 부부의 평생 성과물이라 그 아파트 지키미 역시 나만의 역할이 아니라 우리 부부 공동의 역할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부부의 노후생활의 최소한의 밑천인 것이다. 아들에게 넘겨주기에는 적당치 않은 종목이 아닐 수 없다.

하여 하루는 전철에서 만난 농부들처럼 아파트 인근 야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더 좋은 발상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곤궁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아내가 동행을 하자고 따라나선다. 절약하고 또 절약하여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데 주역이었던 장한 아내.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함께 생각하고 묘수를 찾아보자고, 그리고 죽는 날까지 함께 건강하자고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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