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수 시인의 문화 산책] 로봇이 사는 집

M스토리 입력 2025.04.30 15:23 조회수 108 0 프린트
Photo by YoonJae Baik on Unsplash
 
 











어린 시절, 이웃에 동네사람들이 <개 키우는 집>이라고 부르는 집이 있었다. K형네 집이었다. K형이 홀어머니 H마담과 누나들과 함께 개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택시운전을 하는 K형이 버려진 개를 데려다 기르게 되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개들 종자가 다 달랐다. 기억에 스피츠와 콜리 잡종견 그리고 토종개였던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K형네 가족 역시 성씨와 고향이 다 달랐다. 큰누나는 서울이 고향인데 정씨였고 작은 누나는 울산이 고향이고 서씨였다. K형과 그의 어머니 H마담만이 우리 동네가 고향이었다.

K형의 어머니 H마담이 직장(다방과 술집)을 자주 옮겨다니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도시계획으로 그들이 살던 집터가 없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며칠 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앳홈」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어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앳홈」은 「화목한 모리야마네 가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본영화인데 혈연이 아닌 불우한 처지의 뜨내기들이 모여 형성한 공유가정이랄까, 연합가정이었다.

빈집털이 좀도둑인 모리야마(아빠)가 빈집을 털던 중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쇠사슬에 묶여 욕실에 갇힌 사즈카(엄마)를 구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구출된 사즈카는 또 지하철에서 자살하려는 아스카(큰딸)를 구하고 또 불행한 가정으로부터 탈출한 준(아들)과 타카시(막내딸)와도 극적으로 만나 역경을 극복하며 마침내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블랙코미디다.

「앳홈(at home)」이란 용어는 원래 영국에서 유래된 말로 ‘품위 있는 가정’이란 의미가 내포돼있다. 하여 영국에는 「앳 홈 티타임(at hoKe tea tiKe)」이란 사교모임 문화가 있는데 귀부인들이 오후4시와 5시 사이에 한집에 모여 차를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전통적 귀족문화다.

그날 또 「더 웨이 홈」이란 미국영화도 보았다.

미국 덴버에서 재건축지역의 길고양이를 돌보던 청년 루커스와 여친 올리비아가 유기견 <벨라>를 만나 640Km나 떨어진 뉴멕시코를 오가며 펼치는 동물사랑 모험영화다.

오래된 추억처럼 두 영화 모두 보는 내내 즐거웠다. 마치 두 영화를 합친 게 우리 고향의 K형네 가족 이야기인 것 같았고, 요즘 세태의 전형적인 가족모습을 보여준 모델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혼이나 직장 문제 등 여러 환경적 요인에 의해 홀로 지내는 외로운 사람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개 키우는 집>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가하면 아파트 단지에서 가끔 휴일 오후에 젊은 무자녀부부가 견모차(?)에 개를 태우고 산책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반려견 센터나 동물병원에서 ‘아무개 엄마’나 ‘아무개 아빠’라 부르는 것은 이미 오래된 상식이고 반려견 전용카페가 있는가하면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죽으면 전용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전용납골당에 정성스럽게 안치한 후 천도재도 지내주는 사찰도 있다.    
심지어 지난 설날에는 가까운 친지에게서 ‘반려견에게 세뱃돈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짠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현상도 다 옛 이야기가 될 판이다.

인공지능 AI가 발달하면서 반려동물이 반려로봇으로 대체되어 <로봇이 사는 집>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YTN에서도 3년 전인가 꽤 오래 전에 외로움을 달래주고 심부름을 해주는 도우미로봇 ‘똑순이’ 프로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로봇 ‘똑순이’가 노인에게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혈압관리 등 건강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다정한 말동무도 돼주는 훈훈한 내용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비대면 고령화시대에 즈음하여 단순히 건강관리 차원을 넘어 사용자와 교감할 수 있도록 정서적 유대관계를 갖는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케 하는 고등수준의 반려로봇을 생산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발 빠르게 로봇을 개발하여 이미 생활화하고 있다. 한 예로 중경(重慶)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독신자 요리사가 ‘AI 아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있어 관심 있게 보았다. 그의 집에는 반려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는데 요리사는 방송 인터뷰에서 AI 아내와 사는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의 AI 아내는 밤에는 그와 함께 침대에 누워 충전을 하고 아침이 되면 부스스 일어나 가족(요리사와 고양이)에게 인사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 후라이를 하는 등 주부 역할을 하는가 하면 방문한 손님에게는 캔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맥주잔에 따라 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행동이 다소 어색하고 불완전했지만 곧 머지않아 ‘알파고’가 바둑고수들을 모두 굴복시켰듯이 완전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간이 기계적인 AI 반려로봇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화가 어려운 인간과 관리하기 번거로운 반려동물 대신 부드럽고 따스하게 대화하고 마음에 부담 없이 상대해줄 대상을 로봇을 통해 획득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외로움을 극복하고 본능적 사랑을 찾는다는 목적의 그러한 선택이 과연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로봇과도 우정과 사랑을 서로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들 알고 있다. 이미 AI는 로봇에게 정상적인 인간 이상으로 인간적인 대화나 서비스를 치밀하게 학습시켜 로봇이 스스로 응용할 수 있는 단계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향후 전개될 미래를 ‘인간을 위한 로봇문화’라 해야 할까, ‘로봇을 위한 인간문화’라 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과 로봇 앳홈문화’라 해야 할까?

만화나 영화 같은 미래가 흥미롭고 궁금하다.

그리고 문득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에 펄럭이던 하얀 손수건도 생각났다.

누군가의 이름이 곱게 새셔져 있을 것 같은 하얀 손수건이….
M스토리
맨위로