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기억을 기억하기

M스토리 입력 2022.06.16 15:26 조회수 2,674 0 프린트
 
 
권혁수 시인
언젠가, 어느 종교모임의 선배가 핸드폰으로 찍은 행사사진을 인터넷 카페로 옮기는 과정을 내게 물어왔다. 늘 아들에게 물어서 해결하곤 했는데, 번번이 핀잔을 듣다못해 오늘은 내게 묻는다며 푸념을 했다.

“녀석이 나보고 치매검사를 해보라는 거야. 허허 컴퓨터가 뭔지 모르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행복하시지!”

한때 건강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황수관 교수의 TV강의 중에 ‘까치이야기’가 있다.
83세의 아버지와 53세의 아들이 거실 소파에 앉아있을 때 창밖에서 까치가 울었다고 한다. 늙은 아버지가

“저 소리가 무슨 소리냐?”

라고 3번이나 물었는데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자 아들이

“금방 까치라 했잖아요.”

라고 화를 내며 대꾸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늙은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33살 때 쓴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아들과 마루에 마주앉아있는데 창가에 까치가 날아와 울었다. 아들이 저게 뭐에요? 라고 묻는다. 나는 까치라고 알려주었다. 아들이 또 묻는다. 나는 또 까치라고 대답해주었다. 아들은 그렇게 23번을 물어왔다. 하지만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즐거운지 몰랐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말을 익히기까지 3천 번을 반복해 말을 하고, 땅을 짚고 일어나 걷기까지 1만 번을 넘어졌다 일어난다고 한다.

연습하면 완벽해진다(practice makes perfect)라는 서양 격언이 있고,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뜻을 알게 된다는 동양의 학이시습(學而時習)이란 사자성어도 있다.

현대는 IT(Information Tech nology)와 AI(인공지능)시대다. 새로워지는 컴퓨터 용어를 모르면 젊은 세대와의 대화는 고사하고 여행이나 물품구매 등 각종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하여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과거의 ‘문맹’이란 말처럼 ‘컴맹’이란 말을 듣게 된다. 한때는 부유한 가정,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몸과 마음을 시달린 시대적 역군(役軍)이었던 기성세대에게 또 하나의 가혹하고 지난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늙으면 애가 된다’는 속담도 있다던가, 견강부회(牽强附會)인지 모르겠지만 비록 늙어 기억력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말을 배우고 걷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 이제 또다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시대적 생존법이랄까. 하루가 달리 새로워지는 시대를 사람답게 살아야하겠기에.

지금은 작고하신 동네 죽마고우네 아버지는 생전에 그러셨다.

“세월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 간 것 같다.”라고.

그 어르신은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 4.19와 5.16, 월남파병, 해외 건설 붐 등 숱한 격동기를 한 마디로 ‘눈 깜빡할 사이’라는 말로 귀결시키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말은 ‘너도 이제 곧 나처럼 허무를 성찰하게 될 것이니. 명심하여 미리 인생을 잘 살펴라!’ 라는 말씀인 것만 같다.

IT, AI시대에는 의술도 발전해서 눈 깜빡 사이에 100살 아니 120살까지 살아야 한다. 그 세월동안 매사를 기억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치매환자나 컴맹이란 핀잔을 들어야 한다.

하여 아들이 오늘 가르쳐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메모하여 수시로 반복 기억해야 하고 또 그 메모한 것과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맑게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
나는 우선 오늘부터 그 죽마고우네 아버지 말씀처럼 ‘눈 깜빡할 사이,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명상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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