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베트남 여행기 -3-, 숨은 진주와 모험 그 사이… 판랑탑짬

M스토리 입력 2022.12.01 08:14 조회수 2,979 0 프린트
베트남 여행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래서 이번 베트남 여행은 첫 목적지인 달랏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달랏에 열흘 정도 있으니 슬슬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도로 몇몇 도시들을 추려보기 시작했다
 
달랏에서 만난 멋진 커브
한 달짜리 비자를 신청했기 때문에 아직 스무날정도 더 베트남에 머물 수 있었다. 미리 예매해둔 한국행 비행기는 하노이 출발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노이가 있는 북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하노이 가까이 이동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들어 달랏에서 멀지 않고, 북쪽이고, 바다가 있는 도시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지도에서 판랑탑짬이라는 낯선 이름의 도시가 눈에 띄었는데, 관광할 거리가 있긴 하지만 관광객이 많은 곳은 아닌듯 했다. 닌투언성의 도시인 판랑탑짬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군 공군 기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며, 바다를 접해있다는 정보만 보고는 마음이 끌려 무턱대고 판랑탑짬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목적지는 정했으나 문제는 가는 방법이었다. 달랏에서 판랑탑짬까지 지도상으로는 거리가 가깝고, 달랏과 탑짬 모두 기차역이 있으니 기차를 타고 가면 쉽고 가까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아니, 전부 틀렸다고 해야 할까? 달랏과 판랑탑짬을 잇는 달랏-탑짬선은 약 30년에 걸쳐 건설되어 1930년도에 완공되었지만 베트남 전쟁 중에 파괴되었고 1968년에 정규 운행이 끝났다. 달랏에서 판랑탑짬까지 이어지는 길이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철도를 지그재그로 건설해야 했는데, 그러한 경험이 있는 스웨덴 엔지니어들이 고용되어 이 노선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2002년, 베트남 정부는 달랏-탑짬선 재건을 우선순위로 올렸지만, 아직 달랏에서 판랑탑짬을 오가는 기차는 없고, 달랏에 있는 달랏 기차역은 실제로 운영하는 기차역이 아닌 관광용에 가깝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달랏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시간표를 찾을 수 없는지 의아해했다.

기차로 갈 수 없다면 버스로 가야 할 텐데 버스 시간표는 더는 운행하지 않는 기차 시간표만큼이나 찾기 어려웠다. 숙소 주인에게 혹시 판랑탑짬에 대해 아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관광으로 판랑탑짬에 다녀온 적이 있고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는 답을 들었다. 전화로 버스 예약을 할 수 있는데 베트남어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신 버스를 예약해준다는 그의 친절 덕분에 수월하게 다음날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다.

다음날, 예약한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숙소 주인인 존이 픽업 차량이 도착했다며 픽업 포인트까지 데려다주었다. 작은 봉고를 타고 약 10분 정도 달리며 시내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을 싣고 작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봉고차에 타고 나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봉고차에서 내린 뒤 작은 버스 터미널 구석 테이블로 가서 예약한 이름과 버스비를 냈다. 존이 알려준 가격보다 2천 원 정도 비싼 가격을 얘기해서 항의했더니 외국인은 보험이 다르기 때문에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에 지장이 갈 정도의 금액이 아닌 이상 기분을 망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로컬보다 2천 원 더 비싼 약 8천 원의 금액을 내고 버스표를 받았다. 버스에 타기 전 실리기를 기다리는 화물들이 가득 늘어져 있었고 물건을 모두 싣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버스표에 적혀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쌓인 화물

 전화로 예약할 때 요청한 대로 창가 자리였고, 공항버스처럼 깨끗하고 레그룸도 넓어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판랑에 도착해서 예약했던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판랑탑짬에서 머물렀던 숙소
숙소의 주인인 민덕을 만나 알게 된 사실은 1. 존이 예약해준 버스는 외국인이 흔히 탈 수 있는 버스가 아니고, 덕분에 돈을 많이 아꼈다는 것 2. 판랑은 버스도 많이 없고, 택시도 적어서 비싸다는 것 3. 외국인 관광객이 적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한 스태프가 있는 숙소는 내가 예약한 숙소가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낯선 이름에서부터 모험의 냄새를 맡았지만 이렇게나 여행이 쉽지 않은 동네라니, 여기까지 이렇게 쉽게 도착한 것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민덕은 택시를 이용한다면 판랑 안에서 어딜 가든지 7-8천 원의 금액을 내야 한다는 민덕의 말에 우선 이륜차를 빌리기로 했다. 바이크 빌릴만한 곳을 민덕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민덕은 그새 자취를 감추어서 영어를 하지 못하는 숙소 스태프에게 구글 번역기로 이륜차를 빌리고 싶다고 적어 보여주니 나를 본인의 바이크 뒤에 태우고 렌트 샵까지 데려다주었다.  

 
판랑탑짬의 이륜차 렌트 샵
이륜차 렌트 샵에서조차 영어로 소통이 어려웠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나는 그냥 한국어로 ‘이거, 얼마에요?’ 물었고 주인은 계산기를 보여 주었다. 하루에 한화로 5,000원이면 비싸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보통의 가격.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빌리겠다는 의사를 보이니 능숙하게 이륜차를 빼서 키를 건네주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고 하니 손을 젓길래 나중에 정산하라는 건가 보다,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인 뒤 바이크 키를 건네받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륜차를 빌렸을 뿐인데 벌써 해가 지고 배가 고파와서 저녁을 먹기 위해 바이크를 타고 음식점을 찾아 헤맸다. 음식점은 보이지 않고 노점이 하나 있길래 자리에 앉아 메뉴판이 있냐는 질문을 영어로 하니 역시 통할 리가 없다. 옆 테이블에 가족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원.’하니 ‘오케이.’하는 답이 돌아오고 약 10분 뒤, 해물이 들어있는 반쎄오가 나왔다.

 
베트남식 전, 반쎄오
반쎄오는 베트남식 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속에는 새우와 오징어가 든 반쎄오는 겉을 튀기듯이 구워서 바삭함이 튀김 수준이었다. 바삭하고 기름진 반쎄오 속에는 아삭하고 달큰한 생숙주가 들어가 있는데 그 조화가 끝내줬다. 달콤하고 짭짤한 느억맘 소스도 잘 어울렸다. 

 저녁을 먹고 바이크로 숙소 반경 3km를 탐험한 결과 근처에 가게나 식당이 극히 적고 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 동네는 밤늦게 혼자 걸어 다니기에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달랏도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판랑에 비하면 달랏은 대도시였다. 판랑은 공사장과 공터가 많아서 스산한 분위기였다. 숙소 바로 뒤에 위치한, 걸어서 3분 거리의 해변에는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 단체로 관광을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판랑탑짬의 해변가
음식점이 많아서 밝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길래 밤바다가 잘 보이는 곳 모래사장에 털썩 앉았다. 근처 슈퍼에서 사 온 음료수와 감자 칩 한 봉지를 까먹으며 사람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인 소리를 배경 삼아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판랑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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