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나의 반려입니다.

M스토리 입력 2022.10.18 14:44 조회수 2,493 0 프린트
언젠가 지인들이 돼지가 <애완동물이다, 아니다>를 갖고 말다툼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엔 <미니피그>가 있어 싸울 일도 아니었겠지만 한때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 지칭했다. 요즘은 반려동물이란 말로 격을 높여 부르거나 아예 가족처럼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1천만을 넘는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하면 파충류나 양서류, 딱정벌레 같은 곤충 또는 뱀이나 악어 같은 혐오 동물까지 집에서 키우는 프로가 심심찮게 TV에 방영되는 걸 보면 인류는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뿐이 아니다. 영화 <레옹>에서 12세 소녀 마틸다가 반려식물 아글라오네마 화분을 안고 다니는 장면이 친근하게 눈길을 끄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의 현실은 다양한 종류의 반려들이 있어 외롭거나 불안한 정서를 편안히 지탱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 ‘반려자’는 일생을 함께하는 부부를 말한다. 우리는 그 반려나 반려자를 만들기 위해 사춘기 시절 숫한 밤을 새워가며 손편지나 컴퓨터로 메일을 쓰곤 했다. 그 메일 내용 중에는 윤동주의 <서시>도 한 소절 인용되었으리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사랑하는 애송시다. 나 역시 가끔 나도 모르게 그 시의 한 구절을 읊조리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는 또 다른 한 편의 시가 내 가슴 속에서 감돌고 있음을 알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내려놓고/미움도 내려놓고/물처럼 바람처럼/살다가 가라하네1)

1) 靑山兮要我而無語/靑山兮要我而無垢
    (청산혜요아이무어/청산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如水如風而終我
    (료무애이무증혜/여수여풍이종아)

이 시는 나옹선사라는 스님의 선시(禪詩)다. 나는 이 선시로 하여 3번 각성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중학시절인가, 어느 여름날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어느 집 라디오에서 이 시가 낭랑하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 맑은 시로구나!’ 하고 놀랐다. 두 번째는 대학시절이었다. 서예를 배우던 때, 이 시가 나옹선사라는 고려 말에 살았던 스님의 시라는 것을 알고 스님들은 염불이나 중얼거리는 신분인줄 알았는데 시를 쓰다니! 스님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이 시가 늘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를 가끔 읊조리다보니 어느 날 문뜩 원전이 궁금해졌다.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그 해석이 여러 가지로 다르게 올라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 다를까? 하는 의문이 들어 그날부터 한시(漢詩)와 선(禪) 공부를 하게 되었고, 인터넷상에 올라있는 다른 사람의 번역까지 살펴보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2) 


 2) 靑山兮要我而無語/靑山兮要我而無垢
     (청산혜요아이무어/청산혜요아이무구)
    聊無怒而無惜兮/如水如風而終我
     (료무노이무석혜/여수여풍이종아)

견강부회(牽强附會)랄까, 셋째 연의 노(怒)를 ‘성냄’, 석(惜)을 ‘아쉬움’으로 번역함으로써 결국 나의 학습과 명상의 수준에 따른 한계와 함께 마음에서 욕망하고 갈망하는 방향으로 번역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칫솔로 하루에 3번 이를 닦는다. 몸 건강을 위해서, 그런데 마음 건강을 위해서는 몇 번 마음을 닦는가? 아마 한 번도 닦기 어렵지 않나 싶다. 왜? 나를 생각할 틈이 없기에,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그런 면에서 나옹선사의 시 가운데 ‘티 없이 살라하고’와 윤동주시인의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란 구절은 어쩌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닦아주는   <마음 청결제> 같은 시어가 아닐까 싶다.

만나는 누구나에게나 묻고 싶다.
“가슴 속에 어떤 시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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