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거꾸로 가는 시계

M스토리 입력 2022.07.18 13:28 조회수 2,973 0 프린트
 
 
 
S가 돌아왔다. 미국으로 떠난 지 25년만이다. 배추 같은 모습으로 떠났던 그가 늙은 호박이 되어 나타났다. 사반세기! 어느새 그런 시간이 흘러, 그도 내 모습을 보고 놀랐겠지만 나 역시 그의 흰머리를 보고 놀랐다.

그는 럭비공 같은 존재였다. 언제 어느 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특히 방학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전국을 무대로 뛰어다니곤 해서 좀체로 만나기 어려웠다. 그를 만나려면 수소문을 해야 할 정도였는데 어쩌면 종횡무진(縱橫無盡) 역동적인 그의 DNA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일찍이 일본 명치대에서 유학을 하셨고 1.4후퇴 때, 단신으로 흥남부두를 떠나 부산과 거제도를 거쳐 3.8선 인근 춘천에 정착한 실향민이었던 것이다.

그가 돌아왔으므로 사춘기 시절부터 만났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여전히 고향 지키기를 하는 전직 교장 L네 집에 모여서 그동안 만나지 못해 나눌 수 없었던 각자의 말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세종시에 사는 O공장 공장장 K가 먼저 오래된 사진을 앨범에서 찾아내 단톡방에 올렸고 그 빛바랜 흑백사진을 돌려보며 모두 간직했던 시간의 퍼즐 조각을 하나씩 꺼내 맞추었다.

미국에서 귀국한 S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흩어졌던 가족 가운데 누나와 여동생(국제선교사로 세계를 무대로 선교활동을 한다고 함)을 며칠 전 극적으로 춘천에서 만났던 이야기부터 시작했고 끝으로 미국으로 데리고 갔던 아들과 딸이 결혼해 주렁주렁 손자를 보았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DNA 탓인지 미국에서도 역시 그는 다양하게 사업을 벌이느라 동부 서부 남부 할 것 없이 수없이 주를 옮겨 다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알라스카까지 가서 식당 일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대학시절에 동해안 해수욕장에서 수상안전요원으로 맹활약했던 기억과 또 서울로 상경해서 시내버스에서 양말을 팔았던 고학시절 그리고 어느 심심산골 중학교 교사 시절, 손바닥만 한 운동장 건너 하숙집에서 이륜차로 출퇴근하며 시골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에피소드를 회상해주었다. s는 그런 자기의 족적과 존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있다는데 대해 고마워했고 감격해했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한동안 손을 놓았던 고스톱도 쳤다. L이 판돈을 모두 땄다. 원래 고스톱뿐 아니라 스포츠와 잡기에 고수였던 S가 오히려 제일 많이 잃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미 대륙을 종횡무진 횡단하며 각가지 생업에 종사하느라 고스톱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란 짐작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3.8선 아래 ‘망향의 동산’에 묻힌 S의 부모님과 L의 아버지 묘소를 찾아 함께 참배했다. 그리고 자주 자주 만나자며 약속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나는 지금까지 이틀 동안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거꾸로 가는 시계가 우리들에게 하나씩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몇 분씩 늦게 가기도 하여 우리가 함께 만나며 살아가는 동안 시간이 좀 천천히 흐르거나 거꾸로 흘러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래서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던가! 시간이 거꾸로 흘러 흘러서 어린 모습과 마음으로 그렇게 만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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