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센터에 주문한 윙크윙커도 교체해야 하고, 1년 넘게 미뤄온 세차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60km/h 이상의 속도가 그리웠다. 늘 다니는 길은 신호 5개 정도를 직진으로 지나서 터널로 들어가는 코스인데, 에이프로는 신호에 걸리지 않고 쭉 직진할 수 있는 그 길을 자이로로 가면 첫 번째 신호가 초록불이 되자마자 정지선 맨 앞에서 출발해도 두어 번은 멈춰야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한 발은 전동 킥보드에 올리고,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심호흡을 하고 클러치를 단단히 잡고 내려가는데, 나를 쳐다보던 그 사람(이하 주민 1)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주민 1] : 그거 배터리 없어요!
[노노] : (속마음: 어쩌라는 거지?) 네? 알아요.
[주민 1] : 그거 킥으로 시동 걸어야 돼요.
[노노] : (속마음: 킥으로 걸 수 있는데 밀어 걸기를 할까요?) 네 알아요! 제 바이크인데 그 정도는 알지 않을까요?
[주민 1] : 제가 그 모델 3번 분해해봤어요!
[노노] : (속마음: 그렇구나 그런데요?) 네 알겠습니다.
나의 마지막 대답을 듣고 주민 1은 첨언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고, 나는 대화하느라 실패해버린 2번째 밀어 걸기와 그의 의미 없는 정보 전달에 짜증이 났다. 내가 도움을 주고 싶을 때, 도움을 주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두 번째,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인류 보편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가버리면 어쩌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에이프가 배터리가 없는 바이크는 것도, 킥으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그 사람이 에이프를 3번 분해해 봤다는 것 전부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주민 1은 정말로 그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만약 내가 점프 스타터로 시동을 걸려고 했다면 배터리 없다는 말이 정보가 도움이 될 테고, 셀 버튼을 찾고 있었다면 (그냥은 알아채기 힘드니까 “셀 버튼이 어디 있지? 정말이지 못 찾겠네”라고 크게 외쳐야겠지) 킥으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정보다 도움이 될 테고, 비행기에서 의사를 찾듯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여기 에이프 3번 분해해보신 분 계십니까?”라고 외쳤다면 “제가 에이프를 3번 분해해본 사람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기뻐하며 분해할 에이프를 갖다 바치겠지만, 나는 그저 밀어 걸기를 시도하고 있었을 뿐이지 않는가.
이 이후 나는 SOS를 청하기로 했다. 지난달 지역의 바이크 카톡 방 멤버들과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에이프 얘기를 했었는데, 시동이 정 걸리지 않으면 SOS를 치라는 말을 기억한 터였다. 카톡으로 혹시 와주실 분이 있는지 여쭙자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며 세 분이 오셔서 돌아가며 몇 번 킥을 차 보시다가, ‘아, 초크가 열려있었네요’라는 한마디에 시시하게 해결되었다. 시동이 걸린 것을 자축할 겸 에이프로 세차 바리를 떠났다. 집 근처에도 셀프 세차장은 많지만 코에 바람도 넣을 겸 옆 도시까지 다녀왔다. 오랜만의 세차라 꼼꼼하게 때를 벗기고, 흠집이 있는 부분은 챙겨간 컴파운드로 반짝반짝 광까지 냈다.
다음날, 깨끗해진 에이프를 타고 집을 나설 생각에 설렌 나는 창밖을 보고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파주의보와 함께 눈이 펑펑 내렸던 것이다.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