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여행기] 꽃송이가 벚꽃송이가 날리는, 전남 구례 여행기

M스토리 입력 2022.04.29 15:55 조회수 2,937 0 프린트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바이크.

3월이 되면 벚꽃 개화시기에 대한 뉴스가 올라온다. 최남단 서귀포를 시작으로 북쪽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벚꽃전선을 상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벚꽃이 필 정도로 따뜻해졌다는 건, 라이더들에게도 청신호이다. 염화칼슘으로 미끌미끌했던 도로가 여러차례의 봄비에 드디어 씻겨 지나가서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아낸 피부마냥 보들해진다. 추위에 딱딱해졌던 타이어도 풀리고, 높은 기온에 옷차림도 가볍다. 길가에 피어있는 벚꽃은 마치 시즌온을 축하하는 꽃다발같기도 하다. 사륜차와 상용바이크만 보이던 도로도 갖가지 장르의 바이크가 눈에 띄어 여러 의미로 눈이 즐거워진다.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를 마치고 격리해제가 되자마자 마스크를 단디 쓴 뒤 동네 산책을 나섰다. 서울은 아직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던데, 벌써 벚꽃이 피었다. 지긋지긋하다고는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구나’ 하는 그 노래가 자동재생된다. 

벚꽃은 어딜가도 예쁘지만, 시즌온을 자축하는 기념으로 벚꽃바리를 떠나기로 했다. 가장 벚꽃이 활짝 피었을때를 기다리다가 3월의 마지막 날, 다음날 비소식이 있다길래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구례로 꽃구경을 가기로 했다. 오늘 투어는 오봉산 벚꽃길을 지나 사성암에 갔다가, 구례 읍내에서 차 한잔을 한 뒤 순천으로 복귀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순천을 벗어나기도 전에 후회가 밀려왔다. 날씨가 풀렸다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출발했는데, 쌀쌀한 공기와 흐린 날씨덕에 한기가 밀려왔다. 꽃이 피었다고 방심한 터였다. 추위에 떨면서 구례에 가까워질수록 분홍빛이 점점 짙어졌다. 양 옆에 벚꽃나무가 심어진 국도를 달릴때는 황홀한 기분에 웃음이 자꾸 났다. 갓길에 차들이 몇대 대어져 있길래 나도 갓길에 잠시 바이크를 대고 꽃구경을 했다. 
전남 구례군 오봉산 벚꽃길.

다시 스로틀을 당겨 아담한 왕복 2차선의 오봉산 벚꽃길로 진입했다. 도로 끝까지 빼곡한 벚꽃은 예상대로 아름다웠다. 아무리 흐리고 찌뿌둥한 날씨더라도 벚꽃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였다. 벚꽃이 가장 활짝 필 때란 언제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가장 활짝 핀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벚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봉산 벚꽃길에는 주말에 벚꽃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많을것을 대비해 주말 이틀동안은 편도 도로로 이용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날씨운은 나빳지만 인파를 피할 수 있는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사성암으로 진입하는 도로 초입에는 주차자리가 협소하니 셔틀버스 이용을 권유하는 피켓을 보았다. 바이크 한대 댈 자리는 있겠지 싶어 무작정 올라갔는데 도로에 대한 사전 조사가 없었던 더라 크게 당황했다. 가는길 내내 도로의 경사가 심한데다가 구불구불한 코너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황했던것도 잠시, 입구에 도착할때 쯤에는 코너길이 재미있게 느껴저서 벌써 도착한 게 아쉬울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한번 찾아온 시련의 주인공은 주차였다. 평지가 하나도 없어서 주차장조차 경사가 심했다. 주차를 어떻게 해도 바이크가 조금씩 움직였다. 기어를 넣어도 쓰러질것같은 바이크때문에 주차장에서 돌 하나를 찾아 뒷바퀴에 괴어놓으니 다행히도 안정적으로 주차되었다. 10분간의 주차를 마치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자전거 동호회에서 나오셨는지, 자전거 무리가 보였다. 저분들은 얼마나 강인한 인간이면 북악스카이웨이보다 더 심한 경사로를 자전거로 올라오셨을까? 경외감이 들었다.
 
사성암
바위 사이에 박혀 있는 사성암은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싶을정도로 아름다웠다. 웅장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은 아담한 크기의 암자인데도 자꾸만 눈이 가는 신비스러움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사성암을 감상하다가, 종무소에서 공양용 쌀과 소원등, 소원지등을 판매하는걸 보았다. 그러고보니 바이크를 타고 올라올 때 본 연등에 소원지가 달려있기도 하고, 소원을 적은 기왓장이 쌓여있는것을 본 것이 떠올랐다. 종교는 없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소원 하나를 빌고 가야겠다 싶어 5000원을 내고 소원지를 한 장 구입했다. 
라이더의 안전을 기원한 소원지

라이더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내용을 적기로 결심하고, 반짝이는 소원지에 ‘모든 라이더들이 매일 안전한 라이딩, 무사 복귀 하길!’이라고 적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소원바위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하산하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미리 알아둔 읍내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나기의 방
그런데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나기의 방>이라는 가게가 왠지 신경쓰여서 잠시 멈추었다. <나기의 방>은 이제는 아이들의 취미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취미에 가까워진 귀여운 피규어부터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소품샵이었다. 집에서 차를 마실 때 함께해줄것만 같은 차 마시는 고양이 피규어를 하나 산 뒤, 카페 <오늘의 선물>에 도착했다. 좋은 재료로 만든 디저트와 각종 음료를 파는 이곳은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작은 카페이다. 구례에 들른다면 이곳에서 차 한잔 하며 라이딩에 지친 몸을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카페 오늘의 선물

     by. 유선
M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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